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ainst the Current지 편집부
"A Letter form the Editors: The IMF's Imperial 'Reform'", ATC, #73, March/April 1998. (http://www.igc.org/solidarity/atc/edit.3html)
* 해설 : Against the Current는 로버트 브레너 등이 북미에서 발간하는 좌파 저널이다. IMF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이 냉전의 해체 이후 본격적으로 추구되고 있는 제국주의 세계재편(국가주의 자본주의에 대한 공격)의 일부이며, 남한 노동운동의 대응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함을 웅변하고 있다. 이 글의 명의는 그냥 '편집자의 글'로만 되어있다.
국제통화기금의 한국 '구제'란 그릇된 지칭일 뿐이다. IMF 프로그램은 한국을 구제하려는 것이 아니라 한국 자본가들에게 잘못된 대부를 행한 미국, 유럽, 일본 은행들을 구제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1997년 남한에서 폭발한 위기는, 부분적으로는 이 나라 자체의 사정들에서 비롯된 것이며, 부분적으로는 세계 제조업 시장의 과잉공급 상태라는, 이전에 비해 악화된 환경의 산물이고, 부분적으로는 또한 일말의 위기 조짐에조차 자신들의 대부를 철수해버리는 은행가들의 성향 탓이다. 그리고 전체적으로는 한국기업과 국제 기업 및 은행들의 고삐풀린 무정부적 이윤 추구 활동들의 결과이다. 이에 대해 IMF는, 위기 상태의 한국 경제에 도움의 손길을 건내기는커녕, 오히려 현재 이 나라 경제의 구조조정에서 드러나고 있는 대로 이를 단지 파괴하려고만 하고 있고 신자유주의 노선에 따라 재구조화하려 하고 있다. 다국적 기업들과 국제 은행들에 의한 침투와 장악을 촉진시키기 위해서 말이다. 자유주의적인 미국 하원의원들과 민중주의적 비평가들은, IMF의 대(對)한국 프로그램이 미국 납세자들의 돈으로 세계의 일부 최대 규모 금융 기구들의 이윤을 지켜주려 하는 것이라며 이에 반대하고 있다. 이러한 이들의 주장이 강력한 근거를 지니고 있다는 것은 의심할 바 없다. 하지만 사실 이들은 여전히 쟁점의 부차적 측면만을 강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중의 투쟁이 펼쳐지고 있다. 미국 주도하의 IMF는 한국의 국민 경제와 대치하고 있고, 동시에 한국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이 나라 경제의 지배계급과 통일전선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IMF의 한국 구제는, 국가주의적이며 고도로 보호주의적인 국가 발전 노선을 착수했을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놀라운 성공을 거두기까지 한 눈엣 가시같은 일국의 정치경제에 대한 미국의 제국주의적 개입의 한 사례이다. 미국의 사업상의 이해에 따른 한국 산업 및 금융의 강제적인 개방은 미국의 공세의 결과로 야기된 것으로서 강력히 반대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미국-IMF의 개입에 대한 반대가 보다 우선적으로 취해져야만 한다. 그리고 IMF의 압력을 고용 안정의 침해, 대량 정리해고를 감행하며, 보다 일반적으로는 자신들의 위기를 한국 노동계급에게 전가하는 구실로서 활용하려 하는 한국 지배계급의 계획들에 대한 이 나라의 전투적 노조들의 투쟁을 지원해야 한다. IMF의 대(對)한국 프로그램은, 한국, 대만, 싱가포르, 그리고 물론 일본까지 포함하는 동아시아의 국가 조절적 '조직화된 자본주의들(organized capitalisms)'중 하나를 결정적으로 퇴각시키려는 미국 제국주의의 시도의 첫 사례를 보여준다. 국가주의적 '사회주의들'의 진영을 없애버린 뒤에 이제는 국가주의적 자본주의(statist capitalism)들을 몰아대고 있는 것이다. IMF의 다른 대부분의 타겟들과는 달리 남한은 본래 의미에서의 '개발도상국'은 더 이상 아니다. 지난 40여년 동안 이 나라는 절망적인 빈곤 상태로부터 뛰어올라 그리스나 포르투갈 같은 남유럽의 상대적 저발전 국가들에 맞먹거나 어떤 경우 이를 능가하기까지 하는 생산성 및 생활수준에 도달했다. 