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6월 2일 자 해외논단에 실린 월든 벨로의 글입니다. ==================================== 칸군회의, 세계화 균열상 예고 멕시코의 휴양도시 칸쿤에서 열릴 세계무역기구 5차 각료회의가 앞으로 12주 남짓 남았다. 하지만 스위스 제네바에서 진행 중인 협상은 사실상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 칸쿤 회의는 9·11 동시테러 뒤 미국과 유럽연합이 협력을 통해 제 한적인 무역협상 의제를 성공적으로 도출했던 카타르 도하 회의처럼 되진 않 을 것이란 느낌이 점차 강해지고 있다. 현재의 상황은 농업부문 협상의 분열상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스튜어트 하빈 슨 농업협상위원장이 마련한 세부원칙 초안은 부모 잃은 고아다. 미국과 농산 물 수출국들 모임인 케언스그룹은 초안에서 제시된 관세 인하폭이 너무 작다 고 여기는 반면 유럽연합과 일본은 이것이 과도하다고 생각한다. 개발도상국들 은 이 초안이 상당한 규모의 관세 인하를 요구하는 데 우려하고 있으며, 주요 식량에 한해 낮은 관세 인하폭을 적용한 ‘전략품목’의 확대를 요구하고 있 다. 협상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는 미국과 유럽연합이 개도국들을 분열시키는 것도 부정적인 상황이다. 브라질·우루과이·타이 등 케언스그룹에 속한 개도국들 은 미국과 같은 편에 서서 유럽연합과 일본에 반대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더 유연한 우루과이라운드 방식에 따른 농업자유화 방안을 선호하는 인도 및 다 른 개도국들의 지지를 확보함으로써 반격을 가했다. 중요한 것은 칸쿤 회의 이 전에 농업협상의 세부원칙에 합의할 가능성이 매우 적다는 점이다. ‘무역관련 지적재산권협정(TRIPs)’의 공중보건 관련 논쟁에서도 미국 쪽에 서 아무런 양보가 없다. 미국은 에이즈·말라리아·결핵 등 3가지 질병 치료제 만 특허권이 완화되어야 한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혼란을 더하는 것은 수 파차이 세계무역기구 사무총장이 교착상태의 책임을 미국에서 브라질과 인도 로 확대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투자·경쟁정책·정부조달·무역촉진 등 논란 중인 ‘새 이슈’들과 관련해 유 럽연합은 이 부문의 협상 개시 결정을 농업자유화 협상과 분리시키려 하고 있 다. 부자 나라들은 이 분야 협상에 매우 신중한 개도국에 이것이 개도국을 위 한 것임을 납득시키는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은 4가지 분야 분리 협상을 제안했고 유럽연합은 겉으론 이에 동의했지만 여전히 동시 협상을 선호한다. 유럽연합은 또 본질적인 세부원칙에 관한 개도국들의 우려를 피해, 칸쿤에서 합의할 세부원칙을 회의 개최 횟수 등 절차상의 원칙으로 축소하기를 원한다. 이것이 협상의 본질에 먼저 합의하지 않고 협상을 시작하는, 백지수표를 얻어 내려는 시도라고 개도국들로부터 비판받은 것은 당연하다. 개도국들의 관심이 높은 두 가지 핵심 협상분야, 즉 ‘최빈국에 대한 특별하고 구별된 대우’와 ‘이행방안’에선 진전이 전혀 없었다. 아마 이런 이유로 무역기구 관리들은 협상 중인 사안들에 대한 합의를 담은 선 언이 아니라, 도하 회의 이후 여러 협상그룹이 진행해온 것을 짧게 보고하는, 이른바 ‘진행 보고서’ 구실을 할 ‘공동성명’를 내는 것을 논의하고 있다. 도하 회의와 같은 성과를 칸쿤에서 기대하는 것은 최근 미국과 유럽간 무역관 계 악화로 더욱 어려워졌다. 유럽연합은 무역기구가 규정 위반이라고 판정한 미국의 수출기업 세금지원제도와 관련해 올해 말까지 미국에 무역제재를 가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미국은 보복조처로 유럽연합의 유전자조작식품에 대한 사 실상의 수입금지 조처를 무역기구에 제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영국과 프 랑스·독일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놓고도 치열하게 다퉜다. 1999년 미국 시 애틀에서 열린 3차 각료회의를 결렬시킨 원인은 개도국의 반발과 대규모 거리 시위뿐만 아니라 농업·환경 등에 관한 미국과 유럽연합 사이의 풀리지 않은 갈등이었다. 지금 상황은 도하 각료회의 전보다 훨씬 더 어렵다. 제네바에서 협상이 중지되면서 시민 사회기구들은 9월 9~14일에 무역기구 각료 회의가 열리는 동안 칸쿤과 세계 각지에서 대규모 시위와 시민 불복종 운동을 벌이기 위한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5월 11~12일 멕시코시티 회의에서 미주자 유무역협정과 세계무역기구에 반대하는 비정부기구 대표들은 지구환경 파괴의 가속화와 세계적인 빈곤·불평등·성차별 등을 초래하는 자유무역 패러다임을 제도화하는 무역기구의 5차 각료회의를 저지하겠다고 선언했다. 세계 시민사회를 분열시킬 의도로 수파차이 사무총장은 몇몇 선도적 비정부기 구들을 초청해 ‘세계무역기구 비정부기구 자문위원회’를 구성했다. 참여 기 구들은 동료 기구들의 분노를 사게 될 것이다. 대결 분위기가 감돌고 몇년만 에 무역기구의 신뢰가 최저인 상태에서 칸쿤은 또다른 도하가 아닌 시애틀의 재판이 되어가고 있다. 월든벨로/ 필리핀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