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를 폐쇄하라, 채무를 폐절하라, 그리고 발전을 종식시켜라

- 국제 외채 위기의 계급적 분석

해리 클리버


* 원문: Harry Cleaver, "Close the IMF, Abolish Debt, and End Developement : a class analysis of the international debt crisis", Capital & Class, 1989, 겨울호.

* 해설 : 현재 우리나라의 외채 위기는 그것이 주로 민간자본의 투기성 투자자금으로 인해 야기된 것이 라는 점에서 클리버가 언급하는 고전적 외채 위기 사례와는 그 형태를 달리 한다. 이것이 IMF와 자본주의 이데 올로그들 자신을 헛갈리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김영삼 정권 기간 동안 국내 자본의 투기성 국내/해 외 투자들이 한국사회 노동계급의 분출에 대한 자본가적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에 서 클리버 분석의 일반화된 적용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좌파는 국제 외채 위기에 두 가지 방식으로 대응해왔다. 기껏해야 외채 경감과 새로운 대부를 주장해온 개량 주의적 대응, 그리고 외채의 탕감을 노골적으로 주장해온 보다 급진적인 대응이 그것이다. 불행하게도 이러한 입 장들이 기반해온 분석들은 계급관계의 관점에서 위기를 유용하게 이해하는 데에도, 이를 다루기에 적합한 계급 정치 전략들을 구성하는 데에도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했다.
개량주의자들 가운데에서는 자본주의 정책 써클 바깥의 논자들에 의해 쓰여진 대부분의 비판적 해설들조차도, 위기의 부정적 함의에 대한 이들의 관심이 비록 진지한 것이라 할지라도, 이를 노동계급과 자본 사이의 권력관계 의 변화라는 맥락에서 이해하는 데 실패했다. 각각의 경우마다 이러한 분석들은 대개 해당 행위자들에 대한 자본 의 규정을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자본의 관점을 반영하는 데 머무른다. 민간 은행들(과 여타 형태의 민간 자본 들), 국민국가들이나 일국 정부들, 그리고 국제적 기관들(IMF, 세계은행 같은)이 그것들이다. 노동자들이 그 모습 을 드러내는 경우에도 이들은 그저 자본의 약탈과 실책의 희생양으로 나타날 뿐이다. 맑스주의 분석을 활용하는 다른 이들의 경우에도 문제는 동일했다. 노동계급의 규정력과는 상관없이 물신적으로 이해된 자본의 '논리'를 상 정함으로써, 유용한 전략의 출발점을 제공할 권력 분석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 이러한 접근에서 노동계급 투쟁은 생활수준의 하락에 대한 반응으로서만 나타날 뿐이다.
바로 이러한 분석들로 인해 개량주의적 정치가 야기되었다. 최상의 경우, 외채 경감과 개선된--보다 민주적이 라 할 수 있는--대부의 요구, 최악의 경우, IMF 정책들을 추종하는 긴축 재정의 부과와 같은 결론들이었다. 이들 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긴축의 고통을 가능한 한 공평하게' 분담하는 것이다. 이런 급 진파들이 존재하는데, IMF까지 있어야 할 필요가 있겠는가? 자본주의 금융을 안정화하려고 의도된 이런 류의 모 든 해결책들을 거부하고 현재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외채 위기를 재촉한 노동계급 힘의 본성과 원천을 분명히 하는 데서 출발하지 않는 한, 이들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유용하면서도 가능한 행동 방향을 설정할 희망은 존재 할 수 없을 것이다.
보다 흥미로운 것은 외채 탕감을 주장한 보다 솔직한 급진적 대응들이었다. 금융 제도의 생명력에 대한 우려 보다는 외채 상환을 위해 착취받아야만 하는 민중들의 고통에 대한 분노에 의해 추동된 다수의 그룹들과 논자들 은 현존 차관 협약들을 파기하는 일방적 행동을 주장해왔다. 이들 그룹중 에서 두드러진 것으로는 미국의 '외채 위기 네트워크'(Debt Crisis Network, DCN)와, IMF 및 세계은행--전 지구적 외채 위기의 핵심 관리자들--의 베 를린 회합에 저항하기 위해 1988년 가을에 베를린에서 개최된 '국제 대항회의'(International Counter-Congress, 이하 대항회의)가 있다. DCN은 그 기본 선언문을 통해 '일부 NGO들과 남반구 정부들에 의한 외채 상환 청산 주 장'을 지지한다고 천명했다. 대항회의는 그 1988년 9월 24일자 성명서를 통해 '전 지구적 외채 탕감(조건부 탕감 이나 외채 경감이 아니라)뿐만 아니라 과거의 손실에 대한 보상'까지도 요구했다. 이들 그룹의 외채 위기 분석이 그 결론에 있어서 보다 급진적이긴 하지만, 민중(과 환경)의 희생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결국 개량주의자들에게 동참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개량주의냐 보다 급진적인 요구냐를 결정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이를 달성할 최 상의 전략을 발견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어떻게 해서 사회적 투쟁들이 위기를 재촉하고 지속시켜왔는지를 확인하 면서 동시에 어떻게 하면 대항세력의 힘이 발전될 수 있을지를 토론해야만 한다.
필자의 분석은 다음의 세 부분들로 이루어진다. 첫째, 위기의 기원을 전 지구적 자본축적에 파열을 낸 노동계 급 투쟁의 국제적 싸이클에서 찾기. 여기서 강조점은 다양한 국가들 및 세계의 각 지역들에서 벌어지는 노동자 투쟁의 상호보완성, 그리고 이들 투쟁을 해결하려는 자본의 시도들의 일부로서 외채 축적에 놓여진다. 두 번째 부분은 위기의 지속을, 이들 투쟁을 극복하고 새로운 축적 싸이클을 위한 조건들을 만회하려는 과정에서 빚어진 자본의 실패에 돌리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글의 세 번째 부분에서 필자는 현존 노동계급의 힘이 일정하게는 이미 외채의 부당성에 맞추어져왔고 그 폐지를 강제하는 방향으로 조직되어왔으며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계속 그 래야만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외채 폐지 요구가 주로 채무국 민중 투쟁과 보조를 맞추어왔던 것이 사실이지만, 이러한 채무국 내 투쟁들과 소위 '채권'국들의 다른 투쟁들 모두 이러한 목표에 도달할 적합한 전략들을 정식화 할 필요가 있다. 최근 미국에서 부상하고 있는 채무 위기--연방 부채, 저축 및 대부 산업, 가족농 저당, 학자금 대부 등등의 위기--는 북반구와 남반구 모두에서 노동계급 투쟁들을 조정하는 데 천금같은 기회를 제공한다.

