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POSSE 1996.
(아펙 정상회담에 반대하여 열렸던 People's Conference 준비측 자료)
1989년 캐나다와 미국은 자유무역협정에 서명을 했다. 5년후, 교역의 범위는 멕시코까지를 포함하게 되었고,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라고 개명되었다. 협정이 체결되었을 때 캐나다와 미국의 국민들은 이 협정이 직업을 창출하고 새로운 번영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들었다. 그러나 캐나다 국민들에게 있어 현실은 국제경 쟁력의 강화라는 이름하에, 실소득에서의 끊임없는 추락, 지속적인 고실업율, 건강관리, 교육, 여타의 사회보 장제도들에 대한 전례없는 공격, 그리고 여성들의 지위를 상승시키면서 얻었던 성과의 침식 등이었다.이는 NAFTA의 해당 정부들이 국제화의 과정을 진전시키기 위해 또다른 단계를 밟았을 때 비로소 알려지 기 시작했다. 1994년 11월, 인도네시아의 보고르 궁에서 열렸던 경제지도자회의는 "공동의 해결에 관한 아 펙 경제지도자 선언(APEC Economic Leaders' Declaration of Common Resolve)"을 채택했다. 이 선언에 의해 아펙 회원국의 경제는 2020년까지 아시아 태평양 지역내에서의 자유롭고 개방된 무역과 투자라는 목 표를 달성하기로 되었다. 그리고 산업화된 국가의 경우는 2010년까지로 정해졌다.
아펙과 국제화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 즉 아펙은 1989년에 시작된 아시아 태평양 지역 18개 국가의 연합체이다. 아펙은 아세안 6개국(필리핀,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부루네이, 인도네시아)를 포함하고 있으며 동아시아 5개 국(일본, 중국, 한국, 홍콩, 대만)과 오스트레일리아의 3개국(파푸아뉴기니, 호주, 뉴질랜드), 그리고 나프타 3 개국(캐나다, 미국, 멕시코)과 칠레를 포함한다. 아펙은 세계인구의 약 40%를 차지하고 있고 경제생산량의 반을 차지하고 있다.
아펙의 존재근거를 분석해보면, 단순한 무역협정 이상의 무언가를 발견한다. 그것은 초국적기업의 이해에 이끌린, 지배적 자본주의 경제(dominant capitalist economies)가 영향력의 범위를 구획하는 메카니즘이다. 나프타와는 달리 아펙에는 경쟁하는 두 개의 세력이 있다. 미국과 일본이 그것이다. 아펙은 동아시아의 돈 벌기 쉬운 시장에 대한 지배권을 놓고 두 나라가 싸울 때 그들 사이의 경쟁에 대한 논의공간을 제공한다 . 아펙은 또한 자국의 투자와 수출에 대해 일본과 한국, 그리고 중국의 경제를 개발하기 원하는 미국의 도구 이기도 하다. 아펙은 제국주의국가들이 지구화과정을 가속화하려 하면서 그들 사이에서 세계를 분리시키려 는 경향의 분명한 표현이다.
지구화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자본팽창의 연속체의 일부이며, 위기에 빠진 체제의 가장 최근의 표현형태이다. 자본주의의 역사는 새로운 기술의 사용으로 생산량을 늘리려는 동시에 노동집약적 기술과 값 싼 노동력의 사용을 통해 생산비를 줄이려는 경향을 갖는 특징이 있다. 스태그플레이션, 또는 소비자 파워 의 침식을 동반한 실업의 전체적인 증가와 실질 임금 축소의 결과로서 점증하는 과잉생산 체제 경향을 가 지고 있다. 이 경향은 호황과 과열의 싸이클에서 명백하다. 그러나 경제적 침체는 지속됨에 있어 보다 잦아 지고 길어졌다. 기업을 위한 해결책은 시장을 확장하거나 또는 새로운 시장들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우루과 이라운드와 WTO의 설립, 그리고 EEU, 나프타, 아펙과 같은 지역 경제블럭의 형성은 이런 맥락하에서 이 해되어야 한다.
