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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에게 몸버린 시골처녀 얘기: 친일자유신학자 자유신학 친일신학 교역자에게 유린당한 시골처녀 얘기 <font color=red size=3>목사에게 몸버린 시골처녀</font> 몽둥이 찜찔로 쫓겨난 또라이 자유신학자(自由神學者) 스토리 * 이미 읽으신 분은 지나가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예수쟁이가 맨날 '자유주의자'라고 다른 사람을, 심지어 괜한 사람들까지 공격하는 데 그래봐야 통하지도 않고... 먹혀들지도 않습니다. 아래 정통파(?) 자유주의 신학자가 왔다가 몽둥이 찜찔을 받고 며칠후 사라진 얘기 전말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자유주의를 깨부수려면 공부를 많이 해야 합니다. 자유주의자들 공부 많이 하는 거는 배워야 합니다. 예수쟁이 같이 공부 안하면 무당종교신자로 사람들에게 비웃음이나 살뿐입니다. 예수쟁이같은 골통 근본주의자들을 그래서 건전 신앙인들은 '신학적 깡패'하고 비웃습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목사에게 몸버린 시골처녀 얘기:자유신학자 질책 퍼온글 어느 시골처녀가 취직 자리를 구하려고 보퉁이를 옆에 끼고 서울역에 내렸다. 그러자 어느 아저씨가 다가와 밥사줘, 음료수 사줘, 그리구 잠자리까지 제공한다해... 이런 정도는 보통 정도만 되는 사람이라도 "아! 사창굴에 팔아 넘기려구..." 하고 눈치를 챌 것이다. 그런데 교회에서는 판사 검사 사장 교수 의사 박사 등이 너무나 아둔한 일들이 벌어져도 양떼들이 먹사들의 먹이가 되는 일이 흔하다. 예를 들어 "참 우리가 기도를 할 때 저 멀리 하늘위에 있는 그런 가공의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 안에 살아 숨쉬는 생명력 있는 기도를...." 하면, 어느 근본주의의 평신도 골수 성경교사가 "그 말은 맞지!" 한다. 바로 이런 점이 어리숙하다는 것이다. 눈치빠른 사람은 벌써 영국의 성공회 주교가 쓴 사실상 불신앙의 솔직한 고백서인"신에게 솔직히"라는 베스트셀러를 연상할 것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얘기는 생략하고 아래 예를 본다. 강오란 자는 양심이 완전히 마비된 자이다 강오! 귀하가 최소한의 양심을 가지고 있다면 대답해 보시오! 귀하는 학맥으로 보아 기장이나 기감출신이요! 즉 한신이나 감신계통 혹은 연신출신이라 말이요! 하늘에 맹세코! 학자적 양심은 있을 거 아니요! 왜 당신네들 목회할 때는 교인들에게 사기치는 거요? 당신네들 속으로 생각하는 거와 달리 설교하는 거지! 성경말씀을 잘 믿는 거같이! 왜냐? 그러면 보수적인 한국교인들에게 안 팔리니까! 거짓말 하려면 직업을 바꾸시오! 귀하는 하는 꼬라지가 아마 자유주의인 독일신학대 정도에 유학, 유학한 적이 있는 '또라이' 정도로 보고 있소! 저번에 *처음부터* '척 하면 척'이라고 눈치는 챘지만 예수쟁이나 그리스도 종이 너무 '골동 근본주의'로 '교리의 축소화' 위험이 있어서 그걸 훈계하느라 귀하 글도 인용했지만 이제 본색이 드러났소. 중간에 한번 더 올린 글에서 선언 하려다 이번에 선언 하는 거요! 당신네들 선배들 한 꼬락서니나 알고 그러시오! 가장 '양심과 자유'를 주장하는 당신네들이 일제하에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가증스러운 갖은 친일과 난행을 했소! 학살하러 중국에 출병하는 일본군을 찬양하고 일황에 충성을 맹세할 이유가 도대체 뭐요? 그리고 해방후에는 일제하에 감옥에서 나온 소수의 산순교자라 불리는 목사들을 당신네 선배들이 교회에서 축출했소. 그리고 그분들을 따르는 성도들의 예배당까지 탈취하고. 일제하에 일본 우상신에 절하는 것을 거부하고 평신이 폐교되자 일황에 충성을 맹세하면서 조선신학교가 설립이 되었소. 이게 부끄럽게도 한신대의 전신이요! 교육목표는 "충량유위한 황국의 교역자를 양성함" 이라고 정하였소. <img src="http://kcm.co.kr/korchur/chpic/1943.gif"> http://kcm.co.kr/korchur/chpic/1943.gif 일본에 가선 신사참배를 한 조선교회 교역자 대표들(1943년) 김재준이란 자는 학자적 양심이 결핍된 자요! 