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서비스 분야 개방화/사유화에 맞선 민중진영의 투쟁이 필요할 때 |
세계화와 민중 제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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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철 (공공연맹 사무처장, 공공연대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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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를 모면하고자 하는 자본운동의 경향성이 날로 광폭해지고
있고, 치밀하고 집요하다. 이윤없이 살 수 없는 자본은 피를
찾는 흡혈귀 마냥 전지구를 돌아다닌다. 이게
세계화(globalization)다. 에너지, 식량, 교육, 의료, 물, 통신,
철도, 과학기술분야, 환경등 시장의 논리가 배제되어야 할
공공의 영역조차도 이윤추구의 대상이 된지 이미
오래이며(’95년 WTO가 출범하면서 공산품 뿐만 아니라 농업,
서비스, 지적재산권등의 분야에서 개방협상이 가속화 되어왔다)
공공서비스 시장의 완전 개방화를 요구하는 초국적 자본의
압력은 집요하게 진행되고 있다. 왜냐하면 그네들의 살길이기
때문에.
‘무역자유화’라는 이름으로 2차세계대전 이후 자본진영은
수탈과 착취를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세계적 기구(IMF, IBRD,
WTO)들을 만들어서 일명 ‘라운드(round)’라 칭해지는
다자간무역협상을 진행하여 왔다. 이는 라운드라는 명칭을 빼고
도하개발아젠다(Doha Development Agenda)로 이어지고 있고
DDA는 9번째의 실제적인 ‘라운드’라고 한다. 라운드라는 수평,
평등의 개념을 자본이 사용한 것은 참 아이러니 하지만,
총자본의 이해를 대변하기 위한 개별국가간의 협상이라 할 수
있는 이 무역자유화 협상 과정에 노동자 민중은 철저하게
배제되어 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단지 저항과 투쟁만이
우리에게 남겨져 있는 몫이다. 논의에 사전 개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지난 7월말 개최된 WTO 일반이사회에서 DDA 협상시한이 2005년
12월 홍콩각료회의까지로 연기되었다고 한다. 그만큼 자본간의
경쟁도 첨예하게 대립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아무튼
자본진영은 자본간 수탈경쟁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그들만의
‘규범’을, 형식은 바뀔지 모르지만, 계속해서 만들어 낼
것이다.
최근의 경향을 보면 자본은 일괄타결방식으로 진행되는 WTO
협상보다는 개별국가간 투자협정(Bilateral Investment
Treaty)이나 자유무역협정(Free Trade Agreement)을 더 선호
하고 있는 듯 하다.
이미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은 체결되었고 한일
자유무역협정(FTA), 한미 투자협정(BIT)이 내년 상반기 타결을
목표로 진행되고 있으며 한싱가폴 FTA도 추진중에 있다고 한다.
문제는 이러한 자본간의 협상결과가 노동자 민중의 생존권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것이 분명하게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그
대응에 있어 노동자 민중진영이 자본의 잰걸음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WTO DDA나 FTA, BIT등의 지역무역협상은
본질적으로 이윤추구의 자유화를 위해 존재하며, 초국적자본
특히, 금융투기자본을 중심으로 개도국 및 제 3세계 민중의 삶을
거덜 내려 달려들고 있음에도 말이다.
그런데 노동운동진영내 대응 양상을 보면 현상적으로 드러나는
쌀개방문제, 한일 FTA문제에 집중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으며,
지배집단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종속되는 경향마저 보이고 있다.
그러나 (공공)서비스 시장 개방문제는 소홀하게 취급되고
있다.
현재 서비스분야 교역은 전체 세계무역의 약 20%를 차지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경우 서비스 산업은 국내총생산(GDP)의 약
50%를 차지하고 전체 고용인구의 약 70%가 서비스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고 한다. 서비스분야의 교역과 종사자수는
앞으로도 계속 증가할 것이다. 특히, 공공서비스분야에 대한
개방 압박은 날로 거세지고 있으며 노무현 정권은 공공부문
구조조정 및 경영혁신의 미명하에 사유화(민영화)등
개방화․시장화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그만큼 서비스시장
개방 문제에 대하여 노동자 민중진영의 대응도 시기를 놓치지
않고 발 빠르면서도 힘차게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하나 분명히 해두고자 하는 지점이 있다. 공공부문에서
진행되거나 앞으로 진행될 서비스시장개방화 저지 투쟁이,
그리고 소유지배구조 개선 등의 투쟁이 공공성을 내세워 개선의
측면내지는 방어의 측면에만 머물러서는 결단코 안 되겠다는
생각이다. 또한 어쭙잖은 민족주의나 국가주의에 경도되어서도
안 되겠다는 생각이다. 자본은 스스로의 경향성과 이데올로기를
더 명확히 하고 더 철저하게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중심성과 경향성을 더 흐릿하게 잡아가는 흐름들이 더욱
노골화 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생존권을 위한
구조조정 저지 투쟁이든, 초국적 자본의 침탈을 저지하기 위한
투쟁이든, 자본 위기 탈출용 침략 전쟁에 반대하는 투쟁이든, 현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투쟁과 저항의 중심고리는 분명히 착취
없는 세상, 인간해방 세상을 향한 반자본 투쟁이어야 한다.
400만 농민을 50만으로 줄이고자 하는 신자유주의판 엔클로저를
반대하기 위해서 농민들은 투쟁해야 하며, 교육마저도 자본의
시장논리와 이윤추구논리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교육시장개방
반대에 교육노동자들은 일상적(수업을 통해서)으로 뿐만 아니라
치열하게 저항해야 하며, 아시아 지역 지배구도를 재편하려는
한일 FTA에 반대하는 투쟁에 앞장서고 있는 금속노동자들은
금속답게 날카롭게 투쟁을 해야 하며, 공공성을 이윤추구의
하위도구로 전락시키는 공공서비스 시장 개방화 저지를 위하여
공공노동자들 또한 힘차게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투쟁이 반자본이라는 중심성을 가지고 거대한
노동자 민중의 저항과 투쟁으로 상승되어야 한다. 100만의
민중이 학살 당하는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과 한해에 3,000명의
노동자가 일하다가 산재로 학살당하는 남한사회, 그리고 이미
지구화되어 있는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의 현실에서 ‘반자본’을
얘기하지 않으면 기만이지 않은가! 투쟁을 조직하고 실천하는
것은 온전히 노동의 몫이다.
** 사진설명 : 칸쿤 투쟁 당시, 이경해 열사 자결 직전 행진
출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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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10 14:3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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