**이 글은 미주대륙사회동맹(Hemispheric Social Alliance)이
발간한 [Lessons from NAFTA: The High Cost of “Free”
Trade(나프타의 경험: "자유"무역의 무거운 대가)] 중 존 딜런과
존 포스터가 쓴 “NAFTA in Canada: The Era of a
Supra-Constitution(캐나다에서의 나프타: 초헌법의 시대”의
주요 부분을 발췌, 요약 한 것입니다.
원문은 http://www.rmalc.org.mx/documentos/HSA%20NAF
TA%20IMPACT%20RPT%202003.pdf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발췌요약 번역:류미경(자유무역협정 WTO
반대 국민행동 정책팀장)
경제
NAFTA가 발효되기전 미국과 캐나다 정부는 양자간 FTA(CUFTA)를
체결했다. CUFTA는 양국간의 무역에 있어 성장을 가져다준
것처럼 보인다. 양자간 협정 체결 논의가 시작된 1985년, 양국간
무역은 1160억 달러(미화)였는데, 2002년에는 4200억 달러로
증가했다. 89년 CUFTA가 발효되었고, 2001년에 이르러서는
캐나다의 대미 수출은 225% 증가했고, 수입은 162% 증가했다.
정치인들은 이러한 수치를 NAFTA "성공“의 증거로 들이대곤
하지만 이는 실상과 다르다. CUFTA가 체결되기 전 8년 동안,
캐나다의 경제는 1년에 평균 1.9%씩 성장했다. 그러나 CUFTA
체결 후 5년간은 자본 당 실질 GDP가 평균 0.4%씩 감소했다.
이는 CUFTA 체결 이면에 동반된 캐나다 은행의 강경한
통화정책과 관련이 있다.
CUFTA와 NAFTA 체결 시기를 기준으로 생산성과 임금 수치를
비교해보면, 양 협정의 부정적인 효과를 분명히 알 수 있다.
89년~93년(CUFTA 발표~ NAFTA 체결 전), 캐나다의 시간당 평균
노동생산성은 연평균 0.5% 성장했는데, 이는 이전 8년과 비교
했을때 1/3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같은 기간동안 시간당
평균임금은 인플레이션을 감안했을 때 해마다 0.2% 증가했고,
이는 이전 8년과 비교했을 때 절반에도 못 미친다. 1994년~
2001년(NAFTA 체결 후) 생산성 증가율은 CUFTA 체결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어 연당 2%가 되었는데, 실질임금은 고작 0.4%
증가하는 것에 머물렀다.
노동유연화
멀로니 정부는 자유무역이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
장담했다. 그러나, 고이자 정책으로 고용은 줄었고
1991~1993년에는 심각한 경기수축이 있었다. 캐나다의 공식
실업률은 1988년~1990년 사이 7.8%, 1991~1993년에는 11%,
95년~2001년에는 8.6%였다. NAFTA 체결 이후에 새롭게 만들어진
일자리는 대부분 파트타임이고 불안정한 일자리였다.
여성들에게는 특히 더 그랬다. 나프타 하에서의 캐나다 노동시장
조건에 관한 연구 결과를 살펴보면, 파트타임노동자의 대부분은
풀타임 노동자와 비교했을 때 임금이 2/3밖에 되지 않는다.
게다가 파트타임노동자들은 소매업 판매직, 식당, 호텔 등을
돌며 주마다 직장을 바꾸어가며 근무할 정도로 불안정성이
커지고 있다. 비정규직 또한 급격히 늘어, 1991년에는 전체
노동자의 5.0%가 비정규직이었는데, 96년에는 11.6%로 증가했다.
91년~95년 사이 자가 고용 역시 15%나 증가했다. 2002년에는
560,000개의 일자리가 증가한 것으로 기록되나 이중 40%는
파트타임이고, 17%는 자가 고용이다.
사회복지
1989년 4월 캐나다-미국 FTA가 발효된지 4개월 만에 보수당
정부는 사회복지 관련 예산을 삭감했다. 실업보험,
고령자보고등이 삭감되었고, 보건의료와 교육에 대한 책임은
연방정부에서 지방정부로 이전했다. 이러한 삭감은 보수당 집권
기간 내내 계속되었다. 93년 자유당이 당선되고 난 이후 이는
더욱 가속되었고 1995년에 분수령을 이루어 290억
달러(캐나다화)이나 되는 금액이 삭감되었다.
자유무역의 시대 동안 앞서 살펴본 것처럼 자본당 실질
임금(시간 단위)은 상승률이 매우 낮았다. 이와 더불어 사회복지
관련 예산이 삭감됨으로써, 가용 소득은 10년동안 엄청나게
줄었다. 1973년~81년 사이 가용 소득은 3% 증가했는데,
81·년~89년 사이에는 1.1 증가했으며, 89년~99년에는 0.3
감소했다.
CUFTA 체결로, 캐나다 사회복지 정책은 수준이 매우 낮은 미국에
맞추어졌다. 89년, 캐나다의 실업자중 87%가 고용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는데, 그러나 2000년에는 고작 36%의
실업자들에게만 그 혜택이 돌아갔다.
