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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번 : 역사가 준 교훈의 망각 (팩스신문 제 5 호 칼럼)
글쓴이: 박 거 용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등록: 2000-03-10 12:40:34 조회: 756
역사가 준 교훈의 망각
     
     박 거 용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공동대표)
     
     
    지난 10여년간 인류는 소위 '세계화'의 물결 속에 휩쓸려 왔다. 
효율성과 전체적 부의 증대라는 미명하에 국경없는 경쟁이 정당화되었고, 
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개방과 자유화만이 대안이라는 논리가 
당연시되었다. 

그러나 10여년간의 세계화가 가져다 준 병폐는 세계 곳곳에서 너무나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20대 80이 아니라 5대 95가 될 정도로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있고, 이 
때문에 멕시코의 농민에서부터 영국의 노동자나 일본의 은행원에 
이르기까지 인류 대부분이 고통받고 있다. 마찬가지로 국가들간의 부의 
격차도 더욱 악화되어, 어떤 나라들은 유례없는 경제위기로 내몰리는 
반면, 어떤 나라는 반세기만의 초호황을 누리게 되었다. 

인류 대부분의 복지와 생존권이 희생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지속되고 있는 자유화와 개방화는 시장경제의 당연한 
귀결이라고 정당화된다. 

예컨대 이차대전 이후 수립되었던 GATT의 자유무역질서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점 자유화되어 온 결과가 WTO라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를 조금만 
들여다 보아도 이러한 주장은 허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자유무역과 세계화는 20세기말에 처음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다. 

한세기전의 세계경제도 최소한 지금 정도로 자유주의적, 개방적 질서 속에 
놓여있었다. 자유방임주의적 자유주의, 혹은 고전적 자유주의라고 부르는 
이 질서 속에서 상품과 자본의 국제적 이동을 방해하는 어떠한 수단도 
정당화되지 못했고, 국내적 필요에 의한 국가의 개입이 배제되었다. 
이러한 질서는 상당기간 개방적인 국제경제질서를 유지할 수는 있었으나, 
20세기초부터 거듭된 경제파탄과 정치적 혼란, 그리고 대규모 전쟁들 
속에서 무너지게 되었다.

폴라니(Karl Polanyi)의 지적대로, 고전적 자유주의는 '역사적 일탈'이며 
'사회파괴적'이었기 때문이다. 효율성과 개방을 위해 임금과 고용이 
무시되는 상황 속에서, 대부분의 국민들의 경제적 안정과 복지가 
희생되었던 것이다. 

이같은 질서에 대한 노동자와 농민들의 정치적 저항이 거세지면서 
자유방임주의와 자유무역주의의 기반은 붕괴되어 갔다.

2차대전 직후 수립된 GATT의 자유무역질서는 기본적으로 이러한 역사적 
인식에 기초해 있었다.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은 
고전적 자유주의 대신 '제한된' 범위 내에서의 자유무역에 합의했던 
것이다. 

이런 면에서 GATT체제의 목표는 완전히 자유로운 무역(free trade)이라기 
보다는 보호주의 보다 '좀 더 자유로운'(freer) 무역이었다.우선 GATT는 
상품무역에만 적용되었고, 농산물과 서비스, 국제투자 및 반경쟁적 
기업행동 등의 국내경제관행은 제외되었다.  

또 상품무역 중에서도 섬유업은 제외되어 별도의 협약에 의해 무역이 
규제되었다.  

고용 안정을 위한 정부역할의 필요성을 인정했기 때문이며, 이 부문들의 
무역 자유화에 대한 각국의 국내정치적 저항이 거셌기 때문이다. 

고용 효과가 큰 섬유업, 서비스업, 농업 등의 부문이 자유화될 경우, 
경쟁력이 떨어지는 국가들의 이 부문들은 도태될 것이고, 이에 따른 구조 
조정 비용과 정치적 저항 및 사회적 불안정은 막대할 것이며, 결국 
자유무역질서에서 이탈하는 국가들이 속출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질서가 수립된 지 채 반세기가 지나기도 전에 이 질서는 변질되기 
시작했다. WTO로 개편된 국제무역질서는 농업에서부터 서비스업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부문을, 그리고 국내경제정책과 관행에서부터 
환경과 노동정책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영역을 빠른 속도로, 완전 
자유화시켜 나가고 있다. 

반세기 전의 자유방임적, 고전적 질서로 되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 
속에서 제3세계의 많은 나라들의 몰락이나 민중들의 생존권과 복지는 
관심의 대상조차 되지 못한다. 똑같은 질서 속에서 19세기에 일어났던 
똑같은 일들이 점차 거듭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역사가 준 교훈을 반세기만에 망각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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