1.

* 중략 - 이 장에서는 원래 9쪽에 달하는 80년대 국제 외채 위기의 분석이 전개된다. 이 역시 흥미로운 대목 이며 현재 우리의 외채 위기와도 간접적으로 연결되지만 여기서는 일단 생략하기로 한다. 그 대강의 내용은 다음 과 같다. : 현재(1989년 겨울)의 외채 위기는 자본주의의 케인지언 국면의 총체적 위기의 한 부분이다. 이는 세계 각지의 노동계급 투쟁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런데 각국 정부(특히 제 3세계와 동유럽)가 이를 외채에 기반한 재 정 운용을 통해 단기적으로 해결하려 한 탓에 대부 수요의 팽창이 초래되었다. 이 과정에서 자본의 획득성 (availability)이 쟁점으로 등장하기 시작했고, 카터 정부가 임용한 미 연방은행의 볼커는 이에 대한 통화주의적 해결을 통해 레이건의 신보수주의 경제정책의 기반을 닦았다. 그 결과 금리의 폭발적 인상과 불경기가 멕시코를 비롯한 남미 각국을 덮치면서 1982년의 외채 위기가 도래했다.

2.

외채 위기의 기원을 노동계급 투쟁의 국제적 싸이클을 통해 설명하였으니, 이제 필자는 채무국 외채 상환 능 력의 위기가 지속되는 현상이 이들 투쟁을 극복하고 새로운 축적 싸이클을 복구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자본의 실 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하고자 한다.
최근 6년간의 외채 위기의 주요 특성은, 채무국으로부터 채권국으로의 순 자본 유동상의 극적인 역전, 그리고 외채 상환 및 채무 금융의 조건의 일정, 즉 구 외채를 상환하기 위한 새로운 대부의 일정에 대한 지속적 논쟁이 었다. 이 논쟁 과정에서 IMF는 채권국과 채무국 사이의 거간꾼으로서, 그리고 자본주의적 게임의 법칙의 전 지구 적 강화자로서 핵심적 역할을 수행했다. IMF에 의해 설정된 '조건들'의 충족은 곧바로 새로운 대부를 얻기 위한 요건이 되었고, 이들 조건은 무엇보다도 수입 및 정부 지출의 삭감을 통해 외환의 획득성을 증대시키려는 방향으 로 입안된 긴축 재정을 그 본질로 한다. 지역 채무자들이 IMF 가이드라인들을 따르려는 진지한 시도를 행할 의 지를 보이는 정도에 따라 이들은 자신들의 외채를 만기 이전에 상환하는 데 필요한 새로운 대부를 확보할 수 있 었던 것이다. 이들이 이러한 가이드라인들을 충족시키길 거부할 경우, 이들은 민간 대부를 중지당했을 뿐만 아니 라 IMF 지원금마저도 거부당했다. IMF의 이러한 핵심적 역할은, 물론, 외채 위기와 함께 시작된 것은 아니고, 최 초에는 1970년대 중반 외채 요구가 증대함에 따라, 그리고 1970 후반에 상환 상의 난점들이 등장함에 따라 시작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1982년에 시작된 위기 속에서 의미를 지녔던 것은 바로 이 시기에 작동하게 된 경험과 접 근법들이었다.

