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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82번 : 인지생물학의 거장! 움베르또 마뚜라나의『있음에서 함으로』출간!
글쓴이: 갈무리 등록: 2006-04-14 14:03:49 조회: 7075
안녕하세요. 다중의 활력과 지성 그리고 희망을 담아내는 [도서출판 갈무리](http://galmuri.co.kr) 입니다. 『있음에서 함으로』 출간 안내와 관련 정보를 담았습니다. 더 상세한 정보가 필요하시면 02)325-1485로 연락주세요. 감사합니다.


철학적으로 성찰하는 생물학! 있음에서 함으로 인지생물학의 거장 움베르또 마뚜라나가 선언하는 인지 패러다임의 새로운 전환!
“이 가치 있는 책의 어디를 펼치더라도 여러분은 한껏 고무된 마음으로 이 책을 다시 덮게 될 것이다.” - 하인쯔 폰 푀르스테르 “인지생물학이란 인지 과정들이 어떻게 생명체계인 인간들의 작동으로부터 발생하는지를 보여주려고 시도하는 설명 계획이다. 따라서 인지생물학은 생명체계들, 그것들의 진화 역사, 하나의 생물학적 현상으로서의 언어, 설명들의 본성, 그리고 인간됨의 기원을 이해하기 위한 성찰들을 포함하고 있다. 인지생물학은 인간관계들에 대한 학문이다.” - 움베르또 마뚜라나 □ 도서명 : 『있음에서 함으로』 □ 지은이 : 움베르또 마뚜라나(베른하르트 푀르크젠과의 대담) □ 옮긴이 : 서창현 □ 판형 : 변형신국판(145×215) | 쪽수 : 352쪽 | 정가 : 14,000원 □ 발행일 : 2006년 4월 22일 | ISBN : 89-86114-86-0 04300 □ 도서분류 : 디알로고스 총서3 『있음에서 함으로』의 간략한 소개 이 책은 인지생물학의 세계적 거장인 칠레의 생물학자 움베르또 마뚜라나 (Humberto R. Maturana)가 독일의 저널리스트 베른하르트 푀르크젠(Bernhard Poerksen)과 함께, 인지생물학의 전 면모를 그 기원에서부터 전개과정, 영향관계 등에 이르기까지 그 풍부한 내용에 대해 생생하고 자세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대담집이다. 푀르크젠은 이 대담에서 철학과 논리학의 복잡한 문제들에서부터 일상생활의 근본적인 윤리적 물음들에 이르기까지, 마뚜라나의 이론과 실천에 대한 인상적인 파노라마를 생동감 있게 펼쳐내고 있다. 이 책은 마뚜라나 자신이 밝히고 있듯이 ‘물음의 변화에 대한 역사’이다. 즉 ‘그것은 무엇인가?’라는 사물의 본질에 대한 물음에서 ‘그것이 어떻게 발생했는가?’, ‘그것이 타당하다고 간주했던 대답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나는 어떤 기준을 사용하는가?’라는 물음으로 이행하는, “있음에서 함으로” 이행하는 역사이다. 이 책은 또한 마뚜라나의 철학적 성찰들의 역사가 담겨 있다. 그러한 성찰들로부터 발생한 물음들에 대해 그가 어떠한 과학적 대답들을 제시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매우 흥미롭고 매력적인 일이다. 이 책은 우리가 어떤 일을 하게 될 때 그것을 도대체 어떻게 하게 되는 것인지에 대한 성찰이며,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보고, 어떻게 듣는지, ……그리고 대체로, 안다고 주장하는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아는지에 대하여 이해하고자 할 때 그것[우리가 어떤 것을 하는 것] 안에 나타나는 다양한 관념들이 나의 일상적인 삶의 과정에서 어떻게 발생했는지 그 역사에 대한 성찰이다.(본문 21-22쪽) 내용면에서 대단히 다양한 양상을 띠고 있는 이 대담집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관점은 ‘삶’ 그 자체의 관점이다. 『있음에서 함으로』상세한 소개 제1부 「우주, 관찰하기의 설명」에서는 이 책의 근간을 이루는 내용으로 ‘인지생물학’의 기원에 대한 내용과 핵심 개념이 소개되고 있다. “말해지는 모든 것은 관찰자에 의해 말해지는 것이다.”라는 『인지생물학』의 유명한 문장에서 시작하는 인터뷰는 객관적인 대상[객체]과 그것을 인식하는 주체를 분리시키는 근대적인 실재론적 인식론을 겨냥하고 있다. 실재, 진리, 그리고 존재의 본질에 대한 전통적인 철학적 담론 체계를 변형시키는 그의 방법론은 “관찰자로 작동함으로써 관찰자의 작동들을 이해하는”, “언어 속에 살아감으로써 언어를 설명하는”, “말함으로써 말하기를 서술하는” 순환적인 것에 의존하고 있다. 마뚜라나 사고의 출발점은 ‘관찰하기를 관찰하는 관찰자’이다. 그에게 관찰자는 모든 것의 원천이자 모든 지식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 여기에서 주목되는 것은 마뚜라나가 언어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그는 언어를 어떤 정보를 전송하는 단순한 전달 수단이 아니라, 하나의 존재 형식이자 더불어 살아가는 방식으로 이해한다. 세간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마뚜라나는 자신을 ‘구성주의의 대표자’라고 부르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재치 있게 자신을 “동등하게 타당한 무수한 실재들의 존재를 믿는 슈퍼 실재론자”라고 명명한다. 