세상의 '반민특위'에까지 체포된 목사들에게 책망하는 말 한마디 없이 다 짝짜꿍이 맞아 돌아다녔소! 그리고 감신은 일제하에 부끄럽게도 '황도 정신교사 연성소'라는 더러운 이름으로 더러운 명맥을 이었소! 해방후에는 회개는 않고 교권다툼에 혈안들이 되어 난리를 쳤소. 결국은 감투 즉 자리 나눠먹기로 끝났소. 이게 감리교넘들의 하는 숫법이요! 그놈들 자리싸움으로 감독 뽑는데 투표를 100번이 넘게 한자리에서 한넘들이요! 연전은 숭전이 신사참배 거부로 폐교할 때 부끄럽게 간판을 달고 백낙준은 친일 '기독교신문'을 창간하고 기독교 황민화에 앞장섰던 인물이요. 그리고 친일잡지 동양지에도 논문을 게재하여 활동했고 기독교 지도급 인물로 침략전쟁을 지원하며 '대동아전쟁처럼 숭고하고 위대한 전쟁은 없다' 하며 조선청년들에게 침략군 일본에 지원하라고 학병을 권유했었소.. 오죽하면 해방후 국대안 파동시 서울대에 가려다 일제말 행적 때문에 학생들이 무지무지하게 반발했었소. 연신은 백낙준의 사상을 뒤집어 쓴 거라고 할 수 있는데 학생들에게 채플이랍시고 '예배같지 않은 예배' 드리며 나치에 항거한 독일 신학자 '본회퍼' 영화도 상영하고 학생들로 하여금 독후감까지 쓰게 했다며? 이거는 마치 일본군 중위 출신으로 일황에 충성을 맹세하던 오까모도미노루중위(박통)가 집권후 현충사를 맹글고 이순신을 존경하며 국민학생들에게 착각을 일으키게 하며 한편으로는 청와대 술자리에서 일어로 '황국신문서사'를 외우던 거를 연상시키오! 1970년대에 까지 김재준과 노닥거리며 일제하 우상신에 절하는 거를 항거하는 운동을 하고 옥고를 치르거나 순교한 목사들을 "어리석게 죽었다" 한 비양심적인 인물이요! 어느 반독재투쟁을 한 교수가 그럽디다. "위선자야! 1960년대초에 연세대에 분규가 있었어요. 그때..... 연세대가 무슨 자기 학교나?" 하던 기억이 나오! 강오! 귀하같은 썩은 인간은 학자적 양심이 눈꼽만큼이라도 있다면 찜싸고 물러나시오! 귀하같은 인간은 쓰레기차에 실려 난지도에 버려졌어야 할 인간이요! 최소한도 학자적 양심이 있다면 귀하의 선배들 일본우상 천조대신에 절하고 온갖 자발적 친일행각이나 회개선언하라고 하시오! 썩은 인간들! 기장, 기감과 통합교단은 공히 공적회개를 한적이 없소! 공적인 죄는 공적으로 회개해야 하오! 죄에 대한 참회가 법식적으로 확실할 때까지 가리우지않는 것이 성경적이오! 독일에서는 나치에 협력한 목사들 3년동안 목회를 못하고 자숙하였소! 그런데 당신네 선배들 단 2개월의 자숙기간도 거부하였소! 그런데 당신네들이 독일에서는 일본우상신에 항거한 것으로 행세한다며? 지가 지들이 무슨 나치에 항거한 신학자 '본회퍼'라구? 그 발싸개 하기에도 부족한 인간들이! 본회퍼는 그렇게 학살자들(나치 즉 천조대신, 일황과 일군)에게 아부하지 않았소 최소한의 학자적 양심은 있어야 할 게 아니요! 그따위 정신상태로 어떻게 강단에 서서 설교하오! "썩 꺼지시오! 드럽다!" 적어도 조자토에 '소리들'이 버티고 있는 한 귀하같은 썩은 인간은 더 이상 발 붙이기 힘들거요! 특별계시로서의 성경을 부정하고 기독교 핵심인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귀하는 신학(神學)과 철학(哲學)도 구별 못하는 '또라이'요. 예수를 그저 똑똑한 한 인간으로 보는 거요! 하기사 20세기 들어와서까지 존재조차 부정하는 정신나간 신학자도 있다고 들었소만! 소크라테스, 플라톤같은 기원 수백년전 사람의 저서라는 게 남아 있는게 원본에서 베끼고 그것을 다시 또 베낀 천수백년후의 것에 불과하오! 그나마 5-6개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소. 성경은 사본이 수백개가 남아 있소. 이차대전 후 발견된 사해사본이 예수탄생 전(B.C.=Before Christ)에 쓰여진 건데 거기에 이사야 53장에 예수님의 강림을 예언하고 있소. 비신화화(Demythologizing) 귀하의 이론은 독일의 성경 신학자인 불트만에 의해 제창된 신약성경 해석방법을 말합니다. 기독교의 메시지를 현대에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불트만의 시도는 역사적이며 성경적인 기독교에 나타난 초자연적인 요소를 사실상 제거하는, 그래서 근본적으로 메시지의 본질 그 자체를 변질시키는 심각한 결함을 함유하고 있습니다. 