게다가 한국은, 많은 부분 영미식 자유 시장 원칙들을 조롱함을 통해서, 그리고 상당한 수준까지 미국 및 국제 자본과 대등하게 교역함을 통해서, 그러한 경제 발전의 궤도에 들어섰던 것이다. 제국주의의 사명 - '국민' 경제란 없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과거의 패권 국가들에 의한 어떤 시도도 능가하는 제국주의적 사명을 심화시키고 체계화해왔다. 미국은, 반공이라는 구호와 함께, 상품들, 직접 투자와 대부 등의 무제한의 흐름이라는 '자유주의적' 이상의 명목 아래, 미국의 특수한 사업상의 이해들의 방어라는 차원을 넘어서서 자신의 역할을 규정하기에 이르렀다. 비록 이러한 이해들을 실제로 양보한 적은 드물었지만 말이다. 미국 주도의 문명화라는 것의 사명은 세계적 규모에서 선진국의 다국적 기업들과 은행들의 자본 축적의 일반 조건을 보장해주는 것이었다. 그 결과 이는 성공적인 반(反)자본주의 혁명을 막거나 필요한 경우 이를 제거하는 데에까지 이르렀다. 자주적 지향을 지닌 민족주의적 국가들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유지하려는 거대한 프로그램을 그 힘이 미치는 데까지 수행하려 애써왔던 것다. 사실 이러한 국가들은 사적 자본가들의 소유에 대해 일말의 적의조차 보이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나라는 국민 경제가 '국민(the nation)'의 통제에 복속되어야 한다는 전복적인 관념을 분명히 보여준다. 사실 거의 언제나 '국민'이란 말은 맹아 상태의 산업 자본가 계급, 지역적인 자본주의 국가 등을 의미하지만 말이다. 이러한 관념들, 이러한 국가들을--비록 어떤 경우에는 묵인하지 않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미국은 흔쾌히 용인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 나라들은 자신들의 국내 시장을 보호하고 외국인 직접 투자를 통제하며 심지어는 외국 세력의 침투에 대항하여 대담하게도 그 나라의 금융 부문에 효과적인 국가 통제를 유지하는 등 비자유주의적 정책들을 수행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러시아 혁명 이래로 미국 자본은 공산주의 나라들--세계 곳곳에서의 노동계급 혁명은 말할 것도 없고--로부터 사적 소유의 파괴라는 참을 수 없는 일을 목도해왔다. 공산주의 진영 내에서의 자본주의의 복구는, 비록 장기적인 것이긴 했지만, 지속적인 목표였다. 그러나 미국이 퍼부은 일련의 정치-군사적 개입들중 대부분의 경우 이는 사회주의의 확산--개탄스럽게도, 자본주의에 대한 실질적인 위협은 되지 못했던--을 막으려는 것도 아니었고 많은 경우 사적 소유를 보호하려는 것조차 아니었다. 선진 자본주의 경제의 기업들과 은행들의 무제한의 침투를 보장해주는 세계를 만들려는 그 한 가지 의도에 따라 미국의 군부와 CIA는 이란(1953), 과테말라(1954), 도미니카 공화국(1965) 등등과 같은 곳들의 민족주의적 기획들을 분쇄해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IMF의 '안정화 프로그램'이라는 끝없는 흐름이 발전도상국 진영 곳곳에 신자유주의를 내리먹였던 것이다. 국가주의의 예외적 용인 - 동아시아 발전의 이유 미국의 헤게모니 하에서 발전하고 이후 현저히 비자유주의적인 모습을 취한 동아시아 자본주의 경제들의 부상은 전후의 발전도상국 진영 내에서 확인한 예외였다. 이들 나라--일본, 그 다음에는 한국, 대만, 싱가포르--의 도약이 허용되었던 것은 대개는, 동아시아에서는, 자유 시장을 내리먹이려는 제국주의의 강력한 이해가 공산주의를 저지하려는 제국주의의 훨씬 더 강력한 이해와 충돌을 빚게 되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로 인해 냉전은, (신이 금지한) 민주주의나 노동자 권리를 위한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흔히 미국에 의해 수용될 것이라고는 여겨지지 않았던 국민 경제 형태들의 번성을 낳기에는 충분한 숨통을 열어주었다. 남한과 대만은, 일본과 마찬가지로, 중국과 소련에 대항하는 '최전방'에 섰다. 