시장자유화 과정은 1970년대와 80년대 IMF-세계은행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에 대한 실험대상(몰모트 같은)이 되어왔던 필리핀과 같은 약한 경제력의 나라들에게는 모두가 너무 익숙한 것이다. 이런 국가들에서는 재정 적자축소, 시장규제완화, 민영화 등과 같은 신보수주의적 제도들이 모든 경제적 문제에 대한 만병통치약으 로 우선 제기되었다. 이러한 정책들이 성취하는 것은 이 국가들을 초국적 기업들에게 이익을 보장하는 천국 으로 만든 것이었으며 대외부채가 제공되고 상환되는 동안 빈곤과 고용의 수준에 있어 아무런 중요한 변화 도 없다는 것은 분명했다. 늘어나는 무역과 외국의 투자가 경제성장의 길로서 제기되었으며 경제성장은 결 과적으로는 더 많은 직업과 번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본 것은 국내 산업의 파 괴, 대대적인 해고, 근로기준의 수준 하락, 가속화된 자원자원 개발에 따른 토착민들의 축출, 국내 산업의 파괴, 환금작물과 농업관련산업으로의 토지전환에 의한 식량안보의 토대 침식, 그리고 값싼 노동자, 부불(不 拂)노동자로서 또는 과중하게 부담지워진 육아담당자로서의 여성들의 부담 가중 등이었다. 번영은 부자들과 초국적 기업 엘리트들의 지위 유지였을 뿐이었다.
아펙은 단지 식민지 시대를 연상케 하는 부의 분배 패턴을 영속화시키고 강화시킬 뿐이다. 아펙은 토착 경 제의 발전을 방해할 것이며 모든 국가들을 단지 몇몇만이 승리할수 있는 그런 게임으로 몰아넣을 뿐이다. 필리핀에서는 국내시장이 더욱더 침식당하고 거대한 수입과 부의 불평등이 강화됨에 따라 광범위한 빈곤과 실업, 불완전고용이 계속될 것이다. 값싼 노동력과 유한한 자연자원은 별문제로 하더라도 필리핀과 같은 나 라들에서 소위 상대적 이익은 아무것도 없다. 겉으로 보기에 나아지는 듯한 경제는 모두가 잘될 것이라는 환상을 창조하면서 이민 노동자들의 송금액에 의해 계속 유지될 것이다.
캐나다에서는 해외의 시장과 값싼 노동력을 이용하기 위해 공장을 옮김에 따라 자연자원에 대한 의존이 강 화될 것이고 높은 실업율이 계속될 것이다. 어렵게 쟁취되었던 노동권은 결국 침해당할 것이다. 경제를 악 화시키고 기업부문에 과세하기를 꺼린 결과로 인해 줄어들고 있는 정부의 세입은 카나다의 사회적 프로그 램들을 해체시키는데 더욱 강력한 압박을 가할 것이다. 아펙은 '평등한 바닥'-노동과 생활의 수준을 가장 낮은 곳으로 끌어내려 조화시키는-을 향한 경쟁을 가속화시킬 것이다. 캐나다에게는, 나프타의 충격과 그 악영향을 제거하기 위해 사용된 전략들 양자에 대하여 나프타로부터 배워야 할 중요한 교훈들이 있다.
나프타로부터의 교훈
나프타 협상기간 중에 국가적 문제에 관한 기업회의(The Business Council on National Issues), 프레이저 연구소(The Fraser Institute), 캐나다회의소(The Conference Board of Canada)와 같은 경제전문가들과 기 업로비스트들은 자유무역이 낮은 가격과 높은 임금, 그리고 더 많은 고용을 낳게 될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 들은 나프타가 캐나다인들의 삶의 수준과 복지상태를 침식할 것이라는 우려를 인정치 않았다. 의료보장과 교육체계의 지속적인 잠식, 고실업율과 대량 실업, 이에 병행하는 기록적인 기업이윤이 지나간 지 2년 후, 진짜 승자가 누구인지는 명백하다.
