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완군] 스크린쿼터 '진짜' 지지를 원한다면, 변하라 |
세계화와 민중 제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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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군 / 문화연대 정책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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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쿼터 투쟁이 과거와 같은 지지를 확보하지 못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한미투자협정 체결을 막아내야 한다는
대의적 명분에서 지지’하면서도 뭔가 뒷맛 개운치 않아 하는
'막연한' 정서적 반감을 보이거나 아예 무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많아진 것도 사실이다. 초국적 헐리웃 자본의 공세에서
‘영화시장의 독점을 방지‘하고 ‘영상문화의 종다양성’을
지켜나가겠다는 스크린쿼터가 이런 평가를 받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스크린쿼터가 축소론에 타당성은 없는 것일까? 이
글에서는 스크린쿼터가 여전히 유효한 것인지 검토해보고 나아가
스크린쿼터 운동이 잃어버린 지지를 되찾기 위하여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보고자 한다.
반대.1 한미투자협정 체결하여 잘 살아보세?
“한미투자협정 체결을 통해 얻게 될 경제적 실익 등을 이유로
스크린쿼터를 축소 또는 폐지하여야 한다”는 것이 폐지와
축소를 주장하는 정부의 주된 입장이다. 또한 “한국영화의
성장은 우연히 이뤄진 것이 아니며 스크린쿼터가 축소 되더라도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 만약, 스크린쿼터 축소 이후 국내
영화시장에 이상징후가 발생하면 연동제를 통해 즉각적으로 대응
하면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실, 이런 주장은 일언반구의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 BIT협정이라 불리는 투자협정은 미국이
개발도상국들과 주로 맺는 협정이다. 자국내 투기자본의 용이한
진출을 위한 사전정지작업의 일환이며, 간단히 말해 ‘수탈을
위한 협정’ 이상 이하도 아니다. 여기에 이익이 있을 거라고
말하는 정부는 어느 나라 정부인가? 정부는 한미투자협정을
맺으면 당장 대단한 경제적 이익이 있을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지만, 대단한 기만일 뿐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한미투자협정
체결이 가져다 줄 구체적 경제적 가치와 체결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지금 잃고 있는 것들에 대한 구체적 증거들을 제시해야
한다. 무역규모나 과거의 경우들로 살펴볼때, 협정 체결의
결과가 낙관적이지 못할 것은 자명하다.
더 중요한 것은 문화를 교역의 대상에 올리지 않는다는 원칙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것이다. 문화는 교류의
대상이지 결단코 교역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이 글의
주요한 문제 의식은 스크린쿼터 운동에 대한 ‘비판적 지지’
입장들을 검토하면서 스크린쿼터 유지의 본질적 지점을 밝히고
스크린쿼터를 지지하기 위해서는 스크린쿼터가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묻고자 하는 것이다.
반대.2 영화의 산업적 측면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일
뿐?
한미투자협정 체결에 반대하면서 스크린쿼터에 마땅치 않아하는
사람들의 주장들을 요약하면 대략 이러하다.
“현행 스크린쿼터 제도가 본질적 목표를 상실하고,
‘문화’로서의 영화가 아닌 ‘산업’의로서의 영화들에만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스크린쿼터를 바탕으로 국내 영화
산업이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는 동안, 영화 문화의 다양성은
그에 걸맞은 풍부함을 유지하기는 커녕,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국내 영화 자본은 ‘욕하면서 닮는다’는 말처럼 점점
헐리웃을 닮아가고 있으며, 동남아 등에서는 실제로 헐리웃
흉내를 내려는 징후들이 발견되고 있다는 것이다. 멀티플렉스의
등장 등 급변하는 환경은 오히려 영상 문화의 다양성을 위협하고
있는 실정이며, 관객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방식을 통해 '신화'에
다가서는 왜곡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 스텝들의
처우 개선을 비롯한 영화계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의 극복,
독립영화와 예술영화에 대한 구체적인 지원책, 한국 영화의
불균형적인 제작과 배급 현실 개선‘ 등에 대해 구체적인 대안을
요구하며 ’스크린쿼터‘에 대한 현재적 지지를 유보하거나
관망하고 있는 분위기가 영화계 내/외부에 있는 것도 사실이다.
결론은 말하자면 ’스크린쿼터는 영화의 산업적 측면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일 뿐이며, 그것이 아니라면 구체적인 증거를
제출해야한다는 요구‘이다.
스크린쿼터, ‘진짜’ 지지를 원한다면 변하라.
국내 영화계의 모든 문제 혹은 중대한 모순들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스크린쿼터에게 물을 수는 없다. 따라서 영화계의
모순적 문제들에 대한 대답을 스크린쿼터가 제출하기 전까지
지지를 유보하겠다는 태도는 바라직한 태도는 아니다. 그러나
국내 영화의 성장과 스크린쿼터 수호를 위한 연대와 노력들을
생각해 볼때 스크린쿼터 진영이 간과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다.
결론을 말하자면, 스크린쿼터가 지지받기 위해서는 방식과 내용
모두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호로서의 ‘다양성’이 아닌
실질적 ‘다양성’에 대해 당장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운동방식에 대한 불만도 높아지고 있다. 정부의 방침 변화에
일희일비하며 필요에 따라 무엇을 요구하고 기대하는 투쟁이
아니라 일상적 투쟁을 통해 사람들의 지지를 끌어내는
방식으로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헐리웃 자본의
공세에 무작정 약한 모습과 엄살을 부리면서도 동남아에
나가서는 ‘깡패짓’ 해보겠다는 기만적인 욕망을 버려야 한다.
엔딩 크레딧에는 이름을 같이 올리지만, 누구는 ‘벤츠’타고
누구는 ‘최저 생계비만 꾸준히 벌어도 좋겠다’는 모순된
현실에 적극적으로 대답해야 한다. 1000만 관객 뒤로 사라져가는
작은 영화들이 상영 될 수 있도록 극장을 허하여야 한다. 10개의
스크린을 가진 영화관이라면 응당 10개의 영화가 틀어져야 한다.
당장, 독립영화에 대한 구체적 지원을 이야기하여야 한다.
답답한 결론이지만, 스크린쿼터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많은
고민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한독협 게시판의 올라와 있는
한국독립영화협회 원승환 사무국장의 글 한 단락을 옮기며 글을
마치려 한다.
<다음 주 수요일에 스크린쿼터 사수와 한미투자협정 저지를 위한
영진법 개정 촉구 및 대국민 보고대회가 열린다고 합니다. 이번
보고대회는 주류영화의 제작을 전면 중단하고 참여하는 형태로
진행될 예정이며, 한독협에도 적극적인 참여를 바라는 요청이 와
있습니다. 솔직히 스크린쿼터에 대한 회원들(독립영화인들)의
반응 없음과 부정(?)적인 시선 속에서 어떤 입장을 취해야할지
상당히 난감합니다. 사무국 차원에서라도 일단 참여는 해야할 것
같습니다. 다만 그냥 나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이디어
차원입니다만) “문화의 공공성 획득을 위한 정책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피켓들을 제작해서 가지고 나가서 우리의 입장을
드러내 볼까 합니다. 좀 재미없는 표현이긴 하지만,
“문화다양성과 독립영화 활성화를 위한 독립영화 전용관
설치하라!”나 “스크린쿼터 유지하고 독립영화 지원 늘여라!”
같은 내용의 피켓을 들고 나가는 것도 방법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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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15 13:2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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