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너지 사유화 반대 기자회견
[국민행동 6월워크샵] 아시아 지역 FTA 추진 동향 및 …
故김선일 1주기 추모 반전행동
반신자유주의 세계화 공동투쟁기구 구성을 위한 2차 …
 
가입 탈퇴
 

세계화와 민중 > 전체기사 > 목록보기 > 글읽기
 

 
[칼럼] [정광훈] 칸쿤 투쟁 1년을 돌아보며

세계화와 민중  제36호
정광훈 (전국민중연대 상임의장, 2003년 한국민중칸쿤투쟁단 단장)

2004090209.jpg 2004090209.jpg (60 KB)

칸쿤 투쟁 1년을 돌아보며


밤낮없이 계속된 10일간의 투쟁

일정이 여유없이 빡빡하다. 오늘은 환경토론, 내일은 각기 다른 장소에서 농업분야 행사 등 장소 찾기도 힘들고 같은 지명의 장소, 극장, 호텔 등이 있어서 찾아다니다가 거의 시간을 보낸 일도 많았다. 어느날 밤은 ‘옥수수 문화의 밤’ 행사장이라고 찾아갔었는데 멕시코 장구를 치며 노래하는 엉뚱한 남들 행사만 구경하고 온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아깜페시나(농민의 길; 농민단체들의 국제적 연대체) 행사가 메인이 되었다. ‘킬로미터 제로’(WTO 각료회의가 개최되던 회의장을 향하는 길은 시작지점이 킬러미터 제로(0km)이고 회의장은 킬로미터 디에스(10km)이다. 한국투쟁단이 농성하던 곳이 킬로미터 제로였으며, 칸쿤 투쟁의 상징이 되었다.-편집자) 분수대 로터리에서 멀지 않은 실내 체육관 본행사장에는 각기 다른 모양새의 사람들이 모여 주제발표를 들었다. 영어, 스페인어, 한국어로 해대니 통역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시간도 길어진다. 종종 키가 크고 머리가 희끗거리는 걸죽한 목소리의 제3세계 가수가 나와 노래를 불렀는데 함께 부르기도 하였다. 넉넉하고 여유만만한 반세계화 가수들이다.
그 많은 사람들의 식사시간. 물이 귀하고 더워서인지 비닐봉지에 든 물주머니들은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임시로 설치한 수도는 작동이 안되었다. 식사라곤 빈대떡처럼 생긴 납작한 옥수수 개떡에다 매콤한 향료소스를 싸먹으면 그만. 그 많은 사람들이 준비되지 않은 먹거리임에도 기다리며 새치기, 싸움질도 않는다. 집회 장소 주변에는 소가죽으로 만든 주머니가방이며 색색의 실로 짜여진 팔찌며 허리띠를 두르고 머리를 길게 땋은 검정머리 키 작은 인디언들도 있었다. 행복했던 원주민들이 이제 누구들에 의해 쫓겨나고 기타 국민 취급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을까. 어린이 같은 어머니가 어린아이를 업고 다니면서 전통 수예품을 팔러 다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말로만 제3세계 민중들을 위해 연대투쟁하자고 하는 나의 말들은 너무 격에 안 맞는 배부른 풍요가 넘치는 이야기일 뿐이었다.