이러한 그의 자기규정에는 권력과 지배, 그리고 통제에 기반을 둔 문화에서 우정, 상호존중, 협력에 바탕을 둔 사회로의 이행을 바라는 염원이 담겨 있다. 무수한 가능한 실재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의 복종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귀를 기울이고 협력과 소통을 추구하게 될 것이라는 게 그의 믿음이다. 또한 마뚜라나에게 지식은 객관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관찰자에 의존하는’ 생산물로서 나타난다. 그에게 생명의 유지는 지식의 표현이다. ‘살아 있는 존재들의 삶 속에서, 삶은 앎을 수반하고, 앎은 삶을 수반한다.’[본문 107쪽] 죽음과의 개인적인 마주침의 체험을 통해서 삶을 갈망하게 된 마뚜라나는 독특한 생명이론을 제시하게 된다. ‘자기 자신의 작동들을 통해 스스로를 존재들로 생산하는 체계들의 구성적인 과정의 결과’에 주목했던 마뚜라나는 그것을 ‘자기생산’ 개념으로 정립해 낸다. 그에 따르면, 자기생산은 ‘자율적이고 자신의 자율을 실현하는 생명체계들에게 고유한 특수한 방식이자 방법’이다. 그는 자기생산 개념을 오로지 생명을 특징짓는 데 한정해서 사용해야 함을 강조한다. 그래서 그는 자기의 이론이 남용되고 오용되는 것에 문제를 제기한다. 마뚜라나는 에리히 잔쉬나 니클라스 루만이 자신의 자기생산 개념을 우주와 사회로 확장해서 적용하는 것에 대해 ‘환원주의의 위험성’을 경고하면서 강하게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특히 루만의 사회체계 이론에 대해서, 그 이론이 종국엔 ‘자기들의 특수성들과 다양한 자기표현 형태를 갖춘 개인들을 사라지게 할’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제2부 「이론의 응용」에서는 정신요법계에서 마뚜라나의 이론이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 한 사람의 교육자로서 마뚜라나가 자신의 이론을 어떻게 실천하고 있는지를 흥미롭게 진술하고 있다. 여기에서의 핵심적인 내용은 사랑이다. 자기존중과 자기사랑을 새로이 발견하는 것, 존재의 형식을 새롭게 시도하고 창조하는 것으로서의 치료와 교육에 대한 마뚜라나의 독특한 의미 부여가 빛을 발하고 있다. 제3부 「이론의 역사」에서는 마뚜라나의 이론적 실천의 궤적이 자신의 개인사와 얽혀 흥미롭게 전개되고 있다. 어린 시절의 통찰들, 어머니로부터 받은 영향, 아웃사이더로서의 통찰들, 독재자 피노체트와의 만남 등을 통해 우리는 마뚜라나의 인간적 면모를 보다 풍부하게 접하게 된다. 제4부 「이론의 윤리학」에서는 ‘사랑의 생물학’에 대한 본격적인 강연이 펼쳐진다. 마뚜라나는 사랑을 인간 공존의 특징으로 규정한다. 사랑은 상관적 행위가 이루어지는 방법이자 영역이다. 사랑은 성찰의 가능성을 열어젖힌다. 사랑은 타자가 정당하게 보이도록 해 주는 지각 형태에 기초하고 있다. 즉, 사랑은 타자를 정당화하는 영역이다. 그러므로 마뚜라나에게 사랑은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감정이 된다. 또한 사랑은 윤리적 행위를 가능하게 해주는, 행위들의 결과들에 대해 성찰할 수도 있도록 해 주는 가장 중요한 감정이다. 윤리는 사랑의 결과이다. 윤리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은 타자들을 지각하고, 그들을 소중하게 상대하며, 그들을 인정한다. 저자 서문 이 책은 인지생물학에 대한 내 작업의 역사에 대해 베른하르트 푀르크젠과 나눈 다소 긴 대담을 싣고 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이미 이 책에서 이야기했던 것 이상으로 이 짧은 서문에서 더 이야기할 것이 없다. 나는 이 책이 전하고 있는 것들을 내가 어떻게 체험하고 살아 왔는지에 대해 몇 가지를 회고해 보고자 한다. 특히 인지생물학과 사랑의 생물학이 무엇인지를 연구하고 있었을 당시에 내가 살아냈던 세 개의 기본적인 전환점들에 대해 회고해 볼 것이다. 내가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세 전환점들이 나에게 일어난 것은 우리의 일상적 삶의 세 가지 평범한 특징들이 이론적 체계에 대해서 함축하는 바를 내가 깨달아 가게 되는 것과 관계가 있다. 그것들은 물음들의 상관적인 본성, 우리가 실수를 저지른다는 평범한 사실, 그리고 자연적 현상들의 반복성에 대한 우리의 정상적인 일상적 믿음이다. 물론 나는 물음들이, 물음을 던지는 사람과 그 물음에 대답하는 사람이 맺는 관계 속에서 생겨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물론 나는 내가 실수를 저지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물론 나는 내가 일상생활을 해나가면서 자연적 과정들의 규칙성을 신뢰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 깨달음이 확장되는 것은, (우리 일상생활의 그와 같은 평범한 상황들과 과정들이 우리의 ‘함들’에 대하여, 그리고 ‘우리가 하는 것’을 우리가 이해하는 것에 대하여 함축하는 것을) 깨달으면서 행동한 결과들을 내가 의식하게 되는 것과 관계가 있었다. 