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너지 사유화 반대 기자회견
[국민행동 6월워크샵] 아시아 지역 FTA 추진 동향 및 …
故김선일 1주기 추모 반전행동
반신자유주의 세계화 공동투쟁기구 구성을 위한 2차 …
 
가입 탈퇴
 

세계화와 민중 > 기획 > 목록보기 > 글읽기
 

 
[기획] "노숙운동의 현재와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민중  제44호
문헌준 / 노숙인 복지와 인권을 실천하는 사람들

kopa_44_04.jpg kopa_44_04.jpg (75 KB)

1. 미래에 대한 생각

"쪽방 같은데서라도 죽고 싶은데, 도저히 길이 안 보인다", "막노동 일자리가 생겼으면 좋겠다", "주민등록 복원 대책이 마련되면 좋겠다", "새벽에 인력사무소에 나가면 일자리가 많았으면 좋겠다. 대마찌가 싫다", "쉼터나 시설을 이용하면 나태해지는 것 같아서 싫다", "외국인 근로자들 때문에 일자리가 없다", "노숙인들에게 각자에 맞는 기술교육을 받도록 해줬으면 좋겠다.", 지난 1월 22일 서울역 충돌사태 후 거리에서 생활하고 있는 거리 노숙인들에게 “미래에 대한 생각”을 묻는 주관식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남들에게는 쉬울 수 있는 것도 무엇 하나 쉽게 이룰 수 없는 노숙인이 처해 있는 일상을 말해주고 있다.

한때는 우리사회에서 “터졌다”로 표현되며 일시적인 큰 재난처럼 여겨져 응급 구호의 대상이 되었던 ‘노숙자’는 이제 공공장소 등, 거리에서 생활하는 거리노숙인의 모습을 통해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이 되었다. 그러나 거리생활은 노숙인의 가장 극단적인 거주형태일 뿐이며, 병원과 같은 치료시설·노숙인 쉼터와 같은 사회복지시설·기도원·쪽방·고시원에 이르는 극도로 불안정한 주거생활의 경계를 오가는 노숙인구의 수는 10만 이상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럼에도 노숙인을 둘러싼 대개의 시각과 사회정책은 거리생활의 어느 시점, 어느 상황에서 나타나는 모습만으로 게으르거나 추하거나 격리해야 될 사회적 일탈 이미지로만 일반화시키고 반응할 뿐, 생애 전반에 걸쳐져 있는 가난, 실업, 가족의 문제, 최소한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던 소외와 배제의 문제들을 함께 보고 있지 못하고 있다. 실제 필자가 노숙인 지원활동을 하면서 만났던 분들을 보면 노숙의 문제는 가난, 실업, 가족의 문제, 소외와 배제 등 다면적이고 어찌 보면 역동적이기까지 한 우리사회 빈곤문제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2. 피할 수 없는 공식이라 부르짖는 사람들

혹자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정책의 강화”를 두고 바람직하냐 아니냐를 떠나 이는 21세기의 흐름이고 이 흐름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기 때문에 그러면 그 상황에 맞는 최선의 체제를 만들어서 ‘성장’하는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신자유주의 정책의 확대로 인해 내부적으로 양극화가 문제이긴 하지만 자원이 없는 한국경제는 가장 혜택을 많이 입을 수 있어 머지않아 국민소득 3만불도 어렵지 않게 도달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공식처럼 연결되어 신자유주의를 피할 수 없는 것이라 이야기 하는 사람들에게 누구를 위한 ‘성장’인지 ‘노숙인’의 존재를 통해 되묻고 싶다.

정부 스스로도 애초 “IMF를 거쳐 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일시적인 사회현상으로 여겨졌던 노숙의 문제”는 ‘부랑인및노숙인’이라는 개념으로 법적 근거까지 마련해 제도화에 이를 정도로 오히려 더욱 급증하고 있다. 서울역 충돌사태 직후 이루어진 거리노숙인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최초 노숙 시기를 묻는 질문에 1995-1999년(28.3%) 보다 2000년-2004년도에 처음 노숙을 한 최근 노숙인구가 57.5%에 달하고 있다.
부에 맞는 세금을 걷는 구조도 없는데, 어느 신문에서인가 글로벌 기업 삼성이 큰 이익을 냈는데 성과급으로 주요 임원진들이 엄청난 액수의 돈을 서로 갈라 먹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저렇게 큰 돈을 나누니 IMF 위기는 벗어나 경제가 성장하는 것 같은데 실제 삶과는 도무지 연결되지 않는다. 아무리 국부가 늘어나고 경제가 성장해도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돈주머니가 없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병원비, 교육비, 주거비를 온전히 자신들의 소득으로 감당해야 하는 구조가 계속되는 한 우리사회에는 상대적 빈곤으로 일반화하기에는 너무나 처참한 노숙인과 같은 극단의 한계계층이 더욱 실체화 되어 갈 것이며, 노숙인의 존재는 어느 순간 삶의 기반이 산산이 해체되고 피폐해 지는데 불과 얼마 걸리지 않는다는 것을 온 몸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것이 노숙에 이르게 된 사람들만의 문제일까?