오늘은 시가행진하는 날

전농에서 상여를 어떻게 비행기에다 싣고 왔는지 어느새 한국 상여가 대회장 앞에 놓여있고 상복을 입은 사람, 두건을 쓴 사람, 피켓을 든 사람, 머리띠를 맨 사람, 메가폰을 든 사람, 꽹과리며 북을 치는 사람, 각기 다른 말로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이 플랑과 상여를 앞세우고 ‘킬로미터 제로’ 분수대 로타리로 행진을 하였다. 김제 용한이는 상여 풍경을 울리며 구호를 외치고 행진을 하였다. 어떤 사람은 “사파타 리베리베!” “라루타 시게시게!”(사파타는 살아있다! 투쟁은 계속된다!-편집자)하기도 하였고 “OMC 루차루차”(WTO 투쟁!)하기도 하였고 한국에서 “다운다운 WTO”라고 외쳤던 구호를 멕시코에서도 유행시키자며 기환이는 메가폰으로 연호했다. 왠지 ‘다운다운 USA’는 잘 안 통했다. 옥수수 바구니끈을 머리에 걸친 멕시코 농민은 행진을 하면서 바구니에 든 옥수수를 길가에다 뿌리고 가기도 하였다. 너무나 길고 무더운 행진이었다. 한국에서 입고 간 WTO 반대 조끼와 머리띠 등이 너무 고급스러워 보여 미안하기도 했다. 투쟁현장 수집가들은 머리띠며 티셔츠 등을 달라고 해 소중히 간직한 모습들이었다.
분수대 로터리 잔디밭에 캠프를 쳤다. 길 건너 쪽으론 얼씬도 못하도록 꼼짝도 않는 ‘ㄴ’자 사슴목장 바리케이트 너머엔 카키복을 입은 경찰들이 철망을 못 넘어오도록 빽빽이 방어를 하고 있다. 아무리 철조망을 밀어봐야 꼼짝도 않는다. 모두 철조망을 타고 올라가 각기 다른 언어와 구호를 외쳤다. 철조망 구조물을 부술래야 너무 단단했다. 이경해 열사도 바로 옆 철망 위로 올라타 가슴엔 “WTO kills farmers" 라고 쓴 노란 가슴 걸게를 입고 두서너번 구호를 외치더니만 순식간에 칼을 꺼내 가슴에 꽂았다. 그리고는 높은 철망 위에서 바닥에 떨어졌다.
거기 모인 많은 군중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소리를 지르며 흥분되었다. 잠시 후 칼을 뺀 자국엔 피가 묻어있고 이경해 열사는 가슴에 손을 댄 채 앰뷸런스에 실려 어디론가 병원으로 가버렸다. 이경해 열사가 비수를 가슴에 찌르고 땅바닥에 떨어진 자리가 센트로 프라자 거리 “킬로미터 제로”라고 지칭되는 지점이다. 비아깜페시나 회원들은 물론 멕시코 농민, 검정 스키마스크를 하고 다니던 아나키스트 등 모두가 집결하여 4㎞ 정도의 거리를 행진하며 병원 앞 추모 집회를 하였다. 어디서 준비했는지 소주잔 종이컵 모양으로 생긴 양초에 불을 켜고 슬픈 조가를 부르기도 하고 각 나라마다 발언도 하였다.