비신화화는 기독교의 역사성에 근거한 근본을 파괴합니다. 그래서 성경의 종교가 신화에 기초한 종교가 된는 것입니다. 화란의 개혁주의 신학자 리델보스는 불트만의 해석 방법론을 다음과 같이 서술한 바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잉태치 아니하였고,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지 않았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받으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지옥에 내려가지 아니하시고, 삼 일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지 아니하시고, 승천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지도 아니하시다가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러 다시 오시지 않으실 것이다. -선언서- 성경을 '신화로 해석하는자' + '비신화화운동자' = '무조건 이단' 위를 선언 하노라! 참복음의 소리 양심의 소리 돌들의 소리 소리들의 연합으로 선언 하노라! * '그리스도 종'이나 '예수쟁이' 같은 행동력을 결여한 사이비 보수 골동들이 있으니 강오같은 '학자적 양심을 결여'한 '썩은 인간들'이 활개를 칠 수 있는 거요! 자칭 보수랍시고 윤리적으로나 결백하게 살았소? 가슴에 손을 얹고들 생각해 보시오! 심지어 '기윤실' '기학연'을 비난 하는 거 보면 당신네들 정신상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오! 귀하들의 위험성은 '기독교의 무당종교화'이고 강오는 기독교를 '철학'으로 만든 거요! 강오! 이보시오! 왜 캐캐 묵은 거 가져다가 또 지랄 지랄 지랄하는 거요? 이런 걸 "번역신학"(飜譯神學), 수입신학(輸入神學)이라 하오! 구미에서는 벌써 수십년전에 먹다 소화가 안되어 토해내 버린 건데 왜 남이 먹다 토해내 버린 것을 이제야 주워 먹고 여기다 헥헥 거리며 토해내는 거요? 민중신학이라고 외국 것, 이거 저거 짬뽕으로 베껴다가 그저 주체성을 살린답시고 "MinJoong Theology"하면 독창적이 되는 거요? 한심하고 알량한 인간들! 요새는 평신도들 똑똑한 사람들 많아 더 이상 그런 쓰레기같은 소릴 지껄이다 큰일 나요! 아까 기학연인가 하는 소속의 어느 젊은 교수글 퍼올린 거 봤지? 아래가 강오란 자, 귀하의 부끄러운 글이요!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단군신화와 기독교 단군신화와 기독교 R형, 한국 기독교인들 중 상당수가 단군을 믿지 못하겠다고 한답니다. 단군이 역사적 인물이 아니고, 단군에 관한 모든 이야기들이 한갓 신화에 불과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단군을 못 믿겠다. 단군을 민족의 시조로 모실 수 없다" 하는 등의 의견에 제가 나서서 왈가왈부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서 단군이 역사적 인물이 아니고 그에 대한 이야기가 신화적이기 때문에 그를 믿을 수 없다고 하는 주장에 관한 한 그것이 어불성설이라는 사실만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어서 몇 말씀 드리려 합니다. 왜 어불성설일까요? 현재 서구 기독교 신학자로서 근본주의에 속한 몇몇을 제외하면 기독교인들이 그들의 "믿음의 조상"이라 믿고 있는 아브라함을 역사적 인물로 간주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아브라함에 관한 이야기가 역사적 사건을 기록한 역사서라 생각하는 사람도 물론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역사적 인물 이냐 아니냐, 그에 관한 기록이 신화적이냐 아니냐 하는 것과 상관없이, 아브라함은 기독교인들에게 그대로 믿음의 조상이요, 그의 이야기는 기독교인들(유대인들이나 이슬람교도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지만)의 삶을 꼴지우고 그들의 생각과 삶에서 여전히 살아있는 믿음과 용기의 원천이 되고 있습니다. 