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 총공세에 힘있게 맞서려면 민주노조운동을 획기적
으로 강화시킬 근본적 대책이 강구되어야 한다!!
현재의 관료화·개량화된 민주노조운동은 신자유주의의 "구조조정(경
제 식민지화와 정리해고를 중심 내용으로 하는)과 노동시장 유연화" 총
공세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민주노조운동이 관료화·개
량화를 극복하고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의 전선을 힘있게 세워내려면
근본적인 대책이 강구되어야 한다.
근본적인 대책이란, 관료화·개량화를 비판하는 데서 나아가, 또는
관료화·개량화된 노동운동 상층부를 교체하거나 하부에 의해 민주적으
로 통제하는 데(이른바 조직 혁신!)서 나아가, 조합원 대중의 계급의식
과 노동조합의 조직·투쟁력, 특히 단위 사업장과 작업현장의 조직·투
쟁력을 비상하게 높여내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민주노조운동을 계급
적·변혁적 노동운동의 방향―이런 방향은 98년도 민주노총 위원장 선
거 당시 후보자들에 의해 이미 제출되었다!―에서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한 실천적인 고리는 민주노조운동의 현장활동가를 대
규모적으로 양성하고, 이들 현장활동가들의 활동력을 드높이는 것(억제
하거나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이다.
파도처럼 계속 밀고 들어오는 신자유주의 총공세―지금 동아시아 및
한국 경제에 대한 IMF-미국-초국적 자본의 제2차 기습공격이 기도되
고 있다!―를 물리치고 노동자 대중의 권익을 방어하려면 관성적인 '혁
신' 정도의 몸부림으로는 해답이 되지 않는다. '자기변혁' 정도의
치열한
노력이 기울여져야만 한다.
교조(敎條)가 아니라 과학적인(민족적이고, 계급적인) 이념으로 무장
하고 진취적인 기풍―쉽게 패배주의에 물들지 않는!―을 체질화한 참된
현장활동가(민주노조운동의 현장활동가를 말한다)를 대규모적으로 양성
함으로써, 그리고 이 현장활동가들의 헌신적이고(출세지향이 아니라!)
창의적인(관료·행정적이 아니라!) 활동에 의거함으로써, 민주노조운동
을 획기적으로 강화·발전시켜야 한다.
그리고 이로써 인간해방을 지향하고 민주변혁과 자주·통일로 전진하
는 '참 노동운동'의 흐름―80년대 후반에 폭발적으로 고양되다가 90년
대에 들어 급격히 퇴조해 버린―을 다시 한번 힘차게 고양시켜야 한다.
이런 근본적 대책을 통해서만 신자유주의 즉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이 가능하다. 이런 근본적 대책이 강구되는 기초 위에
서 당면의 현안들에 대한 이러저러한 대응책들이 배치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현재의 민주노조운동은 당면의 대응에 있어서도 여러 가
지 잘못된 점 내지 부족한 점을 보이고 있으나, 신자유주의에 대한 근본적
인 대책이 비어 있다는 점에서 보다 결정적인 허점을 드러내고 있다.
<1> 무엇이 문제인가?
우리 민주노조운동은 IMF 신탁통치 실시 이후 신자유주의 총공세의 저
지를 최대의 과제로 하고 있다. (그 이전에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문제의식
자체가 없었다!) 계속되는 신자유주의의 파상적 공세에 맞서서 매년 총파
업이 시도되고 있다. 하지만 총파업 투쟁의 동력은 힘있게 모아지지 않고
있으며, 해가 갈수록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투쟁의 동력이라는 기준에서
볼 때 금년 5월 총파업은 사실상 실패작이었다. 축협노조와 보건의료노조
정도를 제외하면 총파업에 동참한 노조는 손꼽을 정도에 지나지 않았던 것
이다.
그 이후 자본과 정권의 공세는 더욱 안하무인격으로 자행되고 있다. 롯
데호텔 노조에 대한 야만적인 공권력 투입―테러진압 부대를 동원하고, 임
산부에 대해서까지 무차별적인 폭행을 가한―과 사회보험노조에 대한 '민
주노조 파괴' 공작은 그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두고 노
동운동 안에서는 "신 공안정국이 도래했다"고 말하고 있다.
