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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번호 138번 등록 2000-10-13 19:43:39
글쓴이 해방의 투혼 글쓴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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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착취자들의 아셈회의에 강력한 노동자연대로 맞서자
 착취자들의 회담에 노동자계급의 강고한 투쟁과 국제연대로 맞서자!


1. 들어가며

아시아 유럽 정상회담(아셈)은 자본가정부 수장들이 '자유화와 시장개방',
'투자 무역 촉진' 등을 논의하는 공식테이블 뒤에서 노동자수탈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들을 검토하는 착취자들의 회동이다. 그들 모두의 공통의 이해 관계는 딱
하나, 노동자를 쥐어짜고 억누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 자본가들의 두목들은
노동자를 무한대로 쥐어짤 수 있고, 마음대로 정리해고를 할 수 있으며, 노동자들의
저항을 가차없이 짓밟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자유무역 확대의 핵심적인
전제조건으로 이미 상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은 '노동법 개악 저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반대', '한일, 한미투자협정 반대' 등 3대
요구를 내걸고 아셈회의 기간에 가능한 사업장들에서 파업을 전개할 것이며, 2만명을
서울로 집중시켜 강력한 시위투쟁을 전개하겠다고 선포했다. 또한 오래 전부터
'아셈반대 민중대회'를 준비해온 일부 노동단체들과 학생단체들은 시애틀,
워싱턴, 프라하에서의 반대 투쟁을 이어가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한편, 전농은 연내에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되면 농산물이 대거 수입되어 농민들이 모두 파탄할
것이라며 하반기에 대대적으로 싸우겠다는 결의를 밝혀 왔다.
이처럼 아셈은 여러 계급의 첨예한 관심사가 되고 있다. 세계화, 자유무역 확대를
통해 지배력을 강화하고자 하는 국내외 초국적 자본들, 급격한 시장개방으로 해외
거대자본이 몰려들어올 경우 도산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는 중소자본 및 농민들,
초국적 자본의 전지구적 노동착취 강화에 저항하고자 하는 노동자들 모두에게 아셈은
또 하나의 격돌의 장이다. 당연히 아셈을 바라보는 각 계급의 시각은 대단히 다르며,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자투사들은 아직까지 아셈을 둘러싸고 어떻게
계급적 이해가 충돌하고 있는지를 충분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아셈의
계급적 실체는 무엇이며, 아셈에 대한 각 계급의 태도는 어떠하며, 노동자계급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그리하여 남한에서 현재 전개하고 있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민주노조 사수', '고용안정
쟁취' 투쟁들과 아셈에 맞선 투쟁을 긴밀히 결합시키면서, 남한자본을 비롯한
세계 자본가들 모두에게 제대로 맞서 국제적인 계급적 단결을 밀어가야 한다.

