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FTA가 국내 민중 및 산업에 폭풍을 불러올 것이 분명한
반면 한일 FTA협상에 관한 정보는 한국 민중에게 알려진 바가
극히 적다. 지난 11월 1일부터 3일 까지 동경에서 열린 한일 FTA
제6차 협상에서 어떠한 논의가 진행 되었는지 공개된 내용 역시
전무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교통상부는 제6차 협상이
마무리 될 즈음에 보도자료를 발표하였다. 이 자료는 당해
협상에 몇 명이 참석하였고, 당해 협상에서 한일 양국의
‘통합협정문 작성 작업을 계속’하고 ‘양국은 FTA의 핵심인
상품양허안에 관해서도 계속 협의해 나가기로 합의’하였다는
것을 밝히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렇게 협상의 정보가 철저히
차단된 상태에서 한일 FTA 협상이 어떠한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고, 한국 민중에게 미치는 구체적 영향이 무엇이가를
분석하기란 쉽지 않은 상태이다.
한일FTA 협상이 작년 12월 이후 여섯 차례의 협상이
진행되었지만 본격적인 협상이 시작된 것은 올해 4월 3차 협상
이후인 것으로 보인다. 제1차 협상에서는 협상추진의 체제와
일정에 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제2차 협상에서는 각 국의
의제별 기본적 입장에 대한 의견교환이 이루어 졌다. 이들
협상에 따라 양국은 내년 연중 타결 목표로 2달 간격으로 7개의
협상분과를 구성하여 협상을 진행하기로 합의하였다. 7개의
협상분과는 시장접근, 투자/서비스, 비관세조치, 무역규범,
상호인정, 분쟁해결, 협력 분과로 구성되며, 외교통상부,
산자부, 재경부가 각 각 4 개, 2개 및 1개 분과의 협상을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구성은 한일 FTA에
관한 한일민관학합동보고서가 포괄적인 FTA를 추진할 것을
권고한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즉, 일반적인 FTA가
관세철폐와 서비스시장 개방 등에 초점을 맞추는 것과 달리
한일FTA 협상은 비관세조치, 경제협력 등이 특히 강조되어
협상분과가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FTA 협상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협정문’과
‘양허안(서비스의 경우 유보안)’이다. 제3차 협상(2004.4)에서
한일 양국 정부는 각자의 협정문 모델을 교환하고 본격적인
협정문 협상을 진행하여 왔고, 협정문안에 관해서는 주요 쟁점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타결된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합의된
통합협정문안 뿐만 아니라 우리 측 협정문안을 공개하기를
거부한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그리는 한일 FTA의 구체적 내용을
판단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한칠레FTA 협정문이 WTO관계협정 및
NAFTA 협정문안에 많이 의존한 점을 볼 때, 우리 측 협정문안
역시 그러한 기조에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일본이
경제파트너십협정(EPA, Economic Partnership Agreement)이라는
이름으로 최근 추진하고 있는 FTA협정은 상대적으로 급격한
시장개방 보다는 인력이동, 기술협력, 전문가 육성 등
경제협력에 보다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러한 모델은 일본이
상대적으로 경제 강국인 동아시아지역에서 원활한 FTA를
추진하기 위해 고안한 모델로서 일싱가폴 FTA 협정 이래
동아시아 지역에 적용시키고 있는 모델이다.
통합협정문은 양국이 포괄적 FTA를 추구하기로 한 것으로
보았을 때, 이러한 일본 측 협정문안이 주요 모델이 된 것으로
보이며, 다만 비관세장벽, 경제협력 등의 분야가 특히 강조되어
수정될 것으로 보인다. 즉, 일본의 주요 상품의 관세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한일 FTA로 인한 관세 철폐는 한국 측에
필연적으로 해가 되므로, 그간 한국 기업들이 가지고 있던
일본시장 진출의 애로사항이었던 유통장벽, 위생 및 검역조치,
기술장벽, 정부조달시장의 차별 등 비관세 장벽 철폐가 한국
측으로서는 협정문안 작성에 있어 큰 관심거리인 것이다.
마찬가지의 이유로 한일 FTA가 일본의 자본과 기술 이전의
결과를 가지고 오지 못한다면 한일 FTA는 한국산업에 피해만 줄
것이므로, 양국의 경제협력에 관한 항목에도 한국 정부는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일본 측은 일정한
비관세 장벽 및 경제협력이 비정부기관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정부가 관여할 수 없다는 이유로 소극적인 입장을 보여
통합협정문의 완성이 지연되고 있다.