외채에 관한 논쟁

이러한 상황하에서, 위기 관리에 대한 IMF 주도하 은행 접근법의 설계자들 및 옹호자들과 이와는 다른 접근법 들을 주장하는 비판가들 사이에서는 광범한 논쟁이 유발되었다. 논쟁의 대부분은, 긴축 재정, 수지 균형의 입증, 외채 서비스의 지속 등이 새로운 성장의 전제조건이라는 IMF의 입장과, 성장이야말로 외채 서비스와 미래의 성 장 모두에 대한 보다 나은 보장 요소이기 때문에 현재의 외채 서비스 부담은 경감되어야 하며 채무국 국민경제 에 대립적이기보다는 오히려 부양적인 정책들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비판가들의 주장 사이의 갈등이었다.
IMF의 접근법은 고집스럽고 완고한 것이었다. 그 긴축 재정 프로그램은 외채 서비스, 무역수지 균형, 수익성 및 성장에 대한 가능한 한 최단기 일정을 요구하는 것이다. 전형적인 IMF식 편견들을 검토해보면, 이것들이 채무 국 국민경제 내에서의 착취에 저항하는 노동계급의 힘의 표현들을 이루는 그러한 정책들 및 제도들에 직접적으 로, 그리고 의식적으로 대항하는 방향으로 의도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가령, 예산 적자를 줄이기 위해 정부 지출 삭감을 주장하는 IMF의 일반적인 요구는 보통, 저렴한 기초 식료품 수입을 강요하는 프로그램 같은 직접적 수단을 통해서든 아니면 국영, 준국영 부분에서의 임금 및 고용 삭감 같은 간접적 수단을 통해서든, 소비상의 보 조금 정책에 해당하는 정부 지출의 삭감을 의도한다. 이러한 공격들은 또한 국가에 대한 노동자들의 압력을 차단 하기 위한 탈국유화 혹은 민영화 압박을 동반해왔다. 유사하게, 지역 통화의 평가절하라는 일반적 요구 또한 수 입 상품들--다수의 나라들에서 기초 생활필수 품목을 포함하는--에 대한 노동계급의 소비를 직접적으로 공격하 는 것이다.
IMF에 대한 비판자들은 대개 IMF의 성공 사례보다는 그 실패 사례에 의해 추동된 이들로서 때때로 긴축 재 정으로 인해 비롯된 위와 같은 격심한 타격에 대한 인간주의적 동정에서 비롯하여, 그 결과 보다 쉬운 구조조정 경로를 찾으려 노력해 왔다. 전형적인 IMF 정책 요구들에 대한 주요한 두 가지 일반적 비판 대응은 우선 이러한 정책들이 성장을 회복시키지 못한다는 것이고(대다수 자유주의자들의 주장), 두 번째로는 IMF가 자본주의적 발전 의 위기 해결 비용을 이에 책임있는 자들보다는 이 위기의 희생자들에게 전가하고 있다는 것이다(대다수 좌파들 의 비난).
첫 번째 반응은 다음과 같은 주장들을 포함한다. 외환을 끌어들이기 위한 긴축 재정의 보편적 적용, 통화 평가 절하, 수입 축소 등은 제 역할을 다 할 수 없는데, 왜냐하면 이를 따를 경우 대다수의 나라들이 더욱더 빈곤화되 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반면, 모든 나라가 동시에 통화를 평가절하하거나 모든 나라가 수입을 축소하면서 동시에 자신들의 수출을 굳건히 유지하거나 확장시킴을 통해 외환을 계속 끌어들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불가 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관련된 또다른 주장은, 통화 평가절하에 의해 야기되는 정부 지출과 수입 상의 삭감은 비 필수적인 소비재 수입과, 원자재 혹은 중간재 같은 필수적 수입 사이의 적절한 차별화를 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소비의 하락은, 수출 확장이라는 희망 대신에, 오히려 이와 평행을 이루는 투자와 생산의 하락을 수반해 왔다.
두 번째 대응인, 희생자들에의 공격에 대한 비판은 외채 위기가 자본의 내적 법칙들의 필연적 발현이라는 기 계적 맑스주의 분석--노동계급은 항상 희생양으로만 등장하는 관점--이나 위기의 기원이 자본의 무능과 경영 실 책에 있다는 관점을 포함한다. 부패, 자본 유출, 위험은 아랑곳않고 무모하게 대부를 강요하는 탐욕스러운 은행가 들, 오도된 통화 정책들을 통해 최초로 위기를 재촉한 제국주의 국가들 내의 핵심 은행가들, 그리고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는 접근법만을 보여주는 IMF 등등이 그 무능과 경영 실책의 사례들로 열거된다.
첫 번째 대응이나 두 번째 대응 모두 전제하고 있는 편견은, 일종의 외채 경감을 위해 구조조정의 부담이 채 무국으로부터 채권국으로, 그리고 노동계급으로부터 자본으로 옮겨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의 대안은 전형적으 로 다음의 사항들을 포함하고 있다. 외채의 동결(consolidation), 만기 연장, 금리 인하, 그리고 외채 일부의 탕감 을 통한, 손실분의 은행 제도로의 흡수, 그리고 이에 따른 구조조정 비용의 공동 부담 등등. 사실 일부 외채 경감 주장은 노골적으로, 전면 탕감이라는 보다 급진적인 요구들을 평가절하하려는 과정에서 추구되고 있는 것이다. 보다 일반적으로 이들의 기본 관념은, 채무국들의 부담을 줄이고 투자, 생산, 수요를 촉진하는 정책 방향에 맞추 어진 성장을 추동함으로써 외채의 어느 일부라도 탕감되지 않고 전액 상환할 수 있을 채무국의 능력을 촉발시키 자는 것이다. 긴축 재정이라는 IMF의 철권에 대항하여 이들 비판가들은 발전이라는 빌로드 장갑을 제안하는 셈 이다.
이들 논쟁의 여러 측면을 검토하면서 확인해야 할 것은 다양한 제안들과 반대 제안들을 가로지르는 공통의 목 표이다. 결국 그것은 축적의 회복이다. 다기한 방향의 제안들이 아무리 구조조정의 고통분담을 이야기한다 할지 라도 이들 모두의 궁극적 관심사는 성장의 조건들과 그 현실성의 재건이다. 계급적 맥락에서 이는 노동계급 저항 의 극복과 자본주의적 착취 지속의 새로운 국면의 출발을 의미할 뿐이다. 이들 공통의 목표에 내재한 것은, 현 국면에서는 위기를 확대재생산하는 지배적 방식으로 인해 노동계급 투쟁을 관리할 자본의 능력의 위기가 계속되 고 있다는 판단이다. 발전 대안에 대한 이러한 전면적 승인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외채 위기를 야기한 투쟁들이 발전에 반대하는, 즉 인간주의자들이 선전하길 원하는 바로 그 자본 축적에 반대하는 투쟁이었다는 점이다. 이러 한 맹목성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전 세계의 민중들의 요구들을, 이들이 대항하여 투쟁하는 것의 측면에서뿐만 아 니라 광범하고 다양한 방향하에 전개되는 자기가치화(self-valorization)의 자기규정적 노선으로서 나타나곤 하는 지향이라는 측면에서도 검토하는 것이 요구된다.