2. '자본의 세계화' 운동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태도

아셈회의는 '자본의 세계화' 운동의 하나이다. 따라서, 그에 대한 구체적
대응을 얘기하기 전에 '자본의 세계화' 운동에 대해 일반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윤 증식을 위해서라면 지구 끝까지라도 달려가 노동자를 착취하려는
것은 언제나 변하지 않는 자본의 속성이다. 자본주의 초기부터 자본은 값싼 노동력과
원료, 넓은 시장을 찾아 세계로 뻗어나갔다. 그런데 현대 자본주의에 이르러서는
'자본의 세계화'는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놀랄만한 속도로,
어마어마한 규모로 진행되고 있다. 대우자동차를 GM이, 삼성자동차를 르노가 인수하는
것처럼 전세계에서 열손가락 안에 드는 초국적자본들이 해당 산업들을 완전히
독점해가고 있다. 극소수 초국적 자본, 예를 들면 마이크로소프트 등 200대 또는
500대 초국적기업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그런데 '자본의 세계화'는 오직 노동자 착취를 세계적으로 확장하고, 그
강도를 더욱 높이는 결과만을 낳을 뿐이다. 오직 노동자 해방 사회에 이르러서만
'세계화'는 진실로 노동자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자본의
부가 하늘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것과 함께 노동자들은 끝모를 낭떠러지로
떨어져간다. 세계 도처에서 나타나는 대량해고, 살인적 노동강도, 임금삭감과 체불,
그리고 자본가강도들의 전쟁에 따른 야만적 살육으로 노동자들의 고통스런 신음과
통곡소리는 더욱 처절해지며 높아져간다. 1998년 현재 하루 2달러 미만의 생계비로
간신히 연명하는 극빈층이 전세계 인구의 절반에 이르는 28억명이나 된다. 하지만
생존의 벼랑 끝에 내몰린 노동자들의 투쟁 또한 발전하며, 이 투쟁은 들불처럼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옮겨붙는다. 95년 프랑스 공공 총파업, 96-97년 남한 총파업,
남아공 노동자들의 2000년 5월 총파업, 최근 러시아 노동자들의 '노동법 개악
저지' 총파업, 올해 여름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남한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 시애틀과 워싱턴, 프라하, 호주를 거쳐 서울로 이어지고 있는 초국적 자본에
맞선 국제연대 투쟁의 물결을 보라! 그러나 이 물결은 더욱 의식적이고  계급적인
물결로 상승해야만 한다.
우선, 세계화와 자유무역의 확대는 자본간의 경쟁을 극도로 격화시키기에 모든 자본은
노동자들로부터 마지막 피 한방울까지 짜내려 한다. 그러므로 노동자들은 실업, 임금
인하, 노동강도 강화, 노동법 개악, 노조 무력화, 비정규직 등 불완전고용의 확대,
노동자간 분할의 심화 등 자본의 강화된 공격에 맞서 가열차게 투쟁해야 한다.
다음으로, 초국적 자본이 전지구를 자유자재로 돌아다니며 수탈을 강화하는 데 맞서
노동자의 국제적 연대투쟁을 강화해야 한다. 초국적 자본은 단기투기자금의 형태로 한
나라를 침범해 단물을 모조리 빨아먹고 철수함으로써 그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린다. 초국적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IMF는 '구제기금
지원'이라는 명목으로 모든 나라에서 노동자를 극한대로 쥐어짜낼 프로그램을
강요한다. 미국, 유럽, 일본과 같은 제국주의 국가의 군대들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든지 노동자혁명의 조짐이 보이면 언제든지 출동할 수 있는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다. 그들은 수천만명을 죽음으로 내모는 전쟁을 일으켜 국내 노동자의
저항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야비한 짓도 서슴지 않는다. 노동자는 자신의 세계적 힘을
모두 동원해서 이들과 맞서야 한다. 유럽 르노 자동차 노동자들의 공동파업처럼,
97년과 올해 남한 노동자 파업에 대한 국제 노동자계급의 연대처럼, 나토의
유고폭격에 대한 전세계적 저항처럼, 시애틀과 프라하 등에서 그 위용을 드러낸 세계
자본 기구에 맞선 투쟁처럼 노동자계급의 국제적 단결투쟁을 끊임없이 발전시켜야
하며, 이것을 더욱 계급의식적이고 더욱 견고하게 조직된 형태로 끌어올려야 한다.