따라서 미국 자본은 이들 지역에서 강력한 국가들과 효율적 경제들의 부상을 반공 '봉쇄'를 위해 필수적인 것으로 바라보았다. 중앙 아메리카 같은 지역들에서는 사정은 분명히 그렇지 않았다.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과 대만의 정치경제는 자신들의 뜻밖의 개화를 최대한 활용했다. 전후의 토지 개혁은 이전 지주계급의 존재를 싹 쓸어버렸다. 그 결과 '발전 국가'가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는 자본주의 형태들이 출현했다. 무엇보다도 국가는 금융 제도를 직간접적으로 통제했는데, 이는 선진 자본주의 진영의 다국적 기업들과 은행들로부터 의미있는 자주성을 지닌 발전 노선을 추구하는 데 기본 조건이 되어주었다. 그 결과 국가는 대량의 기금들이 수출 지향 기업들에 투자되도록 그 흐름을 감독함으로써 발전의 핵심 조건을 보장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이러한 기업들이 거대 기업복합체들(재벌)을 통해 대규모화하고 상호 연결되는 경향을 보였고 결국에 가서는 자신들만의 독자적 금융 기구들을 발전시키기에 이르렀는데, 이는 일본과 유사한 것이었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점을 지닌 것이기도 했다.) 그 결과 은행 및 제조업 자본의 복합적 융합 형태들이 일종의 국가주의적 자본주의를 이루는 보완적 요소가 되었다. 싱가포르를 비롯해서 한국과 대만의 국가는, 영미의 자유 시장 예언자들이 이들 나라가 소유한 '자연적 비교 우위'라고 주장한 원자재 가공 및 노동 집약적 상품의 생산자라는 숙명적 역할의 가정을 받아들이지 않고 대신, 일본의 예를 좇아 세계 시장용의 훨씬 더 복잡한 형태의 제조업 생산에서 비교 우위를 창출하려고 노력했다. 그런 와중에서 한국 국가는 고도의 계획과 '산업 정책'에 손을 담가 투자 기금과 보조금을 거대 기업들에 향하게 했고, 그 결과 이들 기업은 훨씬 더 발전되고 더 높은 생산성을 지닌 제조업 라인을 발전시키고 성장의 사다리를 의류, 신발, 섬유 등에서 철강과 석유화학, 자동차와 메모리 칩 등으로 옮길 수 있었다. 다른 한 편으로 국가는 기업들로 하여금 가능한 한 최대한 수출하도록 요구했는데, 이는 국가로부터 무수한 이권들을 부여받은 수혜자인 이들 기업으로 하여금 국제 경쟁의 가격-비용 경쟁에 복속되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한국의 수출량은 이 나라 국내총생산의 40% 이상을 점하며, 이러한 고도의 수출 의존성이 이 나라의 급속한 성장의 한 중요한 열쇠였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실제로 수출의 빠른 성장은 한국에서 대규모의 역동적인 제조업 부문들의 등장을 촉진했다. 이러한 제조업 부문들은 선진 자본주의 진영 곳곳에서도 오랫 동안 생산성의 급성장에 최상의 기회를 제공해주어왔던 것이다. 미국을 가장 성마르게 만들었던 것은 아마도, 한국 국가가 광범한 조절 체계를 부과하여 국내 경제에 대한 선진국의 다국적 기업들과 은행들의 영향력을 제한했다는 점이었을 것이다. 이는 미숙한 산업 부문들뿐만 아니라 여타의 광범한 종류의 제조업 라인들을 보호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에 더해 한국 국가는 외국인 투자를 엄격히 제한하고 통제했으며 그 결과 외국인 투자는 결코 상당한 수준에 이른 적이 없었다. 국가가, 보다 싼 신용을 제공받을 수 있는 세계 자금 시장에 크게 의존하도록 한국 기업들을 고무하긴 했지만, 동시에 안정성과 자율성을 위해 기업의 해외 자금차입에 대해 참으로 엄격하고 극히 세심한 통제를 가했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하게 지적되어야 한다는 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반면에 국가는 교육, 숙련 노동자 및 기술자 양성, 그리고 연구 개발에 대규모의 지출을 행했다. 