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한일투자협정의
문제점
1) '투자자' 및 '투자'의 개념이
대단히 넓게 정의되어 있다. '투자자'의
경우 개인이든 법인이든, 영리를 목적으로 하든 하지 않든, 민간기업이든
공기업이든 모든 주체들이 투자자에 해당한다. 또한 투자의 경우 주식,
채권, 지적재산권 등 모든 형태의 자산이 투자로 간주된다.
2) 기존의 투자보장협정과는 달리,
투자자는 '투자설립 전(前)단계(pre-establishment)'에서부터 '보호'받게
된다. 이것은 정부가 갖고 있는 고유한
권리, 즉 특정한 해외직접투자가 자국의 국민경제에 필요한지, 사회적·민중적
이해에 부합하는지를 심사하고, 그것의 진입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당하게 되었다는 점을 의미한다.
3) 투자협정의 또 다른 중요한 원칙은
'차별금지'이다. 즉, 해외투자자들과
국내투자자들 사이에, 해외투자자들과 해외투자자들 사이에 아무런 차별도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전자를 내국민대우(National Treatment),
후자를 최혜국대우(Most Favoured Nation)라 한다. 이러한 '차별금지'
원칙이, 만약 시민·민중 및 지역공동체들이 국내외 투자자들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권리와 함께 주어진다면 별다른 문제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투자협정 체제하에서 문제삼고 있는 '차별'이란, 대부분 사회적·국민경제적
필요와 이해에 따른 정부정책들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사회적·국민경제적
필요에 의해 미디어 및 특정 경제부문에 대해 외국인 소유를 제한하는
행위, 중소기업 및 농민들에게 보조금 및 대부금을 지원하는 행위 등이
그에 해당한다.
4) 투자협정은 어떠한 경우라도 해외투자자의
기업활동에 '조건'을 덧붙이는 것을 금지한다.(이행의무부과 금지 원칙)
예를 들어, 정부는 시민·민중들이
해외투자자들로부터 이득을 얻을 수 있도록 '국내에서 고용되어야 하는
종업원의 최소기준을 정한다'든가, '국내 부품업체와 협력하고, 일정한
기준 이상 국내 생산품을 사용토록 한다'든가, 혹은 '국내에서 획득한
이윤중의 일정비율 이상은 반드시 그 국경 내에서 재(再)투자되도록
한다'는 등의 요구조건을 부과할 수 없다.
5) 마지막으로, 투자자-국가간의
분쟁해결절차를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 또 다른 특징이다. 투자자나 그의 투자 자산에 대해 손실을 입히거나 입힐
것으로 예상되는 어떠한 정부 조치에 대해서도 해외투자자는 정부를
직접 제소할 수 있다는 점이 여느 국제협정과 뚜렷이 구분되는 점이다.
심지어 계획된 투자에 제한을 가하는 것조차 기업가에 의해 "경쟁기회의
박탈", "미래소득의 수용"이라는 근거로 제소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투자자의 권리가 국가와 동등한 수준으로 격상되어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반면, 초국적 기업의 노동착취 활동,
환경파괴 활동, 투기활동 등에 대해 노동조합을 비롯한 시민·민중들의
제소권은 보장되지 않는다. 투자협정에 의해 강화된 투자자의 권리와
권력이 어떻게 사용되어지고, 어떤 결과를 낳는지에 대해, 우리는 에틸사(Ethyl
Corporation)의 사례에서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미국 에틸사는 엔진
과열을 방지하기 위해 가솔린에 첨가하는 유독물질인 MMT를 생산하는
업체이다. 그런데 캐나다 의회는 MMT가 연소될 때 배출되는 물질이 사람들의
건강에 치명적이라고 판단하여 캐나다 환경보호법에 근거하여, 97년 이
물질의 수입 및 캐나다내 운송 금지 조치를 단행했다. 이에 에틸사는
NAFTA의 투자자 보호 조항에(한미투자협정과 거의 동일) 근거하여 국제분쟁해결센터에
제소했다. 그들의 근거는 MMT 생산단지 및기업의 '명성'을 캐나다 정부가
수용(expropriation)했다는 것이었다. 결국 캐나다 정부는 수입금지
조치를 철회하고, 약 1300만 달러에 달하는 손해배상금 및 소송비용을
에틸사에 지급할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시민의 건강권, 환경권
등 공공이익에 대한 판단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결론적으로 투자협정은 새로운 시장을
향해 떠나는 초국적자본의 해외직접투자를 보호하고, 그들의 정치적
권리와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국제협정이다.
이는 일관되게 초국적자본의 해외 직접투자(투기자본 포함)를 강력하게
보호하는 조항들로 가득채워져 있으며, 그를 위해 투자유치국 정부들의
경제/사회/노동/문화 등 각종 정책들을 엄격히 '제약'한다. 이러한 문제점들
때문에, OECD에서 논의되던 다자간투자협정(MAI)도 각국 민중들의 거센
저항에 의해, 결국 98년 10월 공식적으로 중단되었다. 당시 각국 시민·사회단체
및 노동조합들은 다자간투자협정(MAI)에 대해, 1) 투자자의 권리를 정부·지역사회·시민·노동자
그리고 환경의 권리보다 훨씬 우위에 놓고 있으며, 2) 해외투자자에
대한 민중들의 민주적 통제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으며, 3) 해외투자자가
국가를 상대로 직접 제소(提訴)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함으로써, 민주주의와
국가주권의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는 문제점들을 집중적으로 제기하였다.
'초국적자본의 권리 헌장'이란 별명이 붙은 것도 이 때문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