계속되는 위기

* 중략 - 이 부분에서는 이집트, 브라질, 아르헨티나, 폴란드 등을 예로 하여 각국에서의 외채 위기의 발생이 자국 내 노동계급 투쟁을 억압하고 호도하려는 각국 정부의 정책에서 비롯됨을 밝히고 있다. 특히 폴란드의 경우 연대노조의 투쟁에 대한 대응 과정에서 외채 위기가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반복되는 노동계급 중심 분석 주장의 부연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여기서는 번역을 생략한다.

미국 내의 자본주의 정책과 계급투쟁

* 중략 - 이 부분에서는 외채 위기가 제국주의 중심 국가인 미국 내에서 연방 적자의 증가라는 형태로 내부화 하여 등장하고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이 역시 현재의 우리 위기와는 간접적인 연관관계만을 가지므로 생략하기 로 하자. 이에 대한 설명으로는, 윤소영, {마르크스주의의 전화와 '인권의 정치'}, 제 4장 "쉬잔 드 브뤼노프의 '신 자유주의' 비판"을 참고할 수 있다.

3.

국제 외채가 어떻게 노동계급에 대한 무기가 되어왔으며 그 위기가 어찌 하여 노동계급의 힘의 산물인지를 검 토하였으므로 이제는, 좌파측에서 제출되어왔던 대안적 대응들을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외채 경감과 채무 불이행