마지막으로, 하지만 위의 요인들과 마찬가지의 중요성을 갖고 지적되어야 할 것은, 한국의 권위주의적 국가가--대만, 싱가포르뿐만 아니라 전간기(戰間期)의 일본과도 비슷하게--노동계급의 저항을 억누르기 위해 혹독한 억압적 행동을 취함으로써 기업에 저렴하고 고분고분한 노동력을 공급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투적 노동운동, 특히 산업 관계의 현장에서 경찰 국가의 성격을 지녔던 국가에 맞서며 부상하여 강력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다. 성장에서 위기로 막대한 노동 수요뿐만 아니라 자본에 대한 노동운동의 강력한 저항의 결과로서 생활수준은 급상승했다. 1990년대 중반에 한국은 세계 11위의 산업국이었으며, 일인당 국민소득은 연 7천 달러로서 멕시코의 두 배, 브라질, 칠레의 세 배였고 상위 25위 안에 속했다. 하지만 소련과 중국이라는 대안과 '위협'이 사라지게 되면서 미국은 동아시아의 국가주의적이고 조절적인 자본주의 형태들에 대해 덜 관용적으로 되어갔고 이들에게 시장 개방과 금융 및 산업 체계에 대한 탈조절의 압박을 증대시켜갔다. 부분적으로는 이러한 압력의 결과로,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세계 자금 시장에의 무제한의 통로를 통해 보다 싼 융자를 얻으려는 이들 나라 국내 기업들의 욕망의 결과로,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는 1990년대 들어 얼마간 탈조절화되기 시작했다. 특히 한국은--부분적으로는 자국 기업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의 상류 사회 모임인 OECD에의 가입을 승인받기 위해--자국 기업들에게 세계 자금 시장에 접근할 수 있는 근본적으로 무제한적인 통로를 허용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는 대파국이라는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1985-1995년 사이의 기간중 내내 한국은 엔고 덕분에 일본에 대해 제조업 수출상의 경쟁력을 확보했고, 그 결과 비약적인 수출, 투자 및 GDP 성장을 맛보았으며, 다양한 국제 자본주의 경제 기구들로부터는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1994년과 1995-1997년에 처음에는 중국이, 그리고 다음에는 일본이 자국 제조업의 이윤 하락 압박이 증대되는 데 대한 대응으로 통화를 평가절하했다. 이제, 한국의 생산자들은 중국의 노동 집약적 생산이라는 '최저점'과 일본의 고기술 생산이라는 '최고점' 사이에 끼어 가격 하락으로 인한 이윤 압박을 경험하게 되었다. 하지만 수출 의존적인 한국 기업들의 대응은 제조업 시장의 과잉공급에도 불구하고 계속적인 확장뿐이었다. 확장의 속도를 더욱 촉진하는 과정에서 한국 기업들은 세계 자금 시장으로의 대규모 접근을 단행했고, 그 결과 외환에 의해 지배되는 대규모 단기 외채를 축적하게 되었다. 불과 몇 년전만 해도 이러한 전술은 정부의 금융 조절에 의해 규제되었을 것이라는 점이 강조되어야만 한다. 미국의 정, 재계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의 신화에 완전히 속박되어 있는 세계 '여론 주도층'에 의해서도 광범하게 유포되고 있는 한 명제에 따르면, 한국으로 하여금 이런 식으로 차입하도록 만든 것은 시장 합리성으로부터 절연한 한국의 '과잉조절되고 과잉정치화되어 있으며 부패한' 기업들 탓일 뿐이라고 한다. 따라서 한국의 '결탁 자본주의(crony capitalism)', 즉 국가 조절/보호 제도 및 국가, 기업 복합체 사이의 긴밀한 상호침투 등을 종식시키고 이 나라 경제를 회생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IMF와 그 자유 시장 처방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완고하고 이기적인 주장 이상일 수 없을 것이다. 국가 통제는, 고도의 투자, 수출 주도 성장을 통해 급격하고 지속적으로 상승한 제조업 생산성에 이러한 투자가 활용되도록 가해진 상대적인 규제, 다국적 기업들 및 국제 은행들에 대한 제한 등의 열쇠였고, 이것들은 한국의 괄목할만한 성장 궤적의 기반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만약 한국 기업들이 한국의 '결탁 자본주의' 덕분에 외면상의 신뢰를 확보할 수 있었던 시장에 의해 엄폐되어 있었다는 그 한 이유 때문에 과잉 차입을 행했던 것이라면, 시장에 의해 규제된다는 선진 자본주의 은행들의 무책임한 과잉 대부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실제로 과잉 차입과 과잉 대부에 의해 추동되는 호황과 위기의 반복은 자본주의 자체의 작동을 형성한다. 