또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전세계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단결을 통한 노동해방
사회 건설을 뚜렷하게 지향하는 것이다. "자본의 세계화"가 진척된다는
것은 곧 자동차, 컴퓨터, 선박, 가전제품 등 많은 제품생산물들이 더 이상 일국
노동자들이 아니라 전세계 노동자들의 협동노동을 통해 생산되고 있음을 뜻한다. 이제
생산물은 "내가 만들었다"고 말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
노동자들이 만들었다"고 말할 수도 없을 정도가 되고 있다. 컴퓨터 하나만
보더라도 대만, 일본 등 여러 나라에서 생산한 각종 부품들을 사용하는 상황에서
"메이드 인 코리아"란 표시는 최종 생산지를 나타낼 뿐이다. 이처럼 생산은
세계적 차원에서 노동자들의 협동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지만, 오직 한줌의
자본가들만이 생산 결과물을 독식한다. 그 결과 사회의 거의 대부분의 공장, 기계,
건물, 통신수단, 유통수단이 그들의 배 속으로 처넣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일국적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전세계적 차원에서 "생산의 사회화와 자본주의적
소유간의 모순"이 더욱 격화되고 있으며, 전세계 노동자들의 해방투쟁을 통해
생산과 분배를 의식적으로 계획하고 통제하는 새로운 노동자공동체 사회를 열어젖힐
수 있는 물질적 조건이 그만큼 더 성숙해지고 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생각해보라. 자동차산업에서 포드, 지엠, 다임러크라이슬러 등 대여섯 개의 자본이
세계의 모든 자동차들을 생산하는 상황이라면 전세계 노동자 혁명을 성공시켰을 때
세계적 차원의 사회화, 계획화는 대단히 쉬울 것이다. 수만이나 수십만 개의 자본들로
분산되어 난립하는 상황보다 대여섯 개의 거대 자본으로 재편된 상황이 사회화와
계획화에는 수백배 더 유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자본의 세계화'는
착취의 세계적 심화라는 일그러진 얼굴을 한 쪽면으로 갖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가들이 절대 원하지 않지만 피할 수는 없는 노동해방 사회를 위한
객관적 조건을 더욱 성숙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계획과 사회적 통제를
요청하는 발전하는 세계적 생산력은 개별 자본가들, 개별 자본주의 나라들의 경쟁
체제와 격렬하게 대립한다. 엄청난 생산물이 과잉 생산으로 낭비되며, 세계 경제는
수시로 위기와 침체의 늪에 빨려들어간다. 
심지어는 WTO, IMF 고위 간부들조차 미친듯이 날뛰는 자본의 운동을
'통제'하고 '규제'해야 한다고 얘기하지만,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해서는 침묵해버린다. 자본가들이 스스로를 '통제',
'규제'하겠다고 하는 것은 마치 강도가 자기 손에 수갑을 채우겠다는 것과
다를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어떻게 사회화, 계획화를 달성할 수
있는가? 무정부적 경쟁과 과잉생산, 공황, 청룡열차처럼 솟구쳐올랐다가 아래로
곤두박칠치는 경제의 끝없는 변동은 근본적으로는 한줌 자본가들이 공장, 기계와 같은
생산수단을 사적으로 소유하여 사회적 필요가 아니라 자신의 이윤을 위해 생산한다는
점 때문에 발생한다. 따라서,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철폐하고 연합한 노동자계급이
생산수단을 장악하여 생산과 분배를 의식적으로 계획하고 통제하는 것만이 생산의
세계화에 조응하지 못함으로써 더욱 격화되고 있는 '무정부성'을 뿌리뽑을
수 있는 궁극적이고 가장 확실한 해결책이다.

3. 세계화를 둘러싸고 충돌하는 세 계급의 입장

'세계화 반대' 슬로건은 현재 자본가들, 소생산자들, 노동자들이 모두
내걸고 있다. 세 계급이 동일한 요구를 내걸고 공동의 전선을 형성하는 모습이 우리
눈 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노동자계급이 자신들을 착취하는
자본가계급 및 동요하는 중간계급과 공동의 요구를 내걸고 싸우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라는 문제를 우리는 심각하게 검토해야 한다. 이는 갈수록 더욱 중요해지는
'세계화' 문제에서 노동자계급이 자신의 독자적 입장을 분명하게 채택하지
못할 경우 자본에 종속당하거나 중간계급의 동요에 휩쓸릴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1) 자본이 주도하는 '세계화 반대 운동'

자본의 독점이 심화되는 것과 함께 자본 사이의 경쟁은 더욱 격화된다. 초국적자본이
수십배로 덩치를 키우며 거대 공룡들이 되어갈수록 이 공룡들간의 혈투는 더욱 더
격렬하게 된다. 왜 이렇게 자본간 경쟁이 첨예화될 수밖에 없는가? 자본이 노동자들을
가혹하게 쥐어짜면서 생산하는 것에 비해 노동자들에게 임금으로 주는 것은 형편없이
작기에 생산과 소비간의 격차는 커질 수밖에 없으며, 이로부터 과잉생산이 발생한다.