한편 이런 '신 공안정국'에 항의하여 민주노총 지도부의 삭발, 농성과 단
식이 두 달 가량이나 계속되었지만 자본과 정권의 태도는 기본적으로 달라
지지 않았다. 지도부의 완강한 투쟁에도 불구하고 대중투쟁의 동력이 힘차
게 표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서 더욱 힘을 얻은 듯, 김대중 정권은
공안탄압 기조를 누그러뜨리기는커녕 내년 2월까지 '4대 구조개혁'(정확하
게는 4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확실하게 마무리짓겠으며(정부는, 최근
주가폭락을 계기로 하여, 이 제2단계 구조조정을 금년 12월까지 앞당겨 마
무리하겠다고 발표하고 있다.), 거기에 방해가 되는 움직임은 법에 따라 엄
단하겠다고 엄포를 계속하고 있다. 이 엄포가 노동자계급과 민주노조운동
을 향한 것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그들은 노동자계급의 저항을 두려워하면서 동시에 민주노조운동의 취약
점―저항의 동력을 힘있게 형성·결집시키지 못하고 있는 점―을 꿰뚫어보
고 있는 것이다.(이와 관련, '전국적인 전선'이 세워지지 않는 점을 주된
문
제로 보는 견해가 있으나, 단위 사업장에서 투쟁 전선이 힘있게 세워지지
않고 있는 사실을 그보다 더 중요시해야 할 것이다! 현장에서 투쟁동력이
올라오지 않고 전선이 세워지지 않는 상태에서는 원천적으로 전국적인 전
선이 힘있게 형성될 수 없다.)
자본과 정권의 공세(구조조정 및 민주노조 탄압)가 이렇게 안하무인격으
로 자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계급이, 보다 구체적으로는 민주노
조운동이, 이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까닭은 도대체 무엇인
가?
지도부의 투쟁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인가? 물론 지도부의 투쟁의지가 부
족하다는 비판도 없지 않다. 하지만 산업·업종별 연맹의 위원장들도 삭발
을 했고, 장기간 야외 천막농성을 했다. 특히 총연맹 위원장은 "현안 타결
없이 하반기 투쟁은 없다"는 강경 방침 아래 한 달여에 걸쳐 가열찬 단식
투쟁을 하지 않았는가?
그러면 조합원들의 투쟁성이 부족하기 때문인가? 조합원들이 지난날에
비해 개인주의나 실리주의에 많이 기울어져 있으며, 이로 인해 투쟁의 동
력이 잘 모아지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롯데호텔 조합원들과 사회
보험노조 조합원들의 투쟁성을 보라. 그 밖에도 이랜드 노조 등 많은 장기
파업 사업장 조합원들의 투쟁성을 보라. 조합원들의 투쟁성이 없다고 한마
디로 잘라 말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보기에 문제는 보다 깊은 곳에 연유하고 있다. 지난 10여 년을
경과하면서 민주노조운동 안에서는 '운동성'(노동운동에 임하는 동기에 있
어서의 순수성, 및 자본의 착취와 억압에 맞서 대립·투쟁함에 있어서의
견결성)이 크게 허물어져 왔으며, 그것에 비례하여 관료화·개량화가 빠르
게 진행되어 왔다. 그리고 이렇게 관료화·개량화한 지도력으로서는 대중
투쟁의 동력을 형성·결집하는 데 원천적으로 한계가 있다. 관료화·개량
화한 지도·집행력은 대중투쟁 동력을 모아내는 데 전심·전력을 다 기울
이지 않을 뿐 아니라, 그것을 해 내는 역량에 있어서도 뚜렷한 한계를 가
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관료적인 간부와 활동가적인 간부의 차이를 생
각해 보라.
다른 한편, 이처럼 관료화·개량화가 많이 진행되면서 이 문제는 이제
대중적으로도 피부로 느껴지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이에 따라 민
주노총의 조합원들이 자신들의 지도부―연맹이든 민주노총이든 또는 대사
업장의 단위노조 지도부든―를 깊이 신뢰·존경하지 않는 상황이 조성되고
있다. (전노협 시절이나 97년 노동법 총파업 당시 등 가열찬 투쟁이 전개
되던 시절과 비교해 보라!) 그리고 바로 그러한 까닭으로 지도부가 일정하
게 투쟁의지를 보이는 경우에도 조합원들의 동참이 힘있게 이루어지지 않
고 있다. 한 때 "양치기 소년" 운운하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이제 정말로
'신뢰의 위기'가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대중투쟁의 동력이 힘있게 형성·결집되지 못하고 있는
데는 "운동성의 약화에 따른 민주노조운동의 관료화·개량화"라는 문제
가 그 밑바탕에 가로놓여 있다.