차근차근 살펴보자. 물음들과 대답들 만일 우리가 물음들과 대답들의 상관적 본성에 대해 살펴본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즉, 자기가 던진 물음에 대한 어떤 대답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 받아들이는 대답을 자기 자신이 보기에 타당한 것으로 만들어 주는 어떤 것을 자기 자신이 경청하는 가운데 결정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 물음이 무엇이든지 간에, 대답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그 대답을 타당한 대답으로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를 결정한다는 것이 물음-대답 관계의 구성적인 특징이다. 하지만 이것이 물음들과 대답들의 고유한 특징은 아니다. 제공된 무언가가 받아들여지는 모든 관계에 있어서, 제공되는 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받아들여진 것의 진리, 가치, 또는 타당성을 결정한다. 물론 내가 말하고 있는 것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사실상 잘 알려진 것이다. 그렇지만 만일 우리가 그것이 정말로 사실임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이제 우리가 하는 것 속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무시할 수 없다. 즉, 어떤 것도 그 자체로 진리가 아니며, 어떤 것도 그 자체로 가치로울 수 없으며, 타당하거나 수용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말이다. 더욱이 우리가 만일 내가 위에서 말한 바의 함축들을 받아들인다면, 다음과 같은 물음들이 제기된다.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진리를 위해 투쟁하는 것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어떤 과학자가 자연에 물음을 던지고 실험이나 관찰을 통해 어떤 대답을 얻을 때, 그렇게 해서 얻은 대답의 타당성을, 실험이나 관찰의 결과들을 수용 또는 거부하기 위해 자기 자신이 사용하는 기준을 선택함으로써, 결정하는 사람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본인이 알고 있을까? 관찰자 본인이 타당하다고 받아들이는 것의 타당성을 결정하는 사람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리고 그것이 바로 물음과 대답 관계의 구성적인 특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위에서 제기된 물음들이 그와 같은 것을 고찰함으로써 대답되어야 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실수를 저지른다 우리는 마치 우리가 직접적으로건 간접적으로건 어떻게든 실재라고 부를 수 있는 것에 접근할 수 있으며, 그것을 통해 우리의 진술들이나 설명들을 타당한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것처럼 살아간다. 그렇지만 우리는 실수를 저지른다. 우리는 실수들을 통해 배운다고 말하면서도, 실수를 저질렀다는 이유로 타자들―그들이 누구든지 간에, 예컨대 정치가들, 어린이들, 과학자들, 부모들, 철학자들―을 맹비난한다. 이것은 무엇을 나타내는가? 우리는 실수를 우리의 행위에서의 심각한 실패로 간주한다. 이 실패가, 우리가 그렇게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볼 수밖에 없는 실재 앞에서의 범죄적 맹목성을 드러내 준다는 것이다. 만일 실수가 저질러질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를 자문해 본다면, 우리는 실수가 하나의 행위임을, 즉 어떤 행위가 이루어진 순간에, 그리고 그 타당성이 의심 없이 받아들여지는 또 다른 행위와 관련해서 나중에 실수로 평가 절하되는 순간에 그것의 타당성을 정직하게 수용하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하나의 행위임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정이 그렇다면, 실수는 실수 그 자체도 아니고, 실패도 아니며, 실재에 대한 우리의 무지를 드러내지도 않는다. 실수는 그것이 일어났다고 말하는 순간에는 발생하지 않는다. 실수는 나중에 우리가 연속적인 계기들 속에서 일어나는 행위들을 비교할 때 발생한다. 우리는 우리가 어떤 실수를 저지를 때에는 우리가 실수를 저질렀는지를 알지 못한다. 실수는 현재에는 일어나지 않는다. 실수는 나중에 일어난다. 만일 우리가 하고 있던 어떤 것이 그것을 하는 순간에 타당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었다면, 우리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일 것이다. 