나프타의 충격 전부를 단정하는 것은 너무 이른 일일 수 있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실제 이익을 얻지 못했다 는 것은 분명하다. 전체적으로 직무는 파괴되었고 고용노동자들의 임금과 안정성은 세나라 모두에서 잠식되 었다. 캐나다와 미국에서 수천의 노동자들은 나프타와 함께 등장한 자본이동의 가속화, 강화된 경쟁, 노동자 교섭력의 잠식 등과 같은 압력 때문에 실질임금의 하락을 견려내어야만 했다. 멕시코 경제의 추락은 노동자 들과 농민들의 상황을 훨씬 악화시켰다. 높아진 금리, 정부지출의 급격한 축소, 그리고 통화절하는 더 줄어 든 일자리와 낮은 임금, 그리고 빈곤을 의미했다.
나프타에 반대하는 그룹들에 의해 제기된 전술적 강령 중 하나는 노동자와 환경보호에 대한 보장을 확보하 려는 합법주의적 접근이었다. 그러나 노동자의 협력과 환경에 대한 부가적 협정은 쓸모없는 것이라고 광범 위하게 비판받아왔다. 예를 들어 노동자 관련 협정은 부당노동행위를 조사하기 위해 전국행정사무소를 세나 라 모두에서 설립했다. 1994년의 첫 번째 청문회는 좋은 실례가 된다. 제너럴일렉트릭社와 허니웰社가 멕시 코인의 건강과 안전 그리고 노조의 권한을 침해했다는 미국과 멕시코로부터의 노조들의 주장은 어떤 제재 조치도 발동시키지 못했다. 우리가 아펙에 대한 전략으로써 제기해왔던 것은 그 이상의 것이었다. 비정부기 구들에 의해 제기된 일반전략은 아펙을 개혁하는 것이다. 제국주의에 인간의 얼굴을 씌워주자는 것이다. 그 러나 무역자유화(2010년)의 첫 번째 이정표가 있기 14년 이전에 몇몇 사람들이 이미 싸우기를 포기했거나 또는 이미 기업의 계획에 적음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이 협정을 보다 인간적인 것 으로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써 사회적 조항을 추진하는 것은 대다수의 이해와 이윤을 향한 움직임이 양립할 수 있는 목표라는 환상을 만들 뿐이다. 나프타의 경험은 노동자의 권리와 환경의 보호를 위한 사회적 조항 과 같은 것들이 이윤추구에 종속될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NO!"라고 말하라!
아펙이 무엇인지를 이해한다면 최소한의 전략은 그것에 반대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아펙은 본래 아시아태 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경제적 지위를 강화시키기 위한 수단이며 EEU에 대한 대항세력이다. 보다 중요하게 는 아펙은 동등한 경기장을 가장한 남북사이의 불평등한 식민적 관계의 제도화를 위하 '트로이의 목마'인 것이다.
아펙은 스스로를 개혁하려는 조직형태가 아니다 궁극적으로 아펙은 어떤 인간적 권리, 그리고 노동자의 권 리를 다루기 위한 장치를 만들겠지만 그러한 것들이 아펙의 본질을 건드리지는 않을 것이다.
대안으로서 우리는 단지 기업의 관심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관심을 촉발시킬 필요가 있다. 많은 후진국들 에서 이는 소득불균형을 근절하는 진짜 농업 개혁을 의미할 것이다. 무역과 투자의 자유화는 번영이라는 그 공허한 약속과 함께 불평등을 심화시킬 것이다. 대안은 또한 성장의 기초로써 국내 경제의 강화 또는 민족 주의적 산업화(nationalist industrialization)를 포함한다.
실제적인 대안을 향해 노력하기 위해서는 캐나다 내에서 그리고 아펙 네트워크 내의 모든 진보적 운동들 사이에서의 제국주의적 지구화에 대항하는 광범한 전선의 구축이 필요하다. 앞으로 2년 동안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 두 번의 기회가 있다. 첫 번째는 필리핀 수빅만에서 있는 아펙 정상회담과 동시에 개최되는 1996년 11월 필리핀 바얀당이 조직한 민중회의(People's Conference)가 있다. 두 번째 기회는 캐나다 밴쿠버에서의 1997년 아펙 정상회담이다. 우리의 목소리를 들려주자. (1998년 아펙 정상회담은 11월 말레이시아에서 열 릴 계획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