<2> 사상적 개량화
1990년 1월 22일 전노협 건설로 시작된 90년대 민주노조운동은 양적으로
또는 외형상으로는 눈부신 성장을 이룩해 냈다. 1995년에는 민주노총을 건
설했고, 2000년에는 민주노총의 합법성까지 획득했다. 전노협 당시 5∼6만
명에 불과하던 조합원 숫자가 민주노총 하에서 60만 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러한 양적 성장에 반비례하여 민주노조운동의 사상의식적 측면
에서는 변혁지향적 이념과 전투적인 기풍이 현저하게 약화되었다. 변혁의
전망은 사실상 포기되었다. 이에 따라서 전투적 기풍은 기피되었다. 심지어
"노동운동의 대의에 헌신하고 복무한다"는 운동가적인 순수성이 심하게 퇴
색하고, 개인의 출세와 입지를 우선시하는 출세주의적인 기풍이 만연하기
에 이르렀다.
이렇게 노동운동이 도덕적·사상적으로 무너져 내리면서 조직활동은 교
육이나 토의·토론 등에 의거하는 것이 아니라 "술 같이 먹고 한 패거리가
되는 것"에 의존하는 풍토가 굳어져 가고 있다. 심지어 단란주점에 출입하
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 분위기가 되고 있다. 풍토가 이러하다 보니 성추문
이 잇따라 불거져 나오고 있다.(이러다 보니, 민주노총에서 사무처 간부들
을 대상으로 '성희롱 예방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또 이같이 타락한 지도부의 방조 하에서 조합원 대중 속에서도, 특히 독
점 대사업장을 중심으로, 눈앞의 금전적인 실리 추구에 매몰되는 경향이
나타나게 되었다. 참다운 노동운동이 부재할 때 대중이 개인의 눈앞의 실
익에 급급하게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한편, 도덕적 타락의 문제를 사상적 개량화와 떼어 놓고 생각하는 경
향이 있으나 그것은 올바르지 않다. 사상·이념적으로 개량화한 운동은
십중팔구 도덕적으로 타락한다. 도덕적으로 타락한 운동은 십중팔구 사
상적으로 무너지면서 개량화한다.
우리 노동운동에서 개량화란 천민적인 식민지 자본주의를 변혁하기를
포기하고 그것을 긍정하는 것이며, 그 썩은 도덕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것은 최근에 있어서는 또 야만적인 신자유주의에 대해 마음속으로 투
항하고 행동으로 굴종하는 것―저항 없이 양보교섭으로 일관하는 것―
이다. 신자유주의의 야만성에 투항하고 굴종하는 자에게서 무슨 도덕성
을 기대할 것인가? 도덕적으로 타락한 사람에게서 어떻게 신자유주의
의 야만성에 맞서는 견결한 투쟁을 기대할 것인가?
민주노조운동이 개량화되었음을 보여준 주요한 사례들은 어떤 것들인가?
1995∼6년 노사관계개혁위원회 당시, 민주노총 합법화와 정치활동 자
유 보장 따위를 대가로 노동조건의 유연화(정리해고제, 근로자파견제, 변형
근로시간제, 부분시간노동제 등)를 받아들이고 민주노조운동의 귀중한 성
과물들(대표적으로 조합원의 집단적 교섭·체결권)을 쉽게 포기하려 한 것.
1997년 초, 민주노총의 합법성을 인정받는 것을 대가로 노동법 개악에
동의한 것. 한 달여에 걸친 강력한 총파업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마무리해
버린 것.
1998년 초 IMF 공황 사태 당시, 제1기 노사정위원회에서 조합원 대중
의 생명줄이 걸린 정리해고제 즉각 실시를 수용한 것.
이후 노사정위원회를 통한 사이비 코포라티즘을 수용하려고 거듭 시도
해 온 것.
2000년, 법정 노동시간 단축을 표방하며 근로조건의 유연화·개악을
법제화하려는 신자유주의 의제(議題)를 그대로 수용하고 있는 것.
한국노총의 어용성의 주된 근거로 이야기되었던 '정부로부터의 재정지
원'(그리고 그에 따른 관제어용성!)을 민주노총이 긍정하는 방향으로 내달
려 온 것.(그렇다면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차이는 이제 '민주'와
'어용'의
차이가 아니라 '보수'와 '진보'의 차이란 말인가?)
이같이 "개량화"란 먼 데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우리들의 곁에 있
다. 노동운동의 대원칙(자주성 및 민주성)과 조합원 대중의 이해와 요
구를 방기하거나 배반하는 것이 바로 개량화인 것이다.
