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거리되찾기운동(RTS)’ 선언문
“우리의 저항은 자본만큼이나 초국가적이다”
지난 6개월 간 세계 각지의 활동가들은 세계 경제의 심장부(금융센터, 은행지역,
초국적 회사 본부)에 대항하는 국제 행동의 날에 대해 논의하고 연대했다. 지난 10년
산업혁명 이래로 가장 근본적인 지구의 정치경제적 재편이 일어났다. 세계화는 초국가
기업과 IMF나 WTO같은 사실상의 ‘세계 정부’에 권력을 넘겨주었다. 90%의 국제적
화폐이동이 투기성이며,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 허구다. 판돈으로 인간의 목숨과
직업, 생태계, 국가의 전체 경제를 걸고 거대한 카지노를 벌이고 있다.
이제 새로운 천년에 즈음하여, 혁명의 잠재력은 움트고 있다. 미국의 주식시장은
과도하게 팽창되어 있고 세계금융시스템은 터지기 일보 직전의 거품이다. 사람들이
모든 권력기구에 대한 신뢰을 잃으면서 정통성이 사라졌다. 그들은 정치가가
타락했다는 것을 안다.
그들은 초국가 기업을 신뢰하지 않으며 ‘고삐풀린 시장’은 어떠한 인간성도 갖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있다. 그리고 지난해 IMF, OECD, WTO는 그들이 기업의
하수인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생태계는 연일 파괴되어가고, 빈부격차는 심화되고
있으며, 밀레니엄 버그가 끼칠 잠재적인 혼란에 대해서는 말하기조차 두렵다.
언론은 침묵하고 있지만 직접 행동은 타오르고 있다. 인도의 WTO 탈퇴를 요구하는
히드레바드에서의 5만명의 행진, 덴마크의 총파업, 수천의 지역 여성들의 32만명을
집에서 내몬 나르마다 댐 공사 현장의 점령, 캐나다 우체부들의 자전거 행진과
연대파업, 니제르 삼각주에서의 환경파괴적 석유 장치의 점령과 파이프라인의 봉쇄,
카르나타카 농민연합의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 매장 방화, 리버풀 부두노동자 파업,
치아파스의 싸빠띠스타 무장봉기의 지지자들이 멕시코 주식시장의 거래를 중지시킨
것, IMF에 맞서고 수하르토를 퇴진시킨 인도네시아 폭동, 프랑스 농민들이 유전자
조작 곡물을 파괴한 것, 브라질의 소작농민들이 수백의 유휴토지를 점령하여 협동
자조 공동체를 건설한 것, 5대륙에 걸친 풀뿌리 기구와 NGO의 운동, 지난해 5월 G8
회담에서는 수만의 인파가 그들의 거리를 되찾아 공동체적 근본과 시민 사회의 수호를
위해 춤췄다.
6·18 행동은 다양성과 자율성의 축제이다. 생태주의적 사고는 많은 운동에 영향을
끼쳤다. 우리 운동은 생태계처럼 완전히 상호연계되어 작동할 것이고, 다양성의
기반에서 번영할 것이며, 그 자신의 지역성과 논리에 뿌리박고 작동할 것이고,
경계와 중복 지점과 틈새에서 가장 창조적으로 발전할 것이다.
뉴욕에서 셰필드로, 뱅쿠버에서 뛰랭으로, 암스테르담에서 시드니로, 프라하에서
텔아비브로, 런던에서 방갈로로, 치아파스 밀림에서 스톡홀름으로…. 모든 대륙의
운동과 조직들이 ‘6·18 국제행동’에 대해 논의중이다. 카르나타카주 농민들,
무지개수호자들, 콜롬비아 흑인공동체 운동, 우루과이의 지구의 친구, 아르헨티나
전교조, 거리되찾기 운동, 엘살바도르 의류노조, 모잠비크 농민 운동 등…. 영국
위원회 하나만 해도 의외의 친구들이 속해있다. 카톨릭 빈곤 행동, 성 해방 동맹,
무기거래반대 운동, 계급전쟁, 템즈지역 케어노동자조직, 맥리벨, 거리
되찾기운동, 제3세계우선운동, 유전공학 네트워크 등. 우리 모두는 짐승(금융시장)의
배를 타격할 절호의 순간이 왔음을 인식하고 있다.
클린턴, 블레어, 슈뢰더 등 G8 세계 지도자들이 번지르르한 쾰른의 호텔방에서 6월
18일 아침에 일어났을 때를 상상해보라. 그들이 CNN 뉴스를 보려고 TV를 켤 때,
도쿄 주식거래소 바깥에서는 5천명의 사람들이 상징적으로 주식 증서를 불태우고
있다. 인도의 해커들이 봄베이 거래소에 해킹하여 모든 거래가 중단된다.
오스트리아에서는 활동가들이 금융지구를 둘러싸고 거대한 포틀랫취(공짜음식)를
나누고 있다. 마오리 활동가들은 뉴질랜드 중앙은행을 봉쇄했고 주식 시장의
마루에서 춤추고 있다. 수십만 한국노조원들이 서울 금융 지구에 모여들고 있다.
인도네시아, 태국, 싱가폴과 말레이시아에서 소식이 들어오고 있고, 태양은 아직도
유럽, 아프리카, 아메리카에서 떠오르고 있다. 8인의 지도자들은, 그들의 파자마를
입고 침대에 앉아있다가 매우 심각한 상황임을 깨닫지만, 저항의 기쁨을 표현하는
웃음소리는 듣지 못할 것이다. 해방의 계기라고 기록될 웃음…미래의 가능성을 깨달은
피압박자들의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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