최근 동경에서 벌어진 제6차 협상에서는 한국 민중의
원정투쟁단의 시위와 그간 첨예한 쟁점사항 등을 이유로 협상이
원만하게 진행되었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 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양국의 상품 양허안이 교환된 것은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서비스 유보안의 교환 여부는 분명하지 않은
상태이다. 상품 양허안이란 각 국이 관세 철폐 대상인 상품(WTO
규정에 의해 90%이상의 상품 포괄)에 대한 단계적 철폐 일정을
기록하여 상대방에 제시하는 스케줄로서 그 일정에 따라 각
산업의 희비가 엇갈리게 된다. 이 양허안 역시 정부가
공개하기를 거부한 상황에서 어떠한 산업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구체적으로 분석하기는 어려운 상태이다. 다만 각 국은
자국의 민감한 상품을 양허에서 제외하거나 철폐의 속도를
늦추는 양허안을 작성하여 상대방에 전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양허안은 향후 협상을 통해 그 폭과 속도가
조정되게 되고 최종 관세 철폐 일정은 가속화되게 된다. 한국
측의 현행 평균관세가 8-9%인 반면 일본은 농수산물 및 섬유상품
등을 제외하고 관세가 매우 낮은 상태이기 때문에 한국
측으로서는 양허안 협상에서 큰 손해를 볼 수 밖에 없다. 즉,
이미 일본은 관세율이 0%인 상품이 55%가량이고 유관세인
대부분의 비농산품의 관세율 역시 3%미만인 상황인 반면 한국의
무관세 품목은 13%에 불과하여 협상에 의해 관세 철폐 대상이
되는 상품의 수와 폭이 한국 측이 필연적으로 많을 수밖에 없는
부담을 안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품양허안과 함께 각국이 특히 관심을 보이는 분야가
원산지 규정이다. 한국과 일본의 기업들이 해외에 진출하여
저렴한 노동력을 이용하여 저가로 생산된 상품을 상대국에
우회수출을 방지하는 것은 기업의 입장에서 중대한 이해 사안인
것이다. 또 다른 주요 협상의제는 서비스 유보안 협상이다.
서비스 유보안이란 자유화 대상에서 제외(유보)되는 서비스업의
종류를 기재한 표로서 양국이 포괄적인 FTA를 추진하기로 합의한
마당에 자유화 대상에서 제외되는 서비스 산업은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 밖에도 한국 측은 일본 정부조달 시장의
진출을 위한 정부조달협상, 인력의 이동 협상, 긴급 수입제한
조치 등의 협상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으나 지면 관계상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기로 한다.
한일 FTA 협상이 어떠한 방향으로 진행되던 간에 동 협정이
한국 산업 및 노동시장에 불러올 충격은 막대할 것이라고
일반적으로 공유되고 있다. 또한 한일 양국은 이러한 충격을
통해 양국 산업의 구조조정을 촉진한다는 것이 공식적인
입장이다. 다만 구체적인 협상의 과정에서 피해를 보는 산업과
노동자의 규모와 그 피해 속도가 구체화 될 것이고, 이득을 보는
산업 역시 구체화 될 것이다. 협상의 진행경과와 관계없이
자동차, 기계, 화학, 전기전자 산업과 이러한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피해는 불가피 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부가 현재
계획하고 있는 FTA들이 순차적으로 추진되게 될 경우 그 피해는
모든 노동자, 농민 및 서민으로 확장될 것이고 그 수혜자는 일부
대기업에 한정될 것이다. 또한 동아시아를 지역을 상정할 경우
그 최대 피해자는 지역 내 최빈곤 개도국의 민중이 될 것이다.
한칠레 FTA 투쟁이 농민들의 투쟁으로 고립되고 노동자들의
지원이 부족했던 것을 되새길 때, 한일 FTA 및 향후 FTA와
관련하여 민중진영의 단결이 무척 중요하다 할 것이다. 하나의
협정에 대한 피해 당사자로서의 요구를 넘어 정부의 신자유주의
통상정책에 대응한 단결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라
할 것이다. 또한 현재 동아시아 지역에 남발되고 있는 FTA
협정에 대응해 아시아 민중적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것 역시
중요하다 하겠다. 우리가 일본과의 FTA를 통해 일정한 피해를
보는 것은 반대하지만, 경제 약국인 동아시아 국가와 FTA를
체결하여 이득을 보자는 자세는 경계되어야 할 것이다. 어려운
점은 이렇게 남발되고 있는 동아시아 지역내 FTA에서 한국이
소외되어 피해를 볼 수 있는 점이다. 일본과 필리핀과의 FTA
협상은 일본이 필리핀 간호사의 자격인정과 인력이동에 일정의
양보를 함으로서 타결의 단계로 접어들고 있으며, 태국과의 FTA
협상 역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
민중진영의 역량으로서는 동아시아 지역에 남발되는 FTA를 막을
수는 없다. 동아시아 민중의 연대투쟁과 함께 동아시아 민중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FTA의 틀을 넘는 대안적 통상협정 모델의
개발을 고려하는 것을 신중히 받아들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