외채 위기 상황에 대한 계급 정치학에 기반할 경우, 외채 경감이라는 개량주의적 요구와 대립되는 외채 탕감 이라는 급진적 요구를 지지해주는 분명한 이유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외채의 생성 그 자체가 일종의 이중 범죄임을, 즉 (OPEC을 통해) 돈을 강탈당한 이들에 대한 범죄이면서 동시에 그 돈을 통해 이용되거나 혹사 당한 이들에 대한 범죄임을 살펴본 바 있다. 외채의 취득은 그 어떤 면에서 보나 정당한 과정일 수 없다. 돈을 빌린 제 3세계의 엘리트들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자들도 아니며 지금 외채 상환의 주역으로서 고통을 전담하게 된 노동계급의 대표도 아니었다. 게다가, 이들이 빌린 돈을 쏟아부은 용도는 전반적으로 노동자들의 이해에 대립 되는 것이었다. 빌린 돈이 일자리와 임금을 창출하는 데 쓰였다면 그것이 금융적 억압과 살인에 쓰였을 때처럼 고통스럽지는 않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자금은 착취와 노동계급 진압이라는 목적에 쓰였던 것이다. 빌 로드 장갑을 걸친 지배가 보다 덜 억압적일 수도 있겠지만, 이는 위와 같은 이유 때문에 더 이상 바람직하지도 않다.
따라서, 첫 번째 결론은, 우리는 최소한 외채 그 자체의 부당성을 폭로하는 캠페인에 착수할 수 있고 또 그래 야만 한다는 것이다. 외채의 대가가 너무 크다거나 절대적 수치 측면에서 이것이 이미 여러번 원액 상환되었다고 주장하는 것--국내 저당분의 상환의 경우에 이는 사실이다--으로는 충분치 않다. 더 나아가, 우리는 외채의 기원, 그리고 그 목적에 대해 이야기하고, IMF를 공격하며, '계약은 계약이고 공정한 게임을 원한다면 빌린 돈은 되갚 아야만 한다'는 은행의 주장들을 분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일단 우리가, 어떤 나라에서나 외채는 대다수 민중이 분담해야 할 정당한 고통이 아니라는 점을 받아들인다면, 이에 대한 상환을 계속해야 할 도덕적 혹은 윤리적 이유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일단 당신이 노동계급적 시각 을 받아들인다면, 외채를 폐절할 정치적 이유 또한 분명한 것이다. 따라서 두 번째 결론은 외채를 비난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 폐절을 위해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외채를 폐절해야 할 도덕적, 윤리적, 정치적 이유에 더하여, 전략적 쟁점들 또한 마주해야 한다. 외채 경감을 주장하는 많은 이들은, 어떠한 재상환이든, 그것이 아무리 경감되었다 할지라도, 결국은 부당한 것라는 점 을 의심의 여지없이 알고 있지만, 동시에 채무 불이행이 좋은 영향보다는 나쁜 영향만을 끼칠 것이며 가능하지도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 국제 외채의 폐절은 이를 감행하는 나라가 어떤 나라든 결국 이 나라를 고립화시킴으로써 국제 금융체계에 접근할 통로를 모두 차단시키고 따라서 교역과 생산상의 붕괴를 낳아 국내 실업을 증가시키고 생활수준을 더욱 하락시키지는 않겠는가? 공식적 교역 및 개발 금융을 포함하는 모든 대부가 중단된다면 이러한 결과들이 야기되리라는 것은 분명히 예상가능하다. 이러한 단절의 위협은, 채무국에 의해서 채무 불이행을 단념 케 만드는 데에, 그리고 각국 정부에 의해 왜 자신들이 빈번히 IMF의 조건에 굴복하고 말았는지를 자국 국민들 에게 설명하는 데에 활용되어왔다. 이러한 상황하에서라면 새로운 개발 금융과의 맞교환하에 외채 경감과 경감된 외채의 지속적 재상환을 협상하는 것--아마도 채무국 카르텔을 통해서--이 더 의미있는 것은 아닌가? 이러한 접 근법을 통해서라면 빈곤층에 대한 고통을 줄이고 성장을 통해 생활수준을 증대시킬 수 있지 않을까? 대답은 위 와 같은 위협이 과연 감행될 것인지 여부에 달려 있다.
순 민간 자본 유동이 이미 부정적인 상황에서 현실적 쟁점은, 채권국들과 국제 개발 은행들이 채무 불이행에 대해서 교역 및 개발계획 금융을 끊어버리는 식으로 반응할지 여부이다. 개별 국가들, 특히 약소국들에게, 아옌데 하의 칠레와 산디니스타 정부하의 니카라과는 실제 그렇게 되리라는 고도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만약 채무국 카르텔이 거대 규모의 채무국들에 의해 구성된다면 가능성은 훨씬 감소될 것으로 보인다. 가령, 미국과 유럽이 라틴 아메리카와의 교역 및 금융 관계를 끊어버린다면 이는--1980년대의 무역 붕괴를 통해 분명히 입증 된 바대로--북대서양 경제와 미국 및 유럽 다국적 기업들에 대해서도 심각한 피해를 초래할 것이다. 