한가지만 더 지적해 봅시다.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가 역사적으로 정확하다고 믿는 신학자나 역사가들도 거의 없습니다. 누가복음 2장에 보면 로마의 아우구스트(August) 황제가 칙령을 내려 로마제국의 통치를 받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들의 고향으로 돌아가 호적등록을 하도록 했는데, 그 첫 번째 호적등록이 구레뇨(Quirinius)가 시리아 총독으로 있을 때 시행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한편 마태복음 2장 첫부분에 보면,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부터 우리가 잘 아는대로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별을 보고 아기 예수를 경배하러 오다가 헤롯 왕에게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에 계십니까?"하고 물어보는 등의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가 남긴 역사 기록에 의하면 구레뇨 당시 정말로 호구조사가 있었다고 합니다. 헤롯 왕이 기원전 4년에 죽고, 그의 아들 아켈라우스(Archelaus)가 그 뒤를 이어 왕이 되었지만, 백성들의 원성 때문에 결국 기원 후 6년 왕위에서 겨나고, 유대는 시리아 총독의 관할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해 구레뇨가 시리아의 총독으로 임명되었고, 자기 관할의 자산정도를 정확히 알아보기 위해 호구조사를 실시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감안한다면 아기 예수가 헤롯 왕이 임금일 때 태어났다는 마태 복음서의 기록은 역사적 신빙성이 결여된 이야기가 되는 셈입니다. 물론 아기 예수가 헤롯 왕 때 태어났다면 예수의 탄생과 관련하여 호구조사를 언급한 누가 복음서가 믿을 것이 못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경에 나타난 예수님의 이야기가 역사적으로 불확실하거나 사실과 다르다고 해서 예수님의 이야기가, 또 그의 삶과 가르침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까? 역사적 정확성과 상관없이 그의 삶과 가르침은 오늘을 사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여전히 삶의 의미를 주는 원천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단군이 역사적 인물이 아니고, {삼국유사} 등에 나타난 그에 대한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합시다. 그렇다고 그를 믿을 수 없다고 하는 일부 기독교인들의 주장은 결국 역사적 인물이 아닌 아브라함이나 역사적 사실이 불분명한 예수를 역사적 사실과 상관없이 그대로 믿고 있는 자기 자신들의 신앙내용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 자가당착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실 신화란 역사성과 직접 관계가 없습니다. 신화란 역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말해 주려는 것이 그 일차적 목적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신화는 사실적 서술로 표현하기 불가능한 뜻을 전달하기 위한 특수 전달 방법입니다. 