3. 노숙인 운동

어떤 계층의 이해를 대변하는 운동이 그렇듯 노숙인 운동 또한 노숙 당사자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사회 노숙인이 처해 있는 당장의 현실과 노숙에 이르기까지의 생애에 걸쳐 있는 문제들을 보면 노숙인 운동이 어떤 형태가 되어야 하는지, 노숙 당사자들은 과연 스스로 주체가 되고 조직될 수 있는지, 지속성을 가질 수 있을지?, 노숙 당사자가 직접 참여 가능한 운동은 어떤 내용이어야 할지, 가늠하기 조차 어려울 때가 많다. 무엇보다 노숙인들 스스로가 ‘노숙자’라는 표현 자체에 대해 사회로부터의 격리로까지 받아들일 정도로 심한 거부감을 느끼게 하는 사회 일반의 인식은 진전될 여지가 잘 보이지 않는 상황은 그 운동의 주체가 되어야 할 당사자나 이를 지원하고 돕는 지원조직들이 당당히 노숙인 운동의 정체성을 밝히고 이를 함께 공유해 나가는 것이 매우 지난한 과정이 될 것임을 느끼게 한다.
물론 그동안 ‘노숙 당사자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일정한 시도는 계속되어 왔고, 노숙인 운동에 대해 앞으로의 고민은 계속될 것이다. 노숙인 지원조직들은 당사자의 문제를 옹호하고 조직하려 할 것이며, 노숙인을 지원하는 지원자들의 몫을 넘어 노숙 당사자가 직접 참여하는 형태를 지향할 것이다. 노숙인들이 처해 있는 당면한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지원 서비스를 개선하고 노숙인 지원정책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투쟁에도 적극 나설 것이다. 이러한 시도들을 통해 노숙인에 대한 동정적인 지지 세력들과 여론을 형성하고 당사자가 직접 참여하는 운동도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잘 풀리지 않는 문제들에 대한 결정적인 돌파구는 노숙인 스스로의 주체적 결집과 그 힘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최근 있었던 서울역 충돌사태가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다.
어디 저 70~80년대 책에서나 들을 법한 ‘소요 사태’라고까지 중앙정부가 언급한 서울역 충돌사태는 그 부정적인 시각과 논란에도 불구하고 IMF 당시만큼이나 활발하게 ‘노숙자 대책’이 논의되고 갖가지 대책을 쏟아 내는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저렴한 주택과 일자리, 알콜이나 정신질환의 치료와 질병에 대응할 수 있는 서비스, 쉼터의 물리적 환경 개선 등의 문제 등 그동안 줄기차게 주장해 왔던 문제들에 대해 미약하게나마 주거권, 노동권, 건강권 등의 보편적 권리의 문제를 상기시켜 내고 있으며, 돌파구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주노동자들을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사람들로 인식하기도 하고, 비정한 자본주의 시장원리에 철저히 악용당하고 있으면서도 당장의 하루를 위해 어쩔 수 없는 극단의 선택을 이어가야 하는 노숙인의 일상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세상이 좋아지고 있는지, 좋아 질 수 있는지에 대한 회의감과 무기력이 더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무릇 삶의 조건을 변화시키는 모든 운동은 주체로부터 나오고, 민중들간에 연대를 통해 돌파구를 찾아 왔음을 바로 가까이 2005년 1월 서울역 대합실에 결집해 동료의 비인간적 죽음에 집단적으로 저항한 노숙인들의 모습을 통해서 다시금 희망을 보았다.
 

2005-06-22 20:53:57


| 목록보기 | 윗글 | 아랫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