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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번호 92번 등록 2000-04-30 11:40:55
글쓴이 보다청빈 글쓴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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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경축-강희남목사 주민증 제작★한경직씨
★경축-강희남목사 주민증 제작★한경직씨
보다청빈

  재야에서 통일운동을 주도해온 강희남(77, 전북 전주지 덕진구 인후동) 목사가 61년
5.16쿠데타 직후 찢어버린 주민등록증을 37년만에 다시 만들었다.
  김목사는 주민등록증을 찢은 이후 5,6공은 물론 문민정부도 군사정권의 연장이라는
판단에 따라 주민등록증 없이 지내다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5월말게 재발급받았다.
  92년 고 문익환목사와 함께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을 결성, 남측본부장을
맡았던 강목사는 "새 정부마저 재야단체를 탄압한다면 또 주민등록증을
찢어야지요}라고 말했다.
                                   (한국일보 1998년 6월 23일, 화요일)

* 강희남 목사는 1987년 장기간의 옥중 단식투쟁으로 유명.  평생 시골에서
목회했으며 외식은 일절 않고 물만 마시는 청빈파이다.


  전북 김제군 백구면 소재의 난산교회 강희남 목사가 1976년 신.구교 월요기도회에서
기도한 내용과 강희남 목사가 "공산주의를 이기는 길은 부정부패의 근원인
유신정권의 뿌리를 뽑는 길이다."라고 하자 이 내용이 긴급조치 9호 위반과
반공법 위반이라고 하며 구속하였다.  

강희남 목사는 "박정희 정부는 반란으로 정권을 찬탈하여 합법정부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지 않았다."라고 하며 신청을 거부하였다.  그는
일생을 농촌에서 목회하였다.  1977년 11월 5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0년 자격정지
7년의 선고를 받은 강희남 목사는 박정희의 죽음으로 복역중 석방되었다.(이신교 목사
저 '다시 써야할 한국기독교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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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kidokongbo.com/Second.cgi?N=20000422&Sec=Temp01

“20세기 거목이 남긴 足跡” 

특히 한목사가 생각하고 실천한 목회자상, `거짓이 없는 목회자', `언행일치
신행일치 표리상부의 사람으로서의 목회자', `사신대인(事神待人) 지기(持己)
접물(接物)에 있어서 일호의 거짓이 없는 목회자' 등은 그의 뒤를 따르는 모든
목회자들의 지침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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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4.23, 18:00
부활절 한경직목사 빈소의 표정 

○…“아무리 둘러봐도/당신 같은 사람은 하나도 없고/당신 같은 스승은 하나도
없고/당신같은 목자는 하나도 없는/이 텅 빈 세상이 너무 슬퍼서입니다”

이철신담임목사가 주일예배 때 고훈목사(시인·안산제일교회)의 조시를 낭독하자
영락교회 본당을 가득 메운 성도들은 여기저기서 눈물을 훔쳤다.

/최정욱 jwchoi at
kukminilbo.co.kr 


<img src="http://pbbs1.netsgo.com/okbbs/okbbs.dll/ddanji.ddanjiboardnn/-/a/203412/한경직전두환.jpg">
http://pbbs1.netsgo.com/okbbs/okbbs.dll/ddanji.ddanjiboardnn/-/a/203412/한경직전두환.jpg
광주학살 직후 한경직씨는 전두환을 "여호수아같은 지도자가 되달라..."고
하느님께 기도 했대며? 

<img src="http://kcm.co.kr/korchur/chpic/1961-1.gif">

http://kcm.co.kr/korchur/chpic/1961-1.gif
1961년 6월 정일권.김활란,최두선,한경직,등 민간 사절단이 미국에 건너가
5.16군사혁명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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