각자 자기가 처한 삶의 정황에서 그 신화에 담긴 깊은 뜻을 나름 대로 간취하고 그것을 생활에 옮김으로 자기의 삶을 더욱 풍요롭고 아름답게 하는 것이 문제지 그 역사성을 따지고, 거기서 역사적 사실이나 과학적 정보를 얻으려는 것은 신화의 본질적 성격에 대한 오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단군이 역사적 인물이냐 아니냐와 상관없이 그의 가르침이라고 전해 내려오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상(理想)이라든가 그가 우리들 심성에 자리잡고 있는 시조(始祖)로서의 위상, 민족 정신의 구심점(求心點)으로 작용할 가능성 등이 오늘 우리를, 나아가 우리 민족을, 더욱 훌륭하고 착한 사람, 더욱 의젓하고 늠름한 민족으로 살아가게 하는데도 움이 된다고 여겨지면 그것으로 그를 믿어 나쁠 것이 전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단군 성조(聖祖) 새워 주신 신성한 나라"를 마음을 다해 노래부를 수 있습니다. 이런 믿음이야 말로 일종의 "실존적 결단"에 관계되는 일이라 할 수 있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실 이런 결단에 의한 믿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 강오 : kangoh@koreawired.com ] Copyright (c)1995-97, Digital Chosunilbo All rights reserved. 아래는 그리스도종과 예수쟁이에게(둘다 근본주의)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우리나라는 목사가 무당역할을 한다-복채도 받고 세계선교역사상 우리나라같이 개신교가 급속히 퍼진 나라는 없다. 선교학에서 무당종교가 성한 곳에 전도가 잘되는 것은 상식이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쉽게 전도가 되어 기독교가 퍼진 것이다. 그래서 믿는다고 하면서 무당종교식으로 믿는 것이다. 무당종교의 특징이 윤리성이 없다는 것이다. 무당종교가 어디 언제 '거짓말 하지 말라' '순결하라'라는 것을 가르치는가? 그저 이땅에서 복받고 잘먹고 잘 사는 것에나 관심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무당종교의 신인 귀신의 특징은 사람이 깨우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그것을 깨우는 게 누구냐? 면은 무당인 것이다. 그리고 복채가 필요한 것이다. 기독교에서 목사가 무당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복채를 받고 기도해 주고 복을 비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개신교는 만인제사장으로 신도는 누구나 하나님게 기도를 직접하고 기도응답을 받을 수 있는데 한국은 종교개혁이 안된 느낌이다. 그래서 아기 돌, 개업, 생일, 환갑잔치 등등에도 목사가 출동하여 굿판을 벌이고 복채도 받고 축복기도도 해주고 하는 것이다. 심지어 입학시험 때도 특별헌금 특별예배 등을 주관하고 복채도 받고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무당은 약 40만명이라고 한다. 정치인 기업인 등도 무슨 일만 있으면 무당을 찾고 심지어 목사도 무당을 찾는다고 한다. 즉 목사가 성경을 안읽고 무당을 찾는 것이다. 아래는 "근본주의의 문제"-어느 자유 신학자의 글 기독교 무엇이 문제인가? 종교에 대한 토론이 활발하군요. 여기 글하나 올려 봅니다. 물론 모두들 동의하시라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냥 한번 심심풀이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기독교 무엇이 문제인가? R형, '잘 믿는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상당수 그리스도인들의 경우 그것이 다음과 같은 것들을 믿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첫째, 성경만이 하느님의 유일한 계시로서, 그것은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다는 것, 둘째, 예수만이 유일한 구세주로서 그를 구주로 믿고 받아들여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셋째, 기독교만이 유일한 참 종교로서 세상 사람들을 모두 그리스도인들이 되도록 하기 위해 선교에 전력을 해야 한다는 것, 넷째, 우리 교회에서 가르치는 신학만이 유일한 진리로서 종래까지의 신학을 재검토하고 그것을 더욱 의미있게 재구성하려는 노력, 특히 역사비평적으로 성경을 이해하려는 진지한 노력 같은 것은 모두 거들떠볼 것도 없이 '인본주의 신학'이나 '자유주의 신학'에 입각한 이단이라 규정하는 것 등입니다. 