제한된 시장에 상품들이 과잉으로 쏟아져나오기 때문에 결국엔 어느 자본인가는
쓰러져야만 한다. 일국적 차원은 물론이고 전세계적 차원에서 현대, 삼성, GM, 포드
등 대자본들이 서로 정글의 야수들처럼 싸우면서 차례차례 하나씩 쓰러진다. 가령
대우가 쓰러졌고, 현대도 언젠가 쓰러질 것이다. 이처럼 자본간의 필사적 경쟁에서
어떤 자본은 살아남고 어떤 자본은 도태된다는 것은 '적자생존의
자연법칙'처럼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필연적인 법칙이다. 그런데
'세계화'는 이런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법칙을 더욱 냉혹하게 관철시킨다.
생산의 세계적 연관이 성장하는 것은 거스를 수 없으므로 어떤 자본도
'세계화'를 근본적으로 부정할 수는 없다. 자본가들은 세계화를 거부하고
일국 폐쇄경제로 후퇴하는 방식으로가 아니라 오직 세계화에 능동적으로 동참하고
경쟁력을 키우는 것을 통해서만 제대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점을 잘 안다. 하지만
첨예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본은 '세계화 반대'를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고 또 실제 이용하고 있다. 바로 이로부터 모든 자본은 다른 나라에는 시장
개방을 요구하면서 자기 나라 시장은 최대한 개방하지 않으려 하는 이중적 태도를
취하게 된다. 여기에서 핵심은 자본가들이 자국 노동자들을 착취할 수 있는 권리를
절대 다른 나라 자본가들에게 뺏기지 않으려 하며, 반면 타국 노동자들을 착취할 수
있는 권리는 최대한 많이 향유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시장개방, 자유무역, 세계화를
둘러싼 각국 자본간의 첨예한 대립은 누가 노동자를 착취할 권리를 행사할 것인가를
둘러싼 강도들간의 대립이다. '세계화 반대' 슬로건에는 이런 자본의
이해가 도사리고 있다.
모두가 잘 알고 있는 비슷한 예를 들어 보자. 올해 정갑득 관료집단이 추진한
'해외매각 반대' 자동차 4사 파업은 현대 자동차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이었다. 현대 자본은 자금 지원, 고무와 격려 등 여러 방식으로 이 파업을 적극
지지했다. 지금 뜨겁게 논란이 되고 있는 현자 노조 비자금 사건은 이 점을 분명히
입증시켜 주는 구체적 물증이다. 세계 1, 2위의 GM, 포드가 대우자동차를 인수할 경우
현대 자동차 자본은 경쟁에서 패배하고 몰락할 위험이 컸기 때문에 '해외매각
반대', 즉 '세계화 반대' 캠페인을 막후에서 조종했던 것이다. 그리고
현대 계열사인 한영기업은 멕시코 자유무역지대에 진출해 노동자들을 극한대로
착취하고, 노동자투사들을 해고하여 국제적인 비난을 받았다. 이처럼 자본은 전세계
노동자들을 쥐어짜기 위해 '세계화'를 맹렬히 추진하면서도 자국
노동자들을 착취할 권리를 독점하기 위해 '세계화 반대'('해외매각
반대')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 착취의 권리를 둘러싼 자본가 강도들간의 경쟁에서 노동자들이 자국 강도 혹은
자신을 고용하고 있는 강도의 손을 들어주는 것은 파멸적인 것이다. 이 점은
"회사살리기"에서 처음으로 분명하게 드러났다. 자본은 임금을 줄이고
노동강도를 높이고 대량으로 노동자들을 짜르는 방식으로 생산비를 절감하여 경쟁에서
살아남으려 한다. 따라서 노동자들이 "회사살리기"를 받아들인다면 이와
같은 자본의 가혹한 노동자착취를 순순히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회사살리기"란 노동조합이 "노동자 쥐어짜기"에 자발적으로
동참하는 것으로 귀착된다. IMF 시기에는 "회사살리기의 확대판"인
"나라살리기" 운동이 전개됐다. 자본가정부는 남한의 국가신인도(이것은 한
나라 총자본이 그 나라 노동자들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쥐어짤 수 있는가를 측정하는