당연한 이치로 이같이 운동의 도덕적 타락과 사상적 개량화가 진행되는
속에서 대중은 힘있게 단결·투쟁으로 떨쳐나서려 하지 않는다. 조합원들
은 "노동자 공동의 이익과 노동자의 보다 근본적인 이익의 추구"라고 하는
노동운동의 대의보다 "개개인의 당장의 금전적 과실의 추구"를 우선시 하
게 된다.
그리고 징계, 해고, 손해배상, 무노동무임금 등 금전상의 손해나 일신상
의 위험이 따르는 단결·투쟁 이외의 다른 방도, 즉 자본에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에게 충성하는 방도 쪽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특히 신자유주의 하에서 개량화란, 노동자의 단결을 인정하는 바탕 위에
서 변혁성을 포기하는 것을 대가로 이러저러한 물질적 보상을 해 주는
것―즉 사회민주주의적 개량―을 뜻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개인 이익의 추
구를 위한 노동자 상호간의 무한경쟁을 요구하고 그 경쟁의 승리자에게 차
별적으로(!) 물질적 보상을 하는 것(성과급, 연봉제, 발탁승진 등)을 뜻한다.
이처럼 신자유주의 하에서의 개량화란 사회민주주의적인 개량에도 못 미
치는, 자본에의 투항이다! 그리고 이렇게 신자유주의적으로 개량화되는 속
에서, 즉 노동이 자본에 투항하여 노동자 상호간에 무한경쟁이 진행되는
속에서 단결력과 투쟁력은 원천적으로 무너질 수밖에 없다.
<3> 조직적 관료화
조직의 관료화란 간부가 대중의 이해와 요구에 헌신·복무하는 것이 아
니라 대중 위에 군림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노동관료로 변질되는 것을 뜻한
다. 이러한 관료화는 중앙집권화·위계화와 친화적이다. 하지만 중앙집권=
관료화, 분권=민주화는 아니다. 상급단체에서만이 아니라 단위노조에서도
관료화는 심각하다! 관료화의 핵심은 권위주의적―위원장 '동지'가 아니라
위원장'님'으로 상징되는―인 위계화이다.
이 같은 관료화는 지난 90년대 동안 민주노조운동 안에서 운동성 내지
사상성이 급격히 무너지면서 발생·확산되기 시작하였다. 헌신하는 활동가
로부터 노동조합 권력의 소유자로! 그리고 민주노조가 합법적 제도로 수용
되면서―즉 자본과 정권의 개량화 공세에 의해 민주노조운동의 체제내화가
촉진되면서―매우 빠르게 진행되어 왔다. (총자본은 민주노총 합법화의 대
가로 노동조합의 관료화를 요구하고 관철시켰다! 산업·업종별 연맹만을
상급단체로 할 것―지역별 연합단체는 상급단체로 할 수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지역별 연합단체가 상급단체의 위상을 가질 경우 중앙 관료로부
터 단위 사업장 대중으로의 하향식 통제가 잘 관철되지 않기 때문이다―
과, 조합원 대중의 집단적 교섭권을 폐기하고 위원장에게 교섭권을 부여할
것 등)
그와 동시에 노동조합이 강력한 교섭력을 가지는 조직으로 발전하는 방
도로서(매년 파업투쟁을 치르는 것은 조직적으로, 특히 지도부로서는 큰
부담인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파업을 하지 않고 교섭으로 요구조건을 쟁
취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산별노조―실은
산별노조가 아니다. 기업별 노조의 산업·업종별 전국 단일노조일 뿐이
다―로의 조직체계 개편이 제기되고, 이러한 조직발전 노선에 따라 단일노
조 중앙으로 재정과 집행력이 집중되어지면서 관료화는 더욱 가속화되어
왔다.
현장활동가들의 능동적인 활동에 의거하는 각 사업장의 대중투쟁 및 각
사업장 대중들의 요구와 투쟁에 기초한 산업·업종별 통일투쟁을 추구하는
것과 조합원대중에 대한 일사불란한 통제력을 바탕으로 한 중앙 관료층의
교섭력 발휘를 추구하는 것! 이 두 가지의 극명하게 대비되는 길 가운데서
민주노조운동은 압도적으로 후자의 길로 내달아 왔다.