채권국의 교 역 및 투자상의 이행의 이처럼 거대한 규모, 그리고 사회적 통제와 축적을 위해 채무국 정부들이 미래에도 계속 돈을 빌려야 할 필요 등 때문에, 대규모의 집단적 채무 불이행이 벌어진다면 이에 대한 대응은 파괴적 보복보다 는 차라리 미래의 경제관계를 위한 재협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채무 불이행에 대한 대응이 보복이 되든 재협상이 되든 이는 부분적으로 집단적 불이행이 벌어지는 조건 그 자체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 과거의 경험들(1976년의 이집트, 1989년의 베네주엘라)을 검토해보건대, 채 무 불이행이 민중 봉기에 직면하여 권력을 유지하려는 채무국 정부의 마지막 안간힘인 것으로 인식될 경우, 자본 주의 질서를 유지할 지역 국가들의 능력을 감소시킬 수 있다는 이유에서라도 보복 조치가 취해질 가능성은 훨씬 적을 것으로 생각된다. 잘못 계산된 협정의 폐기를 강제하기에 충분한 주기적인 노동자 폭발로 인해 주요 은행들 의 수장들과 정부 지도자들은 이러한 정치경제적 계산의 필연성에 동요되곤 했었다.
외채와 미래의 금융 및 교역 관계에 대한 국제적 토론들은 채무 불이행을 강제하는 사회-정치적 위기들이라는 배경에 대해 적대적인 방향에서 취해질 것이다. 이 지점에서 계급투쟁은 긴축 재정의 거부로부터 새로운 관계들 의 가능성에 대한 논쟁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발전에 이해를 지니고 있는 자들 편에서는, 국내 투자 및 국제 연계 모든 면에서 어떤 전략이 성장을 가장 촉진시킬지 여부를 놓고 논쟁이 계속될 것이다. 이들은 금융 축적의 방향에서 신뢰 유동성의 회복이 이루어지도록 이러한 협상을 방향설정하려 할 것이다. 하지만, 노동계급의 이해 는, 축적의 바깥에서 그리고 그에 대항하여, 민중들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 투자를 종속시킬 것을 요구한다. 채 무 불이행을 낳는 압박은, 노동계급의 다양한 부분들이 그들 자신의 대안적 비전들과 사회적 기획들을 다듬을 수 있는, 자본의 통제로부터 자유로운 외부적 공간을 창출하는 방향으로 조정되어야만 할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채무 불이행이라는 문제를 넘어 발전이라는 쟁점을 제기하는, 수잔 조지(Susan George), 그리고 베를린 대항회의 같은 이들의 주장들이 전면에 등장하게 된다. 발전과 자기가치화라는 쟁점들에 대해 진지한 논의가 행해져야 하 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필자가 곳곳에서 지적한 바대로, 발전이 바람직한 것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은 축적 기획 내에 발목잡히는 것이 며 단지 축적의 형태와 그 관리자의 계급적 출신을 놓고 투쟁을 벌이는 데 머무르는 것이다. 우리는 이보다 더 나은 방식으로 투쟁할 수 있다. 전 세계 곳곳에는, 자본주의적 발전에 의해 부여되는 노동-중심적이고 성차별주 의적이며 인종주의적이고 소외된 실존을 넘어서서 존재하며 관계맺는 방식들로서, 자기가치화라는 사회적 기획을 다듬어온 민중 공동체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기획들은 대안적 사회 진보 노선의 출발점을 제공해준다. 필요한 것 은 이들의 확장을 위한 공간들과 기획들이다. 우리들이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낼 우리의 능력을 믿든 믿지 않든 말이다. 우리들중 누구라도 우리 자신이 이러한 능력을 집단적으로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확신한다면, 축적의 몇 몇 변종들에 틀지워진 삶을 받아들일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제기된 정치적 의제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외채의 부당성을 공격해야만 한다. 우리는 그 폐절을 요구해야만 한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를 축적의 틀 안에 가두고 말 미래의 그 어떠한 외채 확보에 대해서 도 반대해야만 한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우리는 다음의 실천들을 감행할 필요가 있다. 1) 외채와 그 재상환에 반대하는 이유를 구축하고 다양화하기. 2) 보복의 기회를 최소화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광범한 규모의 집단적 외채 폐절을 강제하기에 충분한 힘을 지닌 민중 동원을 조직화하기. 3) 투쟁의 초점을 채무 불이 행으로부터 축적 바깥에서 이에 대항할 자기가치화 공간들의 건설로 이동시키기 위해 준비하기.