기업체들이 과잉 차입하고 은행들이 과잉 대부하는 것은, 자신들이 언제나 가치가 하락하기 시작하기 이전에 철수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이들 기업 및 은행이 가치들이 계속 상승을 유지하는 상황에서 가능한 한 신속히 시장에 진입하기를 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이들이 동시에 이런 행위를 할 경우 그것의 집합적 효과는, 특권적인 소수 외에는 대다수가 철수하지 못한 가운데 결국 폭발에 이르고 마는 금융상의 막대한 거품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번의 경우에도 국제 은행들은 한국 경제로부터 자신들의 자산을 철수하는 공격을 단행했지만 이들 역시 충분히 재빠르게 철수했던 것은 아니었고 ... 자유 시장이 어떠한 제한도 없이 작동하도록 허용되었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구제금융을 받아야 할 처지에 이르게 된 것이다. 선견지명을 갖추었다는 IMF는 위기가 폭발하기 단지 석달 전에 공간된 1997년도 연례 보고서에서 "한국이 인상적인 거시경제 성과를 지속하는 것을 환영했고 부러운 재정상의 건실성을 들어 이 나라 재정 당국을 칭찬했다." 이러한 언급에도 불구하고, 이미 1996년에 한국의 기업들은 수익의 급강하를 목도하고 있었다. 이는 이들이 특별히 비생산적이었다거나 비효울적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대규모 과잉확장을 행하고 세계 시장 수출 가격의 하락에 직면했기 때문에 비롯된 것이었다. 한국 경제가 침체하기 시작하자 정부는 예의 그 제도적인 조절 규범들에 따라 1997년 초에 다수의 주요 기업들을 구제하려고 나섰고, 이 결과 국제 투자자들은 점점 더 자신들의 융자에 대해 초조해하게 되었다. 그 무렵, 한국에게는 불행하게도, 1997년 여름에 동남아시아 위기가 폭발했다. 이제 외국인 대부자들은 이 지역 전체를 엄습한 과잉생산과 과잉설비에 대해 경종을 울리기 시작했고, 갑자기 자신들의 (대개 단기성인) 자본을 한국으로부터 철수하기 시작함으로써 화폐 시장상의 변동을 재촉했다. 이 나라 경제로부터 모든 해외 신용이 철수함에 따라 한국 기업들은 자신들의 차입에 대한 의무를 이행하기 어려워졌다. 한국 기업들은, 이러한 대부가 순조로이 차환되리라는 가정하에, 단기적인 조짐으로 인해 이를 일시에 상환해야 할 가능성에 대한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단기성 자본을 (과잉)차입했던 것이다. 즉 국제 은행들은 (과잉) 대부를 행했던 것이다. 외국 은행들이 일시 상환을 요구하게 되자 한국 경제는 외채 전부를 감당하기에는 외환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그 결과 환율은 유지될 수 없게 되었고 원화는 떨어졌다. 그러나 이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기만 했는데, 왜냐하면 이제 한국 기업들이 달러 주도하의 외국 차입금을 상환한다는 것은 더욱 많은 현금을 요구하는 일이 되어버렸고 또한 한국 자산들의 가치 역시 국제적인 차원에서 원화의 하락과 함께 하락해버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채 위기는 전체 경제를 침체시켰다. IMF가 끼어든 것은 바로 이 지점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구제' 금융의 조건으로 내세운 처방이란 것은 이중으로 치명적인 것이었다. 첫 번째로, IMF는 신용을 극도로 수축시킬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는 당연히 위기를 더욱 악화시켰다. 