민주노조운동의 선봉을 자처하는 금속산업연맹에서조차 산업별 통일투쟁
은 없었다. 그 대신 교섭권 위임에 의한 교섭권의 중앙집중과 이에 의한
중앙교섭이 추구되었다. 그러나 투쟁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이러한 중앙교
섭 추구는 고작 대각선 교섭을 하는 것에 머무르고 말았다. 이는 단일노조
로의 개편을 앞장서서 실시한 보건의료 노조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그 간 노동운동 판의 대세가 이러했으므로 현장활동가의 양성과 교육·
훈련은 거의 방기되다시피 하였다. 심지어는 현장활동가 자체가 불편스러
운 존재로까지 인식되어졌다. 노동운동단체의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관여는
제3자의 개입으로 간주, 배척 대상으로 되었다.(관료·개량화된 지도·집행
부에 대한 잠재적 비판세력이므로!) 물론 노동운동단체들에서도 훌륭한 현
장활동가들을 양성해 내지 못한 책임이 크다. 개량화되지 않은 지도·집행
부 세우기 또는 그릇된 노선·정책에 대한 비판 등 당장의 대책 강구에 급
급하였던 것이다.
그 결과 연맹들이 속속 기업별 노조의 산업·업종별 단일노조 체계로 재
편되어 가는 것에 비례하여 단위 사업장의 투쟁동력은 침체하는 경향을 보
이고 있으며, 단위 사업장 내에서는 현장 조합원에 대한 자본의 이념적·
조직적 통제가 날이 갈수록 강도 높게 관철되고 있다. 그리하여 "벼랑 끝
생존권 투쟁"(요즘의 투쟁동력은 대부분 이런 성격의 것이다) 이외에는 투
쟁동력이 잘 살아나지 않고 있다. 신자유주의와 구조조정에 대한 구조적·
과학적 인식을 바탕으로 하는 목적의식적인 투쟁동력은 거의 형성되지 못
하고 있는 것이다.
단위노조마다 대의원도 있고 상집간부도 있는데 어째서 이렇게 되는 것
인가? 대의원과 상집간부가 없어서 이렇게 되는 것이 아니고, 노동운동에
헌신하는 활동가가 없기 때문에 이렇게 되고 있다. 활동가로서의 대의원,
활동가로서의 상집간부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전노협 당시보다 민주노조 조합원이 10배 가량 늘었으면(상집간부나 대
의원은 그 배수만큼 늘었을 것이다!) 민주노조운동의 활동가가 적어도 그
정도 비율로는 늘었어야 하는데, 노동운동의 활동가는 절대숫자에 있어서
조차 별로 늘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참 활동가들은 많은 수가 운동 일
선에서 이탈하거나 운동에 남아 있는 경우에도 상급단체의 간부로 진출해
버린 반면, 신참 활동가는 별로 양성되지 못했던 것이다.
민주노조운동의 현주소는 한마디로 활동가가 부족한 노동운동이다. 이것
은 90년대에 걸쳐 민주노조운동 선상에서 운동성과 사상성이 후퇴해 온 추
세―그냥 추세 정도가 아니라 대세였다!―의 표현 그 자체이다.
현장활동가 없이, 지도부와 조합원 대중만으로 노동운동이 힘차게 전
개될 수는 없는 일이다. 현장활동가가 부재 내지 부족한 상태에서는 조
합원-현장활동가-지도·집행부의 계통으로 이루어지는 상향식의 대중
주체적인 사업방식을 기대할 수 없다. 현장활동가가 부재 내지 부족한
조건 하에서 지도·집행부가 대중의 요구를 해결하고자 하면 더욱 더
관료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지도부-중간간부-조합원으로
계통적으로 조합원을 투쟁에 동원하고 통제하는 방식으로! 즉 해결사적
인 방식으로!
이 경우 조합원은 조직과 투쟁의 주체로 세워지기 어렵고, 지도·집행부
를 대상화하게 되며(노동조합에 대해 일체감을 갖지 않고, 개인 이익 추구
를 위한 활용 대상으로 삼으며!), 자본의 탄압과 회유에 쉽게 끌려 들어가
게 된다.
민주노조의 선봉임을 자타가 공인하는 서울지하철 노조의 최근 사태에서
우리는 이 지점을 주목하고자 한다.
활동가로서의 간부층이 두텁게 존재해야만 조직은, 관료화에 빠지지 않
을 뿐만 아니라, 활력을 가지고 살아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모든 간부(임
원, 상집간부, 대의원 등)를 활동가로!