조직 형태들

지금까지 외채에 대한 투쟁 과정에서 발전되었던 조직 형태들은 대개 모호하거나 제한적이고 불확실했었다. 적어도 일부 사례들 속에서 가장 중요하고 효과적이었던 것은 노동자들을 겨냥하는 긴축 재정에 반대하는 채무 국들 내에서의 민중 봉기였다. 원형적 사례는, 식용작물 보조금 삭감을 무효화시킨 이집트에서의 반란과 긴축 임 금 법안에 반대했던 브라질에서의 반란이었다. 불행하게도, 이들 봉기의 결과는 혼란된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일부는 상당한 인명 피해와 함께 실패했다--그 내부의 조직 동학도 직접 이에 참여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대부분 미지의 것으로 남아 있다. 다양한 지식인들, 정치가들, 노조 지도자들, 그리고 풍자만화가들이 이들 국가에서 외채 를 부당성을 공격하는 데 기여한 것은 의심의 여지 없는 사실이지만, 폭발이 비롯된 노동계급 공동체들 내의 투 쟁 동학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 이러한 민중 봉기의 중요성을 인정한다면, 외채에 반대하는 운동을 구축하려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이들은, 어떻게 하면 이러한 폭발들이 국제적 운동의 맥락에서 연결될 수 있을지 배우기 위해, 이들 폭발 과정의 계급 재구성에 대한 면밀한 연구를 함께 해야 할 것이다.
보다 제한된 사례이긴 하지만 파악하기 훨씬 쉬운 것은 IMF 긴축 재정과 외채 재상환에 반대하는 채무국들 내에서의 시도들이었다. 이들은 1988년 9월의 베를린 대항회의 같은 단기적, 일회적 시도들과, 워싱턴에 본부를 둔 DCN 같은 장기적 시도들을 모두 포함한다. 베를린 투사들은 5일간의 저항을 이끌었고 IMF와 세계은행의 연 례 회합을 공격했다. 이 베를린 저항과 관련하여 흥미로운 것은, 다양한 자율적 투쟁들이 하나로 통합된 시도로 서 상호연결된 방식이었다. 외채 폐절 주장이 핵심 요구였지만, 이는 또한 독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의 계급 관계 위기의 핵심에서 벌어지는 광범한 쟁점들(페미니스트, 환경, squatter[빈집 무단 점거운동가들], 청년, 평화 등의 쟁점들)을 토론하기 위한 마당이기도 했다. 미래의 회합은 IMF에 대한 또다른 단결된 공격과, 투쟁의 국제 적 구축 방법의 토론을 위한 기회들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이 채무국 동맹의 주역으로 등장했다는 사실은 전례없는 가능성을 창출하고 있다. 대규모 부채를 보유하 는 최대 다국적 은행들의 대부분이 미국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정부 차원의 조절에 종속되어 있는 상황에서라면, 외채 폐절을 위한 국제적 투쟁은, 미국 정부로 하여금 외채에 대항하고 잠재적 보복으로부터 채무국들을 보호하 는 행동을 취하도록 요구하는 미국 시민들의 실천을 포함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요구들의 역량은 대결의 결과에 중요한 결정요인이 될 수 있다. 문제는, 미국에서 이러한 압박을 수행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막강한 계급 연합이 건설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역자 - 필자의 미국에 대한 판단 부분은 10년이라는 시간의 경과를 고 려하여 재검토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연합이, 그것도 독일에서의 그것보다 더 포괄적인 형태로, 창출될 가능성은 최근 몇 년간 미국에서 몇 가지 채무 위기의 활성화로 인해 점점 증대되고 있다. 가령 1980년대 초반 이래로 근로 민중의 소득을 공격하고 소비자 융자에 대한 이들의 접근로를 제한시켜온 일련의 금융 공격들은 금융 기구들에 대한 의무감을 하락시키 는 데 분명히 기여했다. 여기에 다음의 사항들이 포함된다. 대부분의 반(反)고리대 연방법의 폐지, 소비자 융자 비용의 극적인 상승, 주택 소유 비용의 급등, 이에 더해, 예금을 가정 융자가 아니라 부정 거래와 투기에 쏟아부 은 저축 및 대부 은행들(Savings & Loan Banks, S&Ls)의 스캔들, 그리고 이제는, 파산한 S&L산업의에 대한 조 세 수입을 이용한 정부 구제 시도들 등등. 이러한 조건들로 인해, 국제 외채 문제에 관심을 지니고 있는 이들이, 최근 미국에서 S&L 위기에 대응하면서 건설된 '금융 민주주의 캠페인(Financial Democracy Campaign, FDC)' 같 은 개량주의 그룹들과의 논쟁에 돌입할 가능성이 존재하게 되었다. 실제로, DCN은 FDC의 기본 선언서를 자신들 의 소식지에 게제했다. 보다 광범한 차원에서는, DCN의 패트릭 본드(Patrick Bond)가, 미국, 영국, 서유럽에 광범 하고 다기한 반(反)은행, 반(反)기업 캠페인들이 존재하며 이들 운동의 성원들은 이러한 운동들을 통해 자신들의 투쟁들과 채무국들에서의 투쟁 사이의 연관성을 인식하고 이를 중심으로 동원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 다.