각료회의 마지막 의제를 결정한 9.13

‘킬로미터 제로’ 장소엔 이경해의 영전사진과 촛불이 켜진 헌화 상이 차려있고 길바닥에는 규칙없이 늘어선 수많은 촛불들과 철망에 꽂아놓은 하얀 국화꽃들이 보는 이들 마다 분노와 슬픔에 잠기게 하였다. 매일 밤, 그리고 하루종일 계속되는 추모집회.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 속에서도 월든 벨로 교수는 열정적인 연설을 하였다. 빗물에 촛불은 다 꺼지고 몇 안 남은 가냘픈 촛불 사이로 어느 여가수가 느리게 기타를 치며 조가를 부르던, 가슴을 여민 엄숙하고도 조용한 킬로미터 제로의 거리. 젖은 옷을 입은 그대로 하루 밤을 분수대 잔디밭에서 밤샘을 하였다.
9월 13일, 또 한 번의 투쟁을 준비했다. 어디서 사왔는지 팔뚝 굵기의 밧줄을 사왔다. 철망을 자를 절단기를 들고 사슴목장 철조망보다 높은 위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전농 부의장 강기갑(지금은 민주노동당 의원)님은 그때도 수염이 길었는데 일사병이라도 걸릴 것 같은 그 땡볕 무더위 속에서 땀방울을 흘리며 밧줄을 묶을 구멍을 잘라내고 그 굵고 단단한 밧줄을 동여매었다. 세 가닥 줄을 줄다리기 할 때처럼 길게 늘어놓고 모두 그 줄에 달라붙었다. “영차 영차!” 힘을 모아 당기기 시작하였다. 민중의 힘이 너무 쌔서인지 풀어지기도 하고 끊어지기도 하다가 결국은 그 단단한 철망 구조물 앵글들이 뚫어지고 말았다. 줄다리기가 없는 나라에서 온 사람들은 마냥 너무 재미있어하며 환호를 했다. 힘쓰는 구호도 한국식으로 외쳤다. 그러다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허무러진 양쪽 철 구조물들을 뜯어내기 시작하고 아직 뜯기지 않은 양 옆 철망에 미국 허수아비를 묶고 불을 질렀다. 반세계화 투쟁 때마다 지원투쟁을 하러 다닌다는 검정 옷에 월남 삿갓을 쓴 이들. 높다란 막대기 위엔 네모난 스피커를 들고 다니며 묘한 벌통 울림소리같은, 매미소리도 아니고 앵벌이 소리도 아니고, 뭔가 사람들을 흥분시키는 소리 집중 비트음을 내면서 춤도 추고 꽹과리 같은걸 치며 묘한 몸짓으로 움직여대는 일곱 여덟 명의 팀들. 자유분방하여 행위 예술 같다고나 할까, 별의별 행동들과 구호들을 하는데 그들은 분명 산 넘어 어딘가에 희망을 품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날 동시에 각료회의가 개최되던 컨벤션 센터에 한국투쟁단 삼삼오오, 하나둘씩 어떻게 들어갔는지 각료회의가 있는 그 앞마당에 “WTO가 민중을 죽인다”며 구호를 외치고 플랑을 들자 카키복을 입은 사설 경찰같은 경비대들이 결국은 사람들을 끌고 어디론가 내쫓아 버렸다. 그리고 얼마 있자 ‘WTO 각료회의 무산, 연기’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분수대 캠프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가 만세를 부르며 이경해 열사 영정 앞에서 춤을 추었다. 분수대를 돌면서 색다른 사람들과 사람들이 어우러져 허리에 허리를 잡고 춤을 추며 한국 꽹과리와 징을 따라 돌아다녔다. 분수대 물 속으로 뛰어들어 옷이 젖은 채 돌아다니며 투쟁 승리의 기쁨을 만방에 알리는 축제를 벌였다. 한국 데모단의 투쟁은 제3세계뿐만이 아니라 세계에 수출되어 한국을 알리었다. 컨벤션 센터에 있던 세계 모든 기자들이 우리 캠프로 옮겨왔다. 수많은 기자들의 인터뷰와 이경해에 대한 질문들. 멕시코 모든 신문들 1면 기사엔 ‘WTO 멕시코 칸쿤투쟁’ 사진과 소식이 실렸고, 한국 ‘매미 태풍’으로 인해 부산 항구의 배들이 육지로 떠올라와 누워있는 기사들까지 실렸다.
그리고 우리 투쟁단은 각기 다른 비행기편으로 한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경해 열사는 함께 오지 못하고 화물비행기 냉동 편으로 홀로 관에 누운 채 인천공항에 도착하였다. 1년 전 머나먼 멕시코 칸쿤투쟁단의 여러 동지들을 이경해 열사 1주년 추모식에서 만나고 싶다.
‘쌀은 우리의 무기이다’, ‘우리 세상은 상품이 아니다’, ‘WTO는 세계 민중의 재앙이다’
또다른 민중들의 세계화를 위해 투쟁합시다.


** 사진출처 : 중도일보
** 사진설명 : ▲ 한국농업경영인대전시연합회 소속 농민들이 9일 대전역 광장에서 "우리 쌀 사수, 농협 개혁"등을 촉구하는 집회를 갖고 "농협" 문구가 적힌 허수아비를 불태우고 있다. © 이중호 기자
 

2004-09-10 14:32:18


| 목록보기 | 윗글 | 아랫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