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도에 NAFTA 발효에 맞서 싸빠띠스타 민족해방군이
봉기를 일으킨 지는 10년이 지났고, 99년에 시애틀에서의 WTO
각료 회의에 맞서 폭발적인 투쟁이 등장한 지는 벌써 5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 기간 동안 각종 국제경제 기구들의 회의장
밖의 시위와 경찰들의 삼엄한 경비는 이제 익숙한 풍경이
되었고, 동시에 각종 국가, 지역, 양자, 다자, 세계 차원의 대안
국제회의도 일상화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무장 투쟁 중인
싸빠띠스타 군은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 시류에서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회단체 활동가 몇
명이 시애틀에 갔었던 것에 비해 칸쿤 투쟁이나 최근의
세계사회포럼에 백명이 넘는 대오가 참가했다. 민주노총, 전농
등의 주요 대중 조직들도 움직이고 있는 것도 큰 변화다. 지역
차원의 자유 무역 협정에 대한 대응도 시작되어, 이번 달 초에는
일본에서 일본 사회단체, 노동조합 일부와 함께 한-일 FTA에
반대하는 공동 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적어도 운동 사회
내부에서는, 이전에는 자국 내부의 문제로만 인식되었던
문제들을 세계적/지역적 차원의 변화와 연결시키고, 그 연관성에
기반하여 투쟁을 조직한다는 면에서 분명히 진전이 있었다.
자유무역협정 체결의 형태로 나타나는 신자유주의적 정책들의
관철은 제반 민주적 권리의 제약과 그동안 민중들이 쟁취했던
제도들을 무력화시킨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은 단순하지가 않고, 우리의 방향성도
명쾌하지가 않다. 진보적인 성격의 연구소들뿐만이 아니라,
중도, 독립 성향의 연구소들도 NAFTA가 가져올 것이라고
선전했던 이익들이 대부분은 거짓이었다고 발표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NAFTA 십년의 각국 대차대조표가 많은 사람들이
예상했던 것 만큼 명백한 결과를 우리에게 선사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많은 산업들은 피해를 입었고, 멕시코 농민들과 도시
빈민들과 같은 많은 피억압 계층들의 처지는 분명 비참해졌다.
그렇지만, (보수적 언론에서 부풀려지긴 했더라도) 일부
산업에서 예상되었던 타격은 나타나지 않은 경우도 있고, 그
와중에서도 생존 전략에 성공한 집단의 사례들도 있다. 각국의
민중이라고 하는 집단이 단일한 실체가 아니라, 국경을 횡단하는
계급적, 산업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맥락에서 한-일, 한-칠레 FTA에 대해서 국내 노동자들과
농민들 사이에서 사안에 임하는 결의의 수준이 다른 것이다.
이러한 역학관계에 대해서 ‘저들’의 분석력은 놀랍다.
협상에 대한 정보의 공개 수준, 주요 피해 집단의 결집력 및
정치적 영향력, 협상 내용과 피해 집단 사이의 직접적인 연관성
정도 등에 대한 치밀한 분석과 예상을 근거로 움직인다. 물론
이들에게 농민, 빈민, 노동자 민중 집단은 주체성이 부여된
살아움직이는 이들이 아니라 ‘국익‘이라는 허상을 쫓는데
있어서 귀찮고 수동적인 존재일 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우리에게 함축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바로 ’주체의
형성‘이라는 문제이다. 서로 각기 다른 사회 세력간의 동맹의
형성이라는 어려운 과제가 여전히 우리 앞에는 놓여 있다.
20세기 중반에 그람시를 괴롭혔던 바로 그 문제, 각기 다른
조건과 다른 문화, 그리고 피상적으로는 상이한 이해관계를 지닌
집단들에게 단일한 문제의식 하에 변혁의 전망을 제시하고,
그들을 모을 수 있는 그 방법 말이다.
단기적인 과제들 또한 만만치 않다. 우선 ‘자유’와
‘무역’에 포장된 FTA의 파괴적 성격에 대한 비타협적
이데올로기 투쟁의 강화가 절실하다. 자유무역협정이 자유와
야기하는 파괴적 결과들과 ‘국익’의 허구성에 대한 폭로,
각국의 민주적 제도를 무용화시키는 조항들에 대한 선전, 환경
보호 장치들과 복지 체계를 허물어뜨리는 조치들에 맞선 담론
투쟁은 활성화되어야 한다. 또한 한국의 자유무역협정 대상이
되고 있는 국가들의 운동 지형과 산업별 특성에 대한 이해와
주요 운동 단체들과의 보다 밀접한 관계도 필수적이다.
자유무역협정 체결 반대에 있어서 전술적, 전략적 접근도
다듬을 필요가 있다. 지난 5년간 진전이 있어서 이번 달 초의 한
대안세계화 포럼에서는 통상 협상에 관한 대안입법을 위한 안의
기초도 마련되고, 몇가지 원칙에 대한 공감도 상당 부분
이루어졌다.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가 될 수 없더라도, 다른
국가에서는 이미 실행 중인 협상에 관한 의회의 권한 강화,
협상의 정보 공개, 노동조합 및 유관 단체들의 의견 수렴 및
협상 과정 참여, 피해 노동자들에 대한 보상안을 FTA 반대
투쟁에 있어서 어떻게 전술적으로 활용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보다 세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보인다. 앞으로도 더욱 늘어날
FTA 투쟁, 한단계 진전된 모습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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