<4> 그 귀결로서의 민주노조운동의 무기력증
민주노조운동이 자본과 정권으로부터 철저히 묵살 당하고 있는 데는 정
권 측이 구조조정을 관철시켜야 할 절박성―국내 자본의 필요성이든 IMF
등 초국적 자본 세력의 압력이든―이 하나의 측면을 이루고 있다면, 노동
측의 무기력이 다른 한 측면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노동 측의 무기력은
지도부가 일정하게 투쟁의지를 보이고 있고 조합원 대중 또한 일정하게 투
쟁성을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속되고 있다.
앞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자본 측은 지금 최근의 주가폭락을 계기로 98
년 IMF 충격요법에 이은 제2차 구조조정 총공세를 기도하고 있다. 이 총
공세에 대해 민주노조운동은 과연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98년 당시와는
달리 자본 측에 투항하지 않고 위력적인 총파업으로 맞설 것인가? 유감스
럽지만 그 대답은 부정적이다.
이렇게 비관적으로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법정 노동시간 단축을 전면에
내세우며 하반기 투쟁을 준비해 왔을 뿐 제2차 구조조정 총공세에 대한 대
비가 전혀 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주노조운동이 이렇게 무기력증을 보이게 된 것은 현재의 잘못
에서만 연유하는 것이 아니다. 일시적이고 부분적인 한계나 오류에서 비롯
된 것도 아니다. 90년대 10년 동안에 걸쳐 꾸준히 진행되어 온, 그리고 민
주노총 결성 이후 가속화되어 온 노동운동의 사상적 개량화와 조직적 관료
화로 인해 노동자계급의 총체적 역량이 제대로 성장·발전하지 못하고 있
는 데서 비롯되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노동운동이 관료화·개량화되는 길을 걸어오면
서 현장 대중이 이념적으로나 조직적으로나 자본에 장악되어 있다. 민주노
조라고 자랑하지만 조합원 교육을 열심히 하는 노동조합이 과연 얼마나 되
는가? 민주노총 소속 사업장 치고 주식투기 붐이 일지 않은 곳이 몇 군데
나 되는가? 자기회사 주식을 나눠주는 것을 미끼로 양보교섭을 하자고 회
유·압박하는 데 넘어가지 않는 조합이 얼마나 되는가?
현장 통제력을 장악하고 있는 노조가 몇 %나 되는가? 조반장을 조합원
이 직접 선출하는 사업장이 몇이나 되는가?
노동운동가로서의 삶을 살아가기로 결심한 현장활동가(민주노조운동의
활동가!)로서의 노조간부가 전체 노조간부의 몇 %나 되는가? 활동가들이
조합원의 몇 %나 되는가?(산별노조로 조직형태가 바뀌면 그 비율이 줄어
들어도 좋은 것이 아니다! 그와 정반대로 최소한 조합원의 5∼10%는 될
정도로 현장활동가가 대폭 늘어나야 한다!) 일부 독점 사업장의 경우 대의
원들조차 회사측에 의해 장악되고 있지 않은가?
신자유주의의 총공세 하에서 민주노조운동이 힘있게 대응하지 못하고 무
기력증에 빠져 있는 것―총노동전선 이전에 단위 사업장과 작업현장의 수
준에서부터―은 투쟁력의 밑바탕을 이루는 사상의식과 조직력의 면에서 이
같이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기 때문이다.
이 구멍을 메우지 않는 한 아무리 투쟁의지가 있는 지도부를 세워도 또
비타협적인 투쟁방침을 세워도 힘있는 투쟁, 승리하는 투쟁을 기약하기 어
렵다.
<5> 종래의 관성적인 대책들의 한계
90년대에 들어서 동구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미국이 배후 조종하는 식민
지·종속국의 민주화 이행전략이 겹쳐서 다가오면서 우리 민중운동(속칭해
서 운동권) 안에서도 '혁신'이라는 용어가 빈번하게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이렇게 내세워진 '혁신'들은, 기동전에 대해 진지전을 강조하는
현실적합성
을 다소간 가지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변혁성 대신 개량성을, 전투성 대신
타협성을 옹호하는 방향으로 치달았다. (변혁성을 계승하는 참다운 혁신이
아니라 그것을 버리는 청산주의적인 혁신으로!) 그리하여 혁신을 내세웠던
부분들은 대부분 관료·개량화로 일탈했고 그로 인해 대중의 신망을 잃었
다.