성경만, 예수만, 기독교만, 우리 신학만, 옳다고 하는 "만만주의"의 대명사인 셈입니다. 영어로 "one and only syndrome"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주장을 좀 세분해서 전통적인 신학 용어로 나열하면 1. 성경무오설, 2. 동정녀 탄생, 3. 기적, 4. 육체 부활, 5. 인간의 죄성, 6. 대속, 7. 예수의 재림과 심판 등을 무조건 문자적으로 인정하고 의이 믿어야 '잘 믿는 것'이고 그래야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세상이 어떻게 바뀌더라도, 하늘이 두쪽이 나더라도, 이 '근본적인 믿음'을 잃어버리면 기독교도 기독교인도 있을 수 없으므로 이것만은 절대적으로 사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을 일반적으로 '근본주의자들(Fundamentalists)'이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주장들이 기독교의 보편적 믿음 내용이라 생각하기 싶지만, 사실 누가 말했듯 이런 근본주의적 입장은 주로 "미국 (특히 미국 남부)에서 그리고 미국 선교사들의 영향을 받은 가난하고 교육수준이 낮은 나라들"에서만 서식하고 있을 뿐 서방 유럽 같은 데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기현상입니다. 종교적 제국주의의 잔재로 볼 수 있습니다. 힌국의 경우 종교적 식민지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과 같습니다. 미국에는 이런 근본주의자들의 숫자가, 어떻게 계산하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만, 대략 전체 기독교인들의 20 내지 40퍼센트를 차지한다고 보고 있고, 한국에는 정확한 통계가 없지만 절대다수의 개신교 기독교인들이 여기에 속한다 보아도 됩니다. 미국이나 한국 TV에 나오는 소위 '전자전도자들'은 거의 이런 근본주의자들이라 해서 틀릴 것이 없습니다. 여기서 약간 까다로운 문제 한가지를 말씀드리고 지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영어로 '신앙' 혹은 '믿음'을 뜻하는 말로 'faith' 라는 말과 'beliefs'라는 말이 있는데, 이 두 말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faith는 우리가 인간인 이상 어쩔 수 없이 느낄 수밖에 없는 인간으로서의 한계성을 깨닫고 이를 초극하려는 마음가짐이나 결의 같은 것이라 한다면, beliefs는 이런 faith를 우리의 문화적 사회적 환경과 지적 능력에 따라 나름대로 이해하고 그것을 표현한 일종의 특수 설명체계 내지 신념체계라 할 수 있습니다. 꽤 추상적인 말이 되었습니다만, 이런 구별은 상당히 중요합니다. faith를 우리말로 믿음 혹은 신앙이라 한다면 beliefs는 '믿고 있는 것들'이라 하면 어떨까요. 앞에서 말한 철수나 그의 형제들이 아버지에 대해 가지고 있는 절대적 사랑과 신뢰가 faith입니다. 그런 사랑과 신뢰를 자 기들 나름대로 해석하거나 설명해 놓은 것이 beliefs입니다. 따라서 철수와 그 형제들은 다 같이 아버지에 대 faith를 가지고 있지만 그들이 가진 beliefs는 각자의 나이나 기타 처지에 따라 다를 수 밖에 없고, 또 달라야 하는 것입니다. 어느 한 쪽의 특수 beliefs를 받아들여야 faith가 있고 그런 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faith가 없다고 하는 것은 faith와 beliefs의 차이를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억지 주장입니다. 위에 열거한 근본주의자들의 교리는 일종의 특수 beliefs입니다. 