금리가 급상승하자 훨씬 더 많은 수의 기업들이, 효율적으로 경영되는지 그렇지 않은지 혹은 제품에 대한 충분한 수요를 지니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여부와는 상관없이, 대출 조건을 충족시킬 수 없게 되었고, 이에 따라 부도로 내몰리게 되었으며, 이것이 다시 이들 기업의 채권자들과 공급자들을 위협함으로써 이미 경제를 침체시키고 있는 중인 도미노 효과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두 번째로--이는 첫 번째 위협의 열쇠이기도 하다--, IMF는 광범한 측면의 비상 '개혁' 프로그램을 내리먹이려 했는데, 이는 최근의 재편을 통해 드러나듯이 한국 경제를 단순히 뒤흔들어놓기만 함으로써 이를 다국적 기업들과 은행들 주도의 장악에 노출시키려는 것일 뿐이다. 그런 이유에서, IMF는 무엇보다도 현존하는 경제적 보호, 조절 제도 전반의 해체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IMF 프로그램은 벌거벗은 제국주의일 뿐이다. 그것의 엄혹한 긴축 정책의 효과는, 비록 그것이 의식적인 의도는 아니라 할지라도, 한국 산업의 막대한 부분의 가치를 감소시키거나 완전한 부도 상태로 내모는 것일 뿐이다. 이는 해외 은행들과 기업들이 한국 산업을 헐값에 매입하게 될 것의 전조이다. 마지막으로, 그러나 위의 사항들과 마찬가지로 중요하게 지적되어야 할 것은, IMF가 기업들의 평생 고용 정책들을 종식시키길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한국 정부와 기업들이 수수방관하며 앉아 위기의 모든 비용과 IMF 프로그램을 감내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 역시도 노동계급의 희생을 통해 손실을 회복하는 비슷한 시도를 감행하고 있다. 그 결과, 그 어떤 실업 사회보장도 존재하지 않는 이 나라에서 이미 실업이 증대하고 있다는 조짐들이 나타나고 있다. 공세에 대항하는 노동자들 한국의 노동운동은 이미, 이윤 하락을 막으려는 이해에서 노사관계 제도를 '개혁'하려는 사용자들의 시도들에 대해 저항할 준비가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입증해보인 바 있다. 1996년말 한국의 대통령은, 기업이 보다 쉽게 노동자들을 정리해고시킬 수 있도록 허용하는 일련의 법안을 국회에 날치기 통과시켰다. 그러나 한국의 노동운동은 3주간의 강력하게 지속되는 대중파업 시위를 통해 이에 대응했고, 그 결과 정권으로 하여금 한 발 물러서서 굴욕적인 패배를 당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 노조의 임무는 훨씬 막중하다. 민주노총의 최고 지도자들은 처음에는 정리해고 제한 법률을 완화하자는 정부측 계획을 수용했다. 이러한 법률 개정은 실업 수준을 네 배로 늘려 150만에서 200만 이상으로까지 증대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대응하면서 민주노총 산하 노조들은 단지 정부 계획에 반대했을 뿐만 아니라 낡은 노조 지도부를 내몰아버리고 보다 전투적인 지도부로 대체했다. 물론 노조 운동이 여전히 고통스런 압박하에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특히 김대중 차기 대통령--그는 구 정권의 폭정의 기록으로 더럽혀지지 않은 인물이다--을 중심으로 한 많은 이들이 노동자들에게, 한국의 주권에 대한 외국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민족적 이해에 따라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적어도 초기에는 한국 노동운동이 이러한 민족주의적 호소에 저항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정부의 긴축 프로그램이 한국 노동자들의 희생을 신속히 보상해주리라고 기대하는 것에 대해서 의심해볼만한 충분한 근거가 존재한다. 왜냐하면 전 세계 거의 모든 경제들이 자신들의 운명을 수출의 성공에 걸고 있는 현 상황에서 경제를 회복시킬 길이란 요원하기만 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의 투쟁은 분명히 지금 막 시작된 것에 불과하다. 이 투쟁은 그것의 결과로서 세계 곳곳의 노동자들에게 막대한 이해가 걸린 그런 투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