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쌀협상에 대한 시민사회의 공동대응을 모색하다 -‘쌀협상’ 관련 시민사회단체 간담회 후기 |
세계화와 민중 제31호
|
최준영(문화연대 정책실)
|
kopa_31_02.jpg (35 KB)
|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이후 10년간 유예되었던 쌀 개방
협상이 다시 시작되었다. 94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의 결과,
한국은 쌀 개방을 10년간 유예하는 대신에 국내소비량의 1~4%에
해당하는 쌀을 의무적으로 수입하는 ‘저율관세물량
의무수입제’를 도입하였다. 이에 따라 2004년 현재 한국은 20만
5천톤(4%)의 쌀을 수입하고 있다. 하지만 UR 협상은 2005년 이후
쌀 개방 문제에 대해서는 2004년 중 협상하기로 하였고, 이
협상을 통해 다시 한 번 개방을 유예할 것인지 아니면 ‘관세화
개방’을 할 것인지를 결정하기로 하였다.
쌀 ‘관세화’ 개방이란 실질적인 쌀 개방을 의미한다. 즉
(관세화 개방을 결정하면) WTO가 정하는 범위 내에서 관세를
매길 수 있지만, 관세를 매기는 것 이외에 쌀의 수입과 수출을
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된다. 그리고 현재 중국과 미국의
쌀의 가격을 고려한다면 관세를 부과한다고 해도 한국 쌀은
가격경쟁력을 상실하게 되고, 이렇게 되면 전체 농가 중 80%가
쌀농사를 짓고 있고 농가소득의 25%가 쌀농사에서 발생하고 있는
한국 농업은 근본에서부터 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
현재 한국 정부는 미국, 호주, 아르헨티나, 태국, 중국, 이집트,
캐나다, 인도, 파키스탄 등 한국과의 쌀 재협상 의사를 밝힌
9개국과 차례대로 협상을 벌여나갈 예정이다. 이미 미국, 중국,
태국과 각각 한 차례씩의 협상을 진행하였으며, 여기서 한국
정부는 쌀 관세화 개방 유예기간의 연장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에 반해 협상에 임하는 각 국의 입장은 조금씩
다른데, 한국에서 소비되는 쌀의 주요 생산국인 미국과 중국의
경우가 그렇다. 즉 상대적으로 쌀 생산가격에서 비교우위를
점하고 있는 중국이 쌀 관세와 개방을 강조하는 반면, 미국의
경우 쌀 관세화 개방을 주장하고는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의무수입량을 늘리고 여기서 미국 쌀의 수입량을 늘리는 것을
목적으로 협상에 임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5월 12일과 21일 두 차례에 걸쳐 ‘쌀협상 관련 공동대응
모색을 위한 시민사회단체 간담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는
‘쌀’ 문제가 가격, 경쟁, 무역, 시장 등의 논리와 기준으로만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식량주권과 생명의 문제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이번 쌀협상에 대한 공동 대응을 위한 방안을
논의하였다.
간담회에서는 우선 1) 쌀협상의 동향에 대한 점검을 하였고, 2)
쌀과 식량의 의미, 중요성에 대한 토론, 그리고 3) 이후
대응방안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였다. 전체적으로 쌀협상의
중요성, 쌀과 식량, 식량주권의 중요성에는 모두가 동의하였다.
하지만 쌀협상에 대한 대응을 농민의 문제로만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각 사회운동진영이 실천할 수 있는
주제와 운동내용이 고민되어야 한다는 점이 제기되었다. 그리고
두 차례의 간담회를 통해 나온 쟁점 - 쌀협상 관련 대응을
사회운동의 전영역으로 확장시킬 수 있는 방안 - 에 대한
워크샵을 6월 2일에 진행하기로 결정하였다.
2차 간담회 직후, 1, 2차 간담회 평가와 이후 대응과 관련하여
전국농민회총연맹 박민웅 사무총장과 짧은 인터뷰 시간을
가졌다. 다음은 박민웅 사무총장과의 일문일답이다.
- 질문1 : 오늘까지 2차례 진행한 간담회를 짧게 평가해주셨으면
합니다. 간담회의 의의와 성과라고 할까요? 이런 부분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박민웅 사무총장 : 오늘까지의 간담회를 통해 쌀투쟁에 대한
전국민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단초가 마련되었다고
봅니다. 물론 실천과제와 내용에 있어서 조금씩 입장이 다를
수도 있지만, 공통의 과제와 실천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 질문2 : 현재 쌀협상과 관련하여 주요한 쟁점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국제적인 흐름을 중심으로 좀 설명을 해주시죠.