이런 특수 교리들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기독교인으로서의 믿음이나 신앙이 없는 것이라 주장하는 것은 억지라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저는 여기서 그런 교리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틀려먹었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말할 것도 없이 지난 2000년 가까이 이런 교리들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은 사람들, 흔들림이 없이 삶을 살아간 사람들이 무수히 많다고 하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입니다. 특히 한국의 경우 일제 시대 그 어려움에서 기독교 신앙은 많은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특수한 시대적 배경과 요구에서 형성된 이런 특수 교리들을 진리 자체라 여기고, 여건이 완전히 바뀐 오늘에도 이런 특수 교리들을 문자대로 붙들고 있어야 참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는데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R형, 오해하지 마십시오. 제가 근본주의 입장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고 해서 그대로 '자유주들'(Liberals)의 입장을 백퍼센트 옹호하려는 것도 물론 아닙니다. 근본주의자들도 자유주의자들도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려는 점에서는 대동소이합니다. 차이점이라면 근본주의자들이 성경을 문자대로 읽고 그것을 모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라면, 자유주의자들은 성경을 문자대로 읽고 그것을 모두 믿을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근본주의던 자유주의던 성경을 문자대로 읽어야 한다고 믿는 '문자의'(literalism)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섯 살짜리 철수에게는 '우리 아빠 최고'라고 하는 '믿음의 내용' 혹은 '신념체계(belief-system)'가 그의 성장과정에서 필요한 것입니다. 인류 전체의 정신발달사로 보거나 개개인의 신앙 성장사로 보아 초기 단계에서는 이런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철수가 머리가 커가고, 어른이 되었어도 끝까지 "우리 아빠 최고"를 문자적으로 믿고 살아간다면 '철수'라는 이름과는 달리 그야 말로 '철'이 덜 든 인간입니다 더구나 자기 누나나 형들이 "그래, 철수야, 우리 아빠 정말 최고야. 그러나 철수 네가 생각하는 대로 그렇게 문자적으로 최고는 아니야. 아빠가 훌륭하시다는 것은 그런 문자적 의미 이상인 거야"하고 일러주면, 그런 누나나 형들의 태도야말로 '신신학'에 물이 들어 가문의 전통을 배신하고 아빠를 모욕하는 처사라고 그들을 정죄합니다. 자기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 '근본적인 것'을 버릴 수 없다고 합니다. 동네방네 다니면서, 심지어 산넘고 물건너까지 가서, 자기 누나나 형들의 말은 우리 집안을 대표하는 정통적인 말이 아니니까 절대로 듣지 말라고 외칩니다. 철이 덜 든 정도가 아니라 아예 '철딱서니가 없는' 짓입니다. 우리도 이런 단계의 믿음에서 자라나 성숙한 인간, 장성한 사람으로서의 신앙생활을 영위하자는 것입니다. 아직 다섯 살 철수임을 자처하고 싶으면 그런대로 좋습니다. 그러나 우리로서는 평생을 그렇게 살 수가 없습니다. 태어나서 이렇게 살다가 죽는 것은 아무리 연령적으로 오래 산다 하드라도 정신연령 내지 종교연령(?)으로는 영아기를 벗어나지 못한 채 요절하고 마는 셈입니다. 그야 말로 비극적 종언입니다. "이런 비극적 종언을 고할 것인가 말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입니다.* [ 강오 : kangoh@koreawired.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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