잣대이다)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정리해고제, 변형근로제, 근로자파견제, 노사정
대타협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의 개량적 지도부들이
"나라살리기" 운동에 직간접적으로 동참한 결과, 전국 곳곳에서 노동자들은
발가벗긴채 수술대 위에서 자신을 난도질할 칼을 기다리는 참혹한 상황을 맞이해야
했다. "회사살리기"와 "나라살리기"의 실체가 불을 보듯 훤하게
드러났기에 노골적으로 그 주장을 고수하는 세력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게 됐지만, 그
주장은 계속 다른 옷을 걸치면서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다.
그 대표적 형태는 앞에서 얘기한 '해외매각 반대'였다. 그런데, 이것 또한
정갑득 관료집단이 노사화해주의에 입각해 하청을 정규직의 안전판으로 사고하며
받아들이고, 식당 아주머니와 현대정공, 지역 중소사업장 투쟁들을 철저히 외면하는
것으로 이어지면서 그 한계가 폭로되었다. 지금 민주노총, 금속연맹의 개량적
지도부가 주도적으로 제기하고 있는 '세계화 반대' 슬로건은 이미 파탄난
'회사살리기', '나라살리기', '해외매각 반대'의
연장선에 있으며, 미국, 일본, 유럽의 거대 초국적 자본들의 유입을 막고 남한의
자본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를 결론으로 공유하고 있다. 이처럼 "자국 자본
살리기"라는 관점에서 전개하는 "세계화 반대" 캠페인은 다른
제국주의자본들에 대해 격렬하게 분노를 표출하고 있을지라도, 남한 자본의 남한
노동자에 대한 착취에는 눈을 감아버리거나 적어도 간과해버리며 세계 초국적 자본에
맞선 투쟁과 남한 자본에 맞선 투쟁을 분리시켜버리는다는 치명적 한계를 안고 있다.
그리하여 "나라살리기"와 같은 국가적 차원의 "회사살리기",
"자본과의 협조정책"으로 빨려들며, 노동자들을 더욱 강화된 착취사슬에
묶어버린다. 이 점은 민주노총 개량적 지도부를 포함해 현재 남한에서 "세계화
반대" 캠페인을 주도하고 있는 대부분의 세력들이 남한 자본과 정부에 맞선 남한
노동자들의 치열한 투쟁들을 계급적으로 연결시키고, 국제 노동자계급의 연대투쟁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의식적 노력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데서 우리는 그 약점을 매일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다.
국제적 예로는 미국 노총(AFL-CIO)이 시애틀 전투 때 전개한 '무역과 노동기준
연계' 조항 지지 캠페인을 들 수 있다. '무역과 노동기준 연계'
조항은 국제경쟁에서 더 큰 우위에 서고자 하는 미국 독점자본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주장이었다. 클린턴 행정부와 미국 자본가들은 위 조항을 WTO체제에 포함시키자고
주장했는데, 그들은 "제3세계 노동자들의 인권을 위해서"라는 그럴듯한
핑계를 댔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이 관심을 가진 것은 오직 하나, 어떻게 하면 제3
세계 자본가들이 미국 시장을 공략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가뿐이었다. 한국에 진출한
AMK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미국 자본은 전세계의 수많은 노동자들을 하루아침에 차가운
길거리로 내팽개쳐버리고, 비정규직의 확대와 연봉제, 성과급제를 통한 노동자들에
대한 분할통제, 노조 말살을 주도해왔다. 미국 자본은 매춘업을 독점하기 위해 다른
포주들에게 "창녀의 인권을 보장하지 않는 당신들은 매춘업을 포기하라"고
강요하는 악질 포주나 다를 바 없다. 그런데, 미국 노총의 관료들은 포주들간의
경쟁에서 미국 포주들이 이길 수 있도록 지원함으로써 자신들의 안정적 지위를
유지하고자 했다. 그들은 시애틀 전투에서도 노동자투사들의 투쟁열망을 억누름으로써
자본의 하수인이라는 실체를 만천하에 드러냈다.