공공 보건의료 역시 보호되지 못했다. NAFTA 협정에는, 오직
“공익을 목적으로 하는 영역에서만 세이프가드를 적용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있다. 많은 통상관련 변호사들은 이 모호한
조항이 캐나다의 보건의료 시스템을 보호하지 못한다고
이야기한다. 캐나다의 의료체계는 공적으로 통제되긴 하지만
많은 사적 사업자들이 끼어들어 있다. NAFTA에는 투자자가
정부를 제소할 수 있도록 하는 분쟁해결 메카니즘을 가지고
있다. 정부의 특정 정책이 투자자에게 손해가 된다고 판단될
경우 이는 ‘정부에 의한 수용’으로 간주되고 투자자는 상대국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만약 캐나다 정부가
공적 건강보험 적용 대상을 확대하고자 할 경우, 미국의
보험회사나 가정간호서비스 공급자가 이러한 정책이 자신에게
손해를 입힌다고 판단하면 캐나다 정부를 고소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신민당 정부가 마니토바와 브리티시 콜롬비아 주에
존재하는 공적 자동차 보험을 온타리오 주에도 설립한다는
공약을 철회한 일이 있었는데, 이는 미국 소유의 보험회사들이
수백만 달러에 이르는 금액의 보상을 요구할 것이 우려되었기
때문이다.
농업
캐나다의 농민들은 자유무역이 반드시 더 많은 번영을
가져다주지 않는 다는 것을 확인했다. 88년 CUFTA가 체결되고 난
뒤 캐나다 농민들의 경험을 돌이켜보면, 농업-식량 수출은 세
배로 증가했으나, 농가 소득은 인플레이션을 감안할 때 24%가
줄었다. 같은 기간동안 농가부채는 두 배가 늘었는데, 부채에
대한 이자가 소득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캐나다
농민 중 16%는 농지를 떠나야했다. 1988년과 비교했을 때 2002년
농업-식량 산업의 일자리는 2400개가 줄었다. 독립적인 돼지
사육 농민의 수는 66%가 줄었는데, 줄어든 만큼을 기업이 장악한
것이다. 노동자들에게 지급되는 임금은 겨우 3%가 올랐지만
식료품점에서 판매되는 폭찹의 가격은 39%가 올랐다. 한때
곡물과 유제품 교역을 책임지던 농민 소유 협동조합은 주변화
되었고, 그 빈자리를 기업이 장악하게 되었다. CUFTA와 NAFTA는
농민이 아닌 몬산토와 카길에 이익을 가져다 준 것이다.
사회적 효과, 불평등성의 증가
자유무역의 시대를 거치면서 캐나다는 더욱 불평등한 사회가
되었다. 90년대 대부분의 캐나다인들은 실질소득의 감소를
경험했다. 1999년 1인당 실질소득은 19990년과 비교했을 때 2%가
적다. 임금 압박, 노동유연화, 사회비용의 삭감은 불평등이
확대되는 결과를 낳았다. 84년~99년 사이, 전체 개인 자산의
총량 중 캐나다의 최빈층 40%가 차지하는 비중은 1.8%에서
1.1%로 줄었다. 같은 기간동안 부유층 10%가 차지하는 비중은
51.8%에서 55.7%로 늘었다. 한 가구가 보유하고 있는 자산의
양의 평균치를 비교하면 최빈층 40%는 1984년
5,918달러(캐나다화),99년에는 4,800달러인 반면, 부유층 10%의
평균치는 1984년 667.485달러에서 980,903달러로 대폭
늘었다.
에너지와 물
캐나다는 석유, 천연가스, 전기를 통틀어 계산할 때 미국에 가장
많은 양의 에너지를 수출하는 나라이다. 그런데, 미-캐 FTA와
NAFTA하에서 캐나다는 에너지 수출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했다.
캐나다와 멕시코는 북미지역 내에 에너지를 수출할 때, 수출세를
부과하거나 최소가격을 부과할 수 없게 되었다. 게다가 캐나다는
미국과 캐나다의 전체 에너지 공급량이 앞선 3년과 대비하여
같은 비율을 유지하도록 하는 “비율 공유 조항”의 적용을
받는데, 이에 따르면 캐나다는 위기가 발생하여 에너지 공급이
부족할 때도 비율을 유지하기 위해 재생불가능한 에너지를 계속
수출해야 한다.
나프타는 물을 교역 가능한 상품으로 여기는 관념을 확산시켰다.
또한, 미국에 물이 부족하다는 인식이 확대되고 있어서 캐나다의
제임스만에서 미국중서부까지 물을 끌어오는 ‘대운하’ 건설
프로젝트에 관한 논의가 새롭게 제기되고 있다. 캐나다의 물
공급 관할권은 연방정부와 지방정부로 구분되는데, 연방정부는
관할지역을 넘나드는 물 공급을 관리하고, 관할지역 내의 공급을
책임진다. 나프타는 물 공급이 한번 개시되면 절대 중단할 수
없고, 만약 환경과 건강상의 이유로 공급을 축소하게 되면 국내
공급에 대해서도 똑같은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투자자가 정부를 상대로 제소할 수 잇도록 하는 조항에 따라
브리티시콜롬비아 주는 미국의 캘리포니아주에 물 수출을
중단했다는 이유로 캘리포니아 산타바바라에 있는
선벨트사로부터 천오십만 달러(미화)의 손해배상을 청구받은
일이 있었다. 이렇듯 나프타는 물을 교역 가능한 상품으로
탈바꿈 시켜 지역주민들의 삶과 직결된 충분한 물 공급을
유지하고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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