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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새로운 사회운동의 전개와 급진화, 국제화

세계화와 민중  제29호
박준도(사회진보연대 사무처장)

대개가 그렇듯 사회운동도 자신의 역사가 있다. 역사가 있다는 말을 시기를 구별할 수 있는 단절점이 있다는 말로 이해하자면,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의 사회운동 역시 뚜렷이 구별되는 단절의 경험이 있다. 7~80년대 중심국의 위기탈출전략이 주변국의 반공발전주의 전망을 위태롭게 하던 시절, 오랜 긴 침묵의 시간과 단절하고자 했던 1987년 7, 8월 뜨거웠던 여름이 한번이라면,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대세를 따라야하는 주변국의 운명이 각인되던 당시, 급진적이던 사회운동의 마지막 도전으로서 1996년 12월 추운 겨울이 한번이다. 최초의 정치 총파업임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도전이라는 것은 당시의 노동자․대중운동 전략이 임계에 다다랐다는 뜻이다. 1998년 민주노총의 정리해고제 수용은 단적인 예다. 시기가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농민운동이든 여성운동이든 그리고 민족주의적인 경향의 여타 대중운동이든 대략 비슷한 궤적을 그리고 있다.
이상은 단지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닌데, 세계자본주의의 위기와 함께 화폐자본이 중심부 내부 금융시장에 안주하기 때문이다. 호황기 화폐자본이 자신의 대부조건을 낮추면서까지 주변부로 대거 진입한 것과 비교해보면 반대방향인 셈이다. 그리고 이는 국가의 역할 변화를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냉전의 해체와 함께 동시적으로 진행되는 이런 일련의 흐름들은 사회복지의 축소와 강력한 군사력에 기반한 통치성 재확립으로 드러난다. 산업구조조정과 노동수요의 확대라는 상황 속에서 전개되었던 기층 대중운동과 냉전의 우산 아래 평화공존 전략을 모색했던 민족주의 경향의 운동들이 임계에 다다를 수밖에 없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확실히 사회운동이 다루어야 할 의제가 많이 바뀐 것은 사실이다. 노동자들은 임금, 사내 복지, 그리고 기술생산성향상을 둘러싼 싸움보다는 정리해고, 비정규직화, 시장개방, 산업공동화에 맞서는 싸움에 더 자주 나서야 했고, 농민들은 소작료나 지대, 그리고 도시빈민화를 둘러싼 싸움보다는 농수산물 수입개방과 자유무역협정 체결이 낳을 농업 자체의 몰락에 맞서는 싸움에 더 자주 나서야 했다. 그리고, 조국통일과 평화공존 속에서 온전한 민족국가건설을 강조해온 민족주의 운동들도 파병반대운동과 주한미군기지반대운동에 더 많이 관심을 두어야 하는 현실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변화를 놓고 사실관계에 대한 인식을 넘어 어떤 가치판단을 하기에는 때 이른 면이 있다. 새롭게 등장하는 사회운동의 쟁점이 그 자체로 급진성을 보증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 대중운동이 이러한 쟁점을 다루는 폭과 방법이 상당히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파병반대운동이나 FTA체결 저지 운동이 서로의 연대보다는 자신의 문제해결에만 몰두하는 경향이 강한데, 이런 문제는 여전히 대중운동의 급진화를 가로막고 있는 주요한 요인이기도 하다. 더 시급한 문제는 노동자, 농민, 여성 내의 생산과 재생산의 주체가 과거와 같지도 않을 뿐더러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존재하지도 않고, 여성, 이주노동자의 사례에서 보듯 각급 대중운동 주체 구성이 급격히 변할 수 있는 상황인데도 이에 대한 우리의 계획이 대단히 취약하다는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운동 주체들이 자국의 한계를 넘어 자신이 접하고 있는 사회적 의제와 쟁점, 그리고 이에 대한 자신의 계획을 토론하고 공동의 대안을 모색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된다면 그것은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이 내재하고 있는 쟁점이 어떤 한계를 지니고 있는지 토론하는 것이 그 자체로서 의미 있을뿐더러,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민주주의를 향한 대중의 권리를 완전히 새롭게 정의(국제주의) 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는 민중들의 대안을 국제적으로 의제화하기 위한 공동의 실천행동을 도모할 수도 있다. 이것이 새로운 사회운동의 미래를 밝히는데 도움이 될 것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아시아 사회운동 회의에 기대를 거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2004-05-04 19: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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