결국, 자국 자본에 대한 결연한 투쟁을 회피하는 노조 개량적 지도자들의
'세계화 반대운동'은 "회사살리기", "나라살리기"의
확대판으로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손발을 묶고 자본의 야만적 착취를 도우며 타국
노동자들과 경쟁하면서 서로 총부리를 겨누도록 만든다. '자본의 세계화'를
전세계 자본의 전세계 노동자에 대한 착취의 강화로 이해하며 이런 착취를 끝장내야
한다는 굳은 결의를 가진 노동자투사라면 무엇보다도 자국 자본과 그 정부에 맞선
비타협적 투쟁의 깃발을 높이 드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전세계 자본이 전세계
노동자들에게 "국제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적어도 쓰러지지 않기 위해 죽도록
일해야 한다"고 강요할 때 투쟁의 총구를 자국 자본에게 겨냥하면서 노동자의
이익을 확고하게 수호하는 모범을 전세계 노동자들 앞에 당당하게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서 전세계 노동자계급의 단결 투쟁을 선도하여 자본주의 세계질서를 제거해야
한다. 그것만이 광란적인 자본의 세계적 착취를 끝장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자본이 주도하는 '세계화 반대운동', '해외매각 반대운동'에
단지 노조 관료들만 포섭되는 것은 아니다. 전투성이 있을지라도, 노동자생존권
사수를 강조하더라도 노동자해방의 관점을 확고하게 견지하지 못할 경우 얼마든지
자본이 주도하는 운동에 포섭될 수 있다. 노동자 착취를 강화하는 것은 새로운 기계,
신기술, 자동화, 정보통신 혁명, 독점, 세계화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의 자본주의적
이용이라는 것을 전혀 파악하지 못할 때 자본의 운동에 포섭당하게 된다.

"초국적 자본은 노동자의 단결된 힘으로 가해지는 정치적 압박을 자유롭게
피해가며 마음대로 국경을 넘나들 수 있게 된다. 우리는 NAFTA에서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노동조건 개선의 요구를 묵살하며 좀 더 싼 노동력을 찾아 작업장을
폐쇄하고, 노동조합을 무력화시켰던 초국적자본의 횡포를 쉽게 발견할 수 있지
않았던가?"(투자협정/WTO 반대 국민행동 류미경, [세계화를 확장시키는 또
하나의 기구, ASEM])

여기에서는 국외 독점자본(예를 들어 미,일,유럽 자본)이 국내 독점자본(남한
자본)보다 더 노동자를 강하게, 그리고 자유롭게 착취할 것이기 때문에 "국외
독점자본에 반대"해야 한다는 논리가 펼쳐지고 있다. 그런데 과연, 국외
독점자본만 "노동자들의 정치적 압박을 자유롭게 피해가고" 국내 자본은
그렇지 못하는가? 과연, 국외 독점자본만 "임금인상, 노동조건 요구를 묵살하며
더 싼 노동력을 찾아 작업장을 폐쇄하고 노조를 무력화하며" 국내 자본은 그렇지
않은가? 국내 자본이 국외 독점자본에 비해 덜 착취하고 덜 탄압한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다. 마마, 통인가게, 이랜드, 동방제약 등 수많은 사업장에서 남한 자본은
노조를 깨기 위해서라면 부도처리, 직장폐쇄도 서슴지 않는다. 따라서 국외
독점자본이 국내 독점자본보다 더 착취한다는 논리로 "세계화 반대",
"해외매각 반대"를 주장하는 것은 전혀 그럴 의도가 없었다 하더라도 국내
독점자본과 국외 독점자본간의 경쟁에서 국내 독점자본에 손을 들어주는 것으로
귀결된다. 그리하여 해외 자본의 착취와 수탈로부터는 벗어날 수 있을지 몰라도
국내자본에게 더 강한 착취와 수탈을 허용하게 된다. 결국 "세계화 반대",
"해외매각 반대"는 자본과 노동간의 대립전선을 흐릿하게 만들면서, 자국
자본가에 의한 노동자 착취를 돕게 되는 것이다.