실수는 잘못이 아니다. 실수는 우리가 갖고 있는 역량의 실패도 아니다. 실수는 우리의 한계를 보여주지 않는다. 실수는 우리의 ‘함들’의 과정에 대한 성찰로서 발생한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을 ‘하는’ 순간에, 우리가 나중에 그와 같은 ‘함’을 (또한 우리가 이 또 다른 ‘함’을 하나의 실수로 간주하게 될지 알지 못하는 다른 어떤 것과 관련하여) 실수로 간주할 것인지 알지 못한다면,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우리가 하는 것’을 타당한 것으로 만들기 위한 독립적인 실재에 접근할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어떤 의미에서 나는 내가 진리를 알고 있다고, 아니면 사태가 어떠하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만일 내가 나중에 그러한 주장이 실수였다고 생각하게 될지를 모른다면 말이다. 왜 누군가 실수를 저지르는 것에 대해 비난받아야 하는가? 그렇다면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실수가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는 것임을 알게 되었을 때, 실수가 현재에는 발생하지 않는 것임을 알게 되었을 때, 실수가 나중에 실수라고 불리게 될 행위가 이루어진 뒤에 발생하고, 성찰이라는 사후적 행동 속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우리가 하는 것’을 ‘하는’ 그 순간에는, 그것을 나중에 실수라고 부르게 될지 전혀 알지 못한다는 점이 받아들여지고 나서야 대답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자연의 반복성을 신뢰하기 우리는 우리가 자연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반복적이라는 점을 신뢰하면서, 적절한 조건들이 실현된다면 예전에 작동했던 것이 다시 작동할 것임을 신뢰하면서, 일상생활 속에서 움직인다. 이러한 신뢰는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가 하는 모든 것―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예컨대 요리, 원예, 과학, 과학기술이나 철학―의 토대이다. 물론 우리는 모두 이것을 알고 있다. 더욱이 우리는 모두, 우리가 만드는 사물들뿐만 아니라 자연적인 사물들이 그것들이 만들어진 방식에 따라 작동한다는 점을 알고 있고, 또 그렇다고 믿는다. 아마도 우리는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움직이고 있기에 이것에 대해 모두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는 사실은, 자연과 인공적인 “사물들”이 그것들이 만들어진 방식에 따라 작동하는 한 그것들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그것들에 작용하는 것에 의해서는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이며, 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것들 안에서 변화들―만들어지는 방법에 의해 결정되어 발생하는 변화들―을 유발하는 것뿐이라는 점이다. 생명체계로서의 우리도 예외는 아니며, 분자적 존재로서의 우리는 다른 모든 분자적 존재와 마찬가지다. 그리고 어떤 순간에 우리에게 무엇이 일어나는가 하는 것은 바로 그 순간에 우리가 만들어지는 방식에 의해 우리 안에서 결정되는 것이지,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외적 작용체들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외적 작용체들이 우리 안에서 무엇이 일어나는지를 설명해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리고 그것들이 단지 우리가 만들어지는 방식에 의해 결정되는 변화들을 우리 안에서 유발할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다음과 같이 자문해 보았다. 그렇다면 안다는 것이 무엇인가? 내가 보거나 듣고, 또는 받아들이는 것이 내가 만들어지는 방식에 의해 결정된다면, 나에게 외부적인 어떤 것이 어떻게 그것 자체에 대해 무엇인가를 내게 말해 줄 것인가? 이러한 상황에서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우리 외부의 어떤 것도 그것 자체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말해줄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의 자연적인 존재의 일부로서 받아들이면서 대답되어야 한다. 내가 우리의 일상적인 삶의 이러한 특징들이 지니고 있는 광범한 함축들을 점차로 깨닫게 됨에 따라 생물학적 과정들에 대한 나의 이해는 확대되었고 변하게 되었다. 