- 박민웅 사무총장 : 대표적으로 미국과 중국이 쌀협상과 관련한
태도에 차이가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쌀관세화 개방보다는
오히려 미국 쌀에 대한 의무도입량 증가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쌀가격의 측면에서 중국보다 오히려 가격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에 반해 중국은, 관세화를 통한
가격경쟁력이 있다고 보기 때문에, 관세화 개방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 질문3 : 한국 정부는 이제 9개국과 쌀협상에 돌입했는데요,
정부의 협상전략이고 할까요? 혹시 이런 부분에 대한 판단은
어떠한지요?
- 박민웅 사무총장 : 한국 정부는 공식적으로는 “국익에 도움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거나 “관세화유예가 목표”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농민생존, 식량주권, 농업의
중요성에 대해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협상에 나서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 판단입니다. 협상에 임하는 태도가 지극히
수세적이고 또 패배적이라고 여겨집니다.
- 질문4 : 쌀, 식량, 농업에 대한 관점이라고 할까요. 이런
부분들이 무역의 대상 혹은 비교우위 논리에 기반한 국제무역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이야기하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쌀,
식량, 농업을 바라보는 관점이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
인터뷰를 정리하시면서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 박민웅 사무총장 : 1994년 타결된 우루과이라운드는, 그 출발
자체가 잉여생산물을 팔기 위한 무역장벽의 해소에 있었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농산물과 지적재산권 등의 분야가
무역의 대상으로 편입되었구요. 하지만 식량의 특징과 중요성이
반영되지 못한 채 농산물이 무역의 대상이 편입된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WTO 체제로 이야기되는 국제무역질서에서는,
사실은 농산물을 수출하고 이윤을 얻는 곳은 초국적기업농일
뿐입니다. 쌀협상을 앞두고 있는 지금, 한국의 시민사회도
식량주권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쌀협상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을
벌여나가야 할 것입니다.
========================================================
[참고] 전국농민회총연맹이 제출한 ‘쌀개방 저지, 식량주권
사수운동의 필요성’의 내용
1) 쌀농사가 무너지고 농업, 농촌이 붕괴됩니다
농업의 근간인 쌀이 완전 수입자유화되면 가격경쟁력에서 뒤질
수밖에 없는 농민들은 쌀농사를 포기하거나 탈농하게 됩니다.
쌀농사는 대폭 축소되고 쌀농사를 지으며 살아왔던 농민들은
다른 작목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데, 그러면 여타 작목 또한
생산과잉을 초래하게 되어 가격폭락을 발생시키게 되고 농민들은
농사를 지어도 빚잔치를 하게 됩니다. 이와 같은 악순환은 결국
농업과 농촌을 붕괴시킬 것입니다.
2) 식량주권을 상실하고 식량안보가 위협받습니다
통상 주권이라 함은 군사, 에너지, 식량을 말합니다. 이미 군사,
에너지는 외국에 의존하고 있고 식량마저 외국 다국적기업에게
의존하게 된다면 어찌 주권국가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쌀은
‘카길’ 등 5대 곡물다국적기업이 국제 쌀거래의 80%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위해 WTO는 쌀마저 상품화하고
우리에게 수입개방을 강요하고 있는 것입니다. WTO 규정에는
수입국이 언제든지 쌀을 팔 것을 요구하면 팔아야 한다는
강제규정도 없습니다. 따라서 만일 이들 5대 곡물기업이
담합이라도 해서 쌀을 팔지 않겠다고 하면 우리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습니다.
3) 논과 벼가 제공하는 다원적 기능이 파괴되고 환경대재앙이
옵니다
쌀농사를 포기하면 논 또한 방치되거나 다른 용도로 이용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논의 형상을 유지하면서 수행해왔던
산소공급, 홍수방지, 환경보전, 문화계승 등 다원적 기능이
파괴될 것이며, 환경대재앙을 피할 수 없습니다.
4) 농업, 농민의 몰락은 지역경제를 파탄내고 천문학적인 사회적
비용을 지출하게 됩니다
대부분의 지역은 농민들의 경제활동으로 유지됩니다. 지금도
농민들의 경제활동 위축은 지역경제의 위축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쌀개방으로 인한 농업, 농민의 몰락은 지역경제를
파탄낼 것입니다. 또한 농민들의 탈농과 도시로의 이농현상은
더욱 증가할 것이고, 이는 실업문제, 빈민문제, 주택문제,
교통문제, 상수도문제 등 많은 사회문제를 야기할 것입니다.
이에 농업, 농촌이 유지된다면 지출하지 않아도 될 비용이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사회적 비용을
지출해야 할 것이고, 이는 고스란이 도시민들이 세금으로
부담해야 합니다.
*사진 설명 : 간담회 현장 사진
|
2004-06-02 17:56:10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