민중운동권 안에서와는 달리 민주노조운동 안에서의 혁신은 IMF 사태
이후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를 계기로 하여 처음으로 본격 제기되었다. 민
주노조운동은 "개량화되는 혁신"의 방향으로 달려오기는
했으나('변혁지향
적'인 전노협 정신과 '전투적 연대투쟁'이라는 전노협 기풍은
청산되었다!)
이것을 '혁신'이라고 표현하지는 않았었다. 그러다가 관료화·개량화를 바
로잡는 것을 '조직 혁신'이라고 올바르게 제기하였다.
민주노총에서 제기된 '혁신'의 요점은 위원장 직선제 및 대의원 비율 확
대와 지역연대조직의 위상 제고로 집약될 수 있다. 그러나 잘 아는 바와
같이 이 혁신은 그같은 혁신에 소극적이거나 반대하는 부분들의 저항에 의
해 무산되었다.
그러면 이 혁신 대안은 여전히 유효한가? 그 혁신 안 자체는, 한계는 있
지만 상당히 긍정적이다. 그러나 그것을 뒷받침할 조직적 기반이 매우 부
족하다. 문제는 바로 그러한 조직적 기반의 부재임을 지난번 혁신의 좌절
은 뚜렷하게 보여주었던 것이다.
한편, 그러한 조직적 기반을 만들기 위한 방안으로서 수년 전부터 '현장
조직 건설'이 모색되어 왔다. 그것은 종래의 '선진노동자 조직'들이
지역 수
준의 모임에 머무르면서 단위 사업장에 굳건히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었던
데 대한 비판적 극복방향으로서 의미 있는 시도였다.
그러나 이들 이른바 현장조직들 역시 별반 성공적이지 못했다. 우선 자
신의 위상부터 분명히 하지 못했다. 일부에서는 현장조직을 '선진노동자 조
직'이라고 규정했지만, 그 개념도 불분명했다. 선진노동자란 특정한 정치이
념을 가지고 있는 노동자를 말하는가? 민주노조운동의 활동가는 선진노동
자인가 아닌가?
이런 가운데 현장조직은 특정의 정치이념을 지닌 노동자들이 중심이 되
고 여기에 이들과 친분관계를 가지고 있는 간부와 열성조합원들이 함께하
는 모임으로 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그리하여, 정치조직이 아니라 정파조
직!) 심한 경우 표방하는 정치이념도 없고 단지 노조 집행권력을 향해 경
쟁하는 파벌조직으로 되었다. (전직 위원장이나 앞으로 위원장이 되고자
하는 사람을 보스로 하는 계파조직!) 이처럼 대부분의 현장조직이 정파조
직 내지 계파조직화 하면서, 단위 사업장을 기초로 하는 민주노조운동 활
동가들의 결집체라는 성격은 희미해지고 말았다. 그리하여 자본의 신자유
주의 공세에 맞서 현장 조직력과 투쟁력을 유지·강화해 내는 역할을 힘있
게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그의 활동이 민주노조운동의 영역과 수준에 제한되어 있을지라도 노
동운동가로서의 삶을 자신의 인생으로 설정하고서 실천활동을 하고 있
다면 그는 노동운동의 활동가이다. ("노동운동 하고 나서부터 참 삶이
무엇인지 알았네" 할 때의 노동운동은 이같은 의미일 것이다.) 이런 민
주노조운동 활동가들이 사업장을 단위로 하여, 정파적 차이를 뛰어넘어
서, 묶어세워진 조직이 현장조직이다.
이러한 개념과 기준에 입각하여 만들어지고 운영되어지지 않는 조직
들―대부분이 그러한데―은 대개 집행부를 장악하기 위한 파벌조직으로
퇴행한다. 노조 집행권력 추구가 모든 것을 압도한다. 정파조직도 되지
못한다!(선거 때만 되면 노선과 정책에 의해서가 아니라 파벌적 이해관
계에 따라 이합집산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조직들이 단위 사업장을 넘
어서 전국적으로 결집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6>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다!
민주노조운동의 관료화·개량화를 극복하고 투쟁동력―신자유주의에 저
항하는!―을 힘있게 형성·결집하기 위한 대책이 전혀 모색되지 않았던 것
은 아니다. '조직 혁신'이나 '현장조직 건설' 등 나름의
모색들이 있었다. 그
러나 그러한 모색들은 조직적 뒷받침의 부족으로 성공적으로 밀고 나가지
못하거나('조직 혁신'의 경우), 노조 집행권력에 대한 매몰로 인해 참다운
현장조직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등 뚜렷한 한계를 드러냈다.