나는 내가 구분했던 모든 것을 발생시킨 과정들에 대해 깨닫기 시작했고, 사물들이 어떠한가[본질]를 묻는 대신에 그것들을 발생시킨 과정들에 대해 묻기 시작했으며, 내가 타당하다고 간주했던 대답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사용했던 기준들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따라서 이 책은 물음의 변화에 대한 역사이다. 즉, ‘그것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서 ‘어떤 것이란 내가 그것을 무엇이라고 규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기 위해 나는 어떤 기준을 사용하는가?’라는 물음으로 이행하는 역사이다. 성찰들 이 서문에서 나는 내 작업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하고 있다. 이것은 내가 말하고 있는 것의 토대들에 대해 성찰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지, 내가 직업적인 철학자이기 때문이 아니다. 나는 철학자가 아니다. 모든 인간들은 자신들이 자신들의 신념들의 토대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또는 그들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의 토대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철학적 성찰을 한다. 또한 나는, 어떤 사람이 자신이 설명하고자 하는 어떤 체험을 발생시키게 될 하나의 과정을 제안한다면(그 과정이 작동하는 결과로서 체험이 발생한다), 그럴 때마다 그가 과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또한 어떤 철학적 성찰들에 대한 역사이자, 그러한 성찰들로부터 발생한 물음들에 대한 과학적 대답들의 역사이다. 이와 같이 나는 이 책에서 나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나로 하여금 이 책을 선물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 준 독자들에게 감사한다. 움베르또 마뚜라나 2004년 4월 칠레의 산티아고 글쓴이와 옮긴이 소개 [글쓴이] ★ 움베르또 마뚜라나(Humberto R. Maturana 1928~) 1928년 9월 14일 칠레 산티아고 출생이며 인지생물학자이자 철학자이다. 프란시스코 바렐라와 함께 베이트슨, 비트겐슈타인의 경로들, 비코의 사회적 “의지”, 폴 바이스의 자기생산(self-production),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뒤를 이어 자기생산(autopoiesis) 개념을 창안했다. 또한 신경생물학의 경험적 연구들을 기반으로 세워진 상대주의적 인식론인 급진적 구성주의의 정초자들 중의 하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1947년 리쎄오 마누엘 데 살라스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뒤에 칠레의 의과대학에서 공부를 시작했으나 같은 대학에서 생물학으로 학위를 마쳤다. 1954년 록펠러 재단의 장학금을 지원받아 유니버시티 칼리지에서 해부학과 신경철학을 연구했다. 1958년 하바드 대학에서 생물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칠레 대학의 “인식 생물학” 센터에서 신경과학 분야의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생물학적 연구 프로그램 속에서 자신의 이론을 정교화하는 데에 평생을 바치고 있다. 실재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것이 하나의 감각적인 공통의 구성물이라는 테제를 입증하기 위해 계속 힘을 쏟고 있다. 제자인 프란시스코 바렐라와 함께 집필한 베스트셀러 『인식의 나무』를 포함해서 여러 권의 책을 낸 바 있다. ★ 베른하르트 푀르크젠(Bernhard Poerksen) 함부르크 대학의 저널리즘 및 소통 학과의 부교수이다. 그는 신나찌의 언어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널리 주목받은 바 있는 『체계 이해하기 - 인식론과 윤리학에 대한 대화』를 하인쯔 폰 푀르스테르와 함께 썼다. [옮긴이] ★ 서창현(Seo Chang Hyun 1966~) 서울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교원대학교 대학원에서 현대문학을 전공했다. 현재 다중네트워크센터(http://waam.net) 에서 들뢰즈미학세미나 길잡이 넷터로 활동하고 있다. 논문으로「이인성의 낯선 시간 속으로 연구」(석사학위논문)가 있고 공역서로 『서유럽 사회주의 역사』,『들뢰즈의 철학사상』,『사빠띠스따』,『비물질노동과 다중』등이 있다. 웹저널 『자율평론』(http://jayul.net) 에 여러 편의 번역글을 발표했고 서울사대부고에서 국어를 가르치면서 한국 현대문학과 들뢰즈 미학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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