이러한 연관성을 세워내고 강화시키는 것은 결국 하나의 운동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미국의 DCN이 자신을 헌신해오고 있는 그런 종류의 지속적 투쟁인 것이다. DCN은, 외채에 반대하는 투쟁뿐만 아니라 민중의 자기결정이라는 쟁점들에도 관심을 기울이면서, 베를린 대항회의와 유사하면서도 그것보다 더 지속적인 대응을 보여주고 있다. 채무 불이행을 강제하고 이후 자본의 보복 능력을 제한할 충분한 조정과 협력의 유일한 희망은 노동계급의 거부의 힘 안에 존재한다. 자본의 공격은 그 규모에 있어서 전 지구적이며, 노동계급에 대항하는 화 폐와 금융 기제의 활용에 있어서 포괄적이다. 따라서 우리의 대응 역시도 전 지구적이면서 포괄적이어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채무에 의해 공격당하고 있는 이들 사이의 연결망을 만듦으로써 전 지구적 계급구조를 재 구성하고 자본의 지배 기제를 침식할 국제적 채무 위기 네트워크이다. 채무 위기에 대한 현재의 자본주의적 관리 는 우리에게, 다시 한 번, 이들의 성공의 열쇠는 분할지배 전략임을 가르쳐주고 있다. IMF와 은행들은 세계를 채 권국과 채무국으로 나누어서 채무국들을 하나하나 우격다짐하고 있다. 채권국들조차 동일한 은행들에 의해 공격 받고 있는 채무자들로 가득차 있는데도 말이다. 이러한 전략에 대한 효과적 대응을 보일 우리의 유일한 가능성은 궁극적으로, 채무와 발전 모두에 반대하는 민중투쟁의 국제적 조직을 통해 분열들을 극복하는 것이다.
이러한 운동을 구축한다는 것은 수많은 민중들을 다수의 쟁점들 중심으로 연결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맑스 주의자들이 이러한 노력에 제공할 수 있는 것은, 국제적 외채 위기 및 그것이 이 국면의 일반적 위기의 다른 측 면들과 맺고 있는 연관성 양자의 발생(genesis)과 동학에 대한 계급적 분석이다. 노동계급에 대항한 화폐 및 금융 기제들의 광범한 활용은, 사회적 지배의 화폐적 형태와, 교환가치를 넘어선 사회 조직화의 가능성들 모두에 대한 비판들을 다듬을 훌륭한 기회들을 제공해준다. 이러한 전망하에서, 우리의 투쟁 의제는 외채 및 그 관리자들에 대한 공격뿐만 아니라 은행들, 그리고 이들이 우리를 통제하기 위해 휘두르는 채무 전반에 대한 보다 일반적인 도전을 포함해야만 한다. 이제, S&L's의 구제에 대항해 싸우고 우리의 토론을 금융 조절에 대한 것에서 금융 폐 절에 대한 것으로 이동시키며 가격 및 화폐 형태들 모두를 비판하고 채무도 화폐도 없는 사회에서 부의 발생과 분배를 어떻게 재조직화할지에 대해 토론을 시작할 때이다.
다른 이들은 이러한 토론의 빈곤함을 불평하면서 통화 개량주의라는 프루동주의적 함정에 빠지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은행 및 통화 정책의 민주화를 요구한 이들(FDC)의 경우이다. 우리는 이들에게, 맑스가 신용제도의 민주화를 지향했던 19세기의 사회주의 도식을 거부한 이유를 상기시켜주어야만 한다. 그가 반복하여, 특히 {정치 경제학 비판 강요(Grundrisse)}에서 가장 강력하게 보여준 바에 따르면, 신용과 채무는 노동계급에 의해 전유될 수 없으며 파괴될 수 있을 따름이다. 자본은, 비록 자본가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여전히 자본일 뿐이며, 폐절을 요구한다. 맑스는, 그의 모든 해설들을 통해, 신용과 채무의 계급적 본성에 대해, 자본이 노동자들에 대항 하여 이 둘을 활용하려 하는 방식에 대해, 그리고 노동계급 투쟁의 진전을 위해 이 둘 모두에 대하여 전개해야 할 공격의 중요성에 대해 분명한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화폐와 신용을 파괴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곳에서라면, 우리들의 바로 그 목표를 위해 화폐와 신용을 활용하는 게 유의미할 것이다. 맑스가 임금 문제와 관련하여 웨스 턴(Weston)에 반대해 주장한 바[역자 - 맑스의 {임금, 가격, 이윤}]와 같이, 그리고 우리가 임금, 복지 지출, 학교 장학금, 파업 기금, 그리고 심지어는 신용 등과 관련하여 그랬던 바와 같이 말이다. 그러나 심대한 금융 위기의 국면하에서는, 즉 우리가 이미 위기를 재촉할 힘을 확보했고 자본이 자신의 통제를 회복하기 위해 안달하고 있는 현재의 시점에서는, 자본 그 자체의 폐절로 나아가는 한 발자국으로서 채무의 종식을 주장하는 맑스주의적 요구 의 분명한 표명이 요청되는 기회는 벌써 열려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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