그것들이 뚜렷한 한계를 드러내게 된 까닭은 무엇인가? 결정적으로 중요
한 지점이 간과내지 경시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노동운동은 사람이 실천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지, 올바른 이론이
나 정책을 채택한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더불
어, 노동운동이 잘 되려면 지도·집행부가 해결사 역할을 잘 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조합원 대중이 주인·주체 역할을 잘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조합원 대중을 주인·주체로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수의 훌륭한 활동가가 역할하고 있어야 한다. 노동운동의 발
전을 위해서는 활동가의 양적 확대와 질적 발전이 필수 조건인 것이다.
이런 견지에서 볼 때 종래의 대책들은 대부분 단기대책 내지 대증요법
같은 것들이었다. 근본적인 대책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노동운동에 있어서 '근본 대책'이란 다른 무엇보다도 사람을 키우는 것으
로서, 구체적으로는 '일꾼 키우기', '활동가 키우기'이다.
간부와 열성조합원
을 활동가로! 그리고 이 현장활동가들의 헌신적·창의적 일상활동을 통해
조합원 대중의 의식을 계급적·변혁적 의식으로 높여내고, 이러한 조합원
대중의 의식향상에 의거하여 조합의 단결력과 투쟁력을 비상하게 강화하는
것이 신자유주의에 대한 근본 대책이라는 말이다.
이런 기준에서 볼 때 그 동안 모색되어 온 '현장조직 건설'은, 간부나 열
성조합원들을 현장활동가로 키워내는 것보다는 기왕에 존재하고 있는 활동
가나 열성 조합원들을 묶어세워 당장의 실천과 선거에 동원하는 데 급급했
다. 특히 선거에! 그리하여 이른바 현장조직들 안에서도 선거 때만 되면 아
무리 중요한 투쟁도 우선순위에서 밀려난다!
각도를 달리해서 보면, 운동의 관료·개량화와 현장활동가의 부족은 서
로서로 원인과 결과가 되는 방식으로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 그리고 이 두
가지는 모두 우리 노동운동 전반에 걸쳐 변혁지향성이 포기되고 운동성이
퇴색한 데서 비롯되고 있다. (참다운 '현장조직 건설'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도 운동성의 퇴색이 극복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료·개량화를
극복하려면 관료·개량적인 지도부를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데서 나아가 노
동운동의 운동성을 되살려 내는 것이 절대적으로 요청된다.
그리고 민주노조운동의 운동성을 되살려 내는 실천적인 고리는, 운동성
이 퇴색한 기존 활동가들의 운동성을 회복시켜 내는 것보다는, 신자유주의
의 파상적 공세를 계기로 새롭게 노동운동 대열로 진출하고 있는 신진 간
부들과 열성조합원들을 대규모적으로 현장활동가로 양성하는 것이다. 그리
고 이들 진취적인 신진 활동가들에 의하여 '참 노동운동'―자유와 평등의
추구에서 나아가 인간해방을 지향하는―의 흐름을 새롭게 고양시켜 내는
것이다.
이것이 뒷받침되는 위에서만 '조직 혁신'이나 '현장조직 건설'
같은 의미
있는 모색들도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다. 그리고 운동의 관료화·개량화를
극복하고 힘찬 대중투쟁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나아가 신자유주의 총공세
를 물리치고 민주변혁과 자주·통일을 거쳐 노동해방·인간해방으로 전진
할 수 있다.
요컨대 우리의 결론은 근본적·장기적 대책을 기초로 하는 위에서의 단
기적·대증요법적 대책들의 배치이고, 근본적·장기적 대책으로서 민주노
조운동을 짊어질 현장활동가의 대규모적이고 지속적인 양성이다. 노조간부
와 열성조합원들의 교육·훈련(전태일 정신과 실천적 지식에 대한)을 통해
서! 그리고 이렇게 대규모적으로 배출되는 현장활동가들의 헌신적·창의적
인 활동에 의하여 조합원 대중을 노동자계급의 일원이라는 의식을 가지는
'참 노동자'로 각성시키는 것이다.
그 방도는 무엇일까? 그 방도의 하나로서 우리는 사이버 공간을 활용
하여 '전태일 노동대학'을 설립할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이런 모색들을 통해서 '노동자 교육운동'이라는 노동운동의 독
립적인 영역―노동조합운동과 '노동자 정치운동'에 부속되는 것이 아니
라 그것으로부터 독립되어 있으면서 그것에 버금가는 중요성을 지니
는―을 개척·활성화할 것을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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