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당신이 나를 도우러 여기에 오셨다면,
당신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여기에 온 이유가
당신의 해방이 나의 해방과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라면,
그렇다면 함께 일해 봅시다."
- 멕시코 치아파스의 어느 원주민 여성 -
지난 2월 18일 - 26일까지 스위스 제네바에서는 약 300여명의 세계 민중,노동운동가들이 모여, "자유무역과 세계무역기구에 반대하는 지구적 민중행동" 제1차 국제회의가 열렸다. 이 국제회의의 연원은 1996년 멕시코 라칸돈 정글에서 열린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대와 인류를 위한 제1차 대륙간 회의"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멕시코 치아파스주의 원주민운동체인 '사파티스타'는 1994년 1월 1일, 북미자유무역협정(NFTA)의 발효를 계기로 봉기를 일으키면서, 사회주의권의 몰락이후 절망과 패배 감 속에 빠져있던 전세계 민중들에게 새로운 활력소를 제공했다. 자치(self-governance)와 연대 (solidarity)라는 새로운 정치적 정수, 초국적자본의 신자유주의 공세에 대항하는 전투적인 투쟁, 그 리고 전세계 민중들에 대한 '연대투쟁'의-도와달라는 것이 아닌, 함께 투쟁하자는- 호소는, 그들을 멕시코의 어느 한 지역에 존재하는 '원주민운동체' 이상의 의미를 갖게 했다. 이들은 일견 모순될 수도 있는 두 개념, 자치와 연대를 지난 수년간 실현해왔다. 자신들의 자치만이 아니라, 멕시코 및 전세계의 수많은 공동체들의 문화적, 정치적 자치를 옹호하고, 그들의 고통이 자신들과 다르지 않음 을, 같은 연원을 같고 있음을 그들에게 전하면서 '연대'를 호소하고 실현해왔다.이러한 정치적 정수는 1996년 라칸돈 정글에 모인 수천명의 전세계 민중운동가들에 의해 확인되 었고, 이듬해인 1997년 스페인에서 제2차 대회가 열렸다. 이 과정에서 신자유주의 및 자유무역 협정 들에 반대하는 전세계 민중운동진영의 투쟁과 저항을 보다 효과적으로 수행할 조정기구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국제조직'이 아닌 '국제적인 조정기구(네트워크)'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역사 속에서 탄생한 네트워크가 '자유무역과 세계무역기구에 반대하는 지구적민중행동'(Peoples' Global Action)이다.
제1인터내셔널에서 맑스주의에 의해 무정부주의자들이 축출당했으며, 제2인터내셔널(사회주의 인 터내셔널)은 코민테른(제3인터내셔널)과 분화되었다. 코민테른은 전세계민중들의 저항을 촉진하고, 그들 삶을 위한 투쟁을 적극 지원하기보다, '사회주의 조국 방어'라는 이데올로기 속에 세계 민중들 의 투쟁을 억압하고 말았다. 이러한 역사는 보다 강력한 이데올로기, 보다 강력한 중앙집중식 조직 이 국제연대투쟁의 실현에 있어서 필수적 요소인가라는 물음에 심각한 회의를 갖게 한다.
지구적민중행동(PGA)은 철저하게 '탈중심(decentralization)과 자율(autonomy)'을 운영의 기본원리 로 한다. 지방적 수준, 민족국가적 수준, 문화적 수준 등 모든 수준에서의 공동체들의 자율과 자치 를 옹호하고, 그것을 억압하는 신자유주의 공세와 억압적 기구들에 대한 투쟁을 상호지원한다. 또한 지구적민중행동(PGA)은 강령(platform)이 없다. 조직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신 선언문(manifesto)이 있을 뿐이다. 현시기 세계의 모든 민중운동, 저항운동세력이 공동으로 투쟁해야 할 대상과 공동 행 동 전략을 정식화하고 있다. 초국적기업과 그들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는 다기한 자유무역 협정들과 초국적 기구들(WTO, IMF, WB 등)이 그것들이다.
이번 회의에는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아메리카 등 모든 대륙에서, 그리고 노동, 농민, 원주민, 환경, 실업, 원주민, 무주택자 등 모든 부문별 운동조직 및 개인들이 참여했다. 세계화에 의해 각 대 륙, 각 부문들이 어떻게 파괴되고 있는가, 그에 대한 대응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등에 대해 우 리는 서로 정보와 의견을 교환했다. 신자유주의는 제3세계 국가에서 뿐만 아니라, 제1세계 민중들의 삶도 절망에 빠뜨리고 있었다. 실업과 사회적 소외, 무주택의 문제는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 다. 북반구 국가들에서 최근 실업자운동, 빈곤에 반대하는 운동, 무주택자들의 저항 및 점거투쟁 등 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신자유주의 공세의 북반구 민중들에 대한 파괴적 효과를 짐 작할 수 있다. 물론 세계화의 가장 큰 피해자는 제3세계 민중들임이 분명하다. 전통적인 농업부문, 자치 공동체들이 완전히 파괴되었고, 노동자들은 극도의 착취에 시달리고 있다. 아동노동, 여성노동, 싼임금노동 등 제3세계 노동자들에게 강요되고 있는 현실은 '절망' 그 자체이다. 또한 수많은 원주 민공동체들이 초국적기업의 탐욕스러움에 의해 그들의 토지, 그들의 자원, 그들의 문화를 빼앗기고, 그들 삶 전체가 절멸당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초국적자본에 의한 제3세계 각국의 생산-소비 의 사회축적구조가 완전히 파괴되어, '민중들의 삶을 위한 사회/경제시스템의 복원'을 사실상 절망에 가까운 것으로 만들어버렸다는 점이다. 생존을 위한 식량 재배 토지들은 초국적기업의 이윤만을 위 한 '커피농장'으로 바뀌어졌고, 토지, 물, 삼림 등 우리들 삶을 지원하는 것들조차 자본가들은 자신 들을 위한 '상품'으로 만들어버렸다. 한마디로 지구상의 모든 것을 자본의 이윤추구에 종속시키려는 전략이 바로 세계화이며, 지구화이며, 신자유주의이다.
이 지구상에서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공세에 예외는 있을 수 없다. 특히 IMF와 DJ정권에 의해 추 진되고 있는 일련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한국 민중 및 노동자들의 목을 점점 옥죄어 오고 있다. 우리의 고통이 남미 치아파스주 원주민의 고통과 같은 연원을 갖고 있고, 우리의 해방이 그들의 해 방과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의 투쟁이 이곳 한반도에서 진행되더라도, 우리의 관점은 항상 지구적이어야 한다. 우리만의 일시적 이익을 위해, 제3세계 민중들에게 또 다른 고통을 전가하는 경우가 발생되지 않도록 하자. 이제 세계 민중들과의 연대투쟁은 책 속에서만 논해질 것 이 아니다. 우리의 현실이 되어야 한다. 경쟁이 아닌 연대의 원리로 신자유주의 공세에 당당하게 맞 서자.
"우리는 민중들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경쟁과 경쟁력이라는 원칙을 거부한다. 대신 우리는 존엄과 평등, 정의 그리고 자유라는 틀 속에서의 상호 협력과 연대의 원칙을 지지한다."
(지구적 민중행동 선언문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