노동자계급은 다른 나라의 강도들에게 유리한가 아니면 우리 나라의 강도들에게
유리한가, 또는 큰 강도에게 유리한가 아니면 작은 강도에게 유리한가를 둘러싼
강도들간의 전쟁에서 국내 강도들의 손을 들어주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선한 계급적
의도에서 이런 질문이 나올 수 있다. 예를 들어 투자협정이 체결되면 남한 정부는
'현지 생산품 사용 의무'에 따라 남한의 자동차하청 업체에서 생산한
자동차부품들을 일정 비율로 사용하도록 외국인 투자자에게 강제할 수 없게 된다.
이에 따라 세계화, 자유무역 확대는 경쟁력이 약한 국내 자본을 도태시킬 가능성이
많다. 그리고 자본이 도산할 경우 거기에 고용된 노동자들에게 심각한 고용불안이
닥쳐올 것은 틀림없다. 그렇다면, 세계화와 자유무역 확대에 대해 당연히 반대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절대 그렇지 않다. 우선 타국 자본의
주문을 받아 부품을 생산하는 국내 부품산업의 문제가 있다. 만일 남한이 '국내
부품 사용 의무'를 강요한다면 해외 자본 또한 동일한 권리를 행사할 것이다. 이
경우 해외에서 주문을 받아 생산하던 국내 부품 산업들은 도산한다. 그리고 결국
고용불안이 닥쳐올 것이다.
임금노예 제도를 철폐한다는 분명한 자각을 갖지 못하는 노예는 노예주인들간의
피튀기는 경쟁에서 자기 노예주인의 승리를 돕기 위해 노예주인의 총알받이가 되고
다른 사업장, 다른 나라의 임금노예들에게 경쟁의 총부리를 겨눈다. 노예주인들간의
경쟁이 불꽃튀면 불꽃튈수록 노예들간의 경쟁도 격화되며, 장시간 노동과 살인적
노동강도, 보잘것없는 임금에 노예들은 생지옥으로 떨어진다. 노예들이 자기 노예주를
살리고 그럼으로써 노예의 삶을 연장하기 위해 '세계화, 자유무역 반대',
'해외매각 반대'를 주장할 경우 노동자는 자본가들의 공격에 무참히
희생당할 수밖에 없다. 임금노예들에게 유일한 출구는 기업과 지역, 산업과 국경의
장벽을 모두 뛰어넘어 하나의 계급으로 굳게 단결하여 임금노예제도를 폐지하기 위해
혁명적으로 투쟁하는 것밖에 없다. 이것만이 자본이 강요하는 경쟁과 분할을 뚫고
일부 노동자들의 협소한 이해만이 아니라 전체 노동자들의 공동의 이해를 실현할 수
있다.

2) 소생산자의 이익을 옹호하는 '세계화 반대운동'과 무정부주의 운동

농민과 같은 소생산자는 '세계화'를 통해 값싼 농산물이 대거 들어올 경우
파산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세계화'에 반대한다. 남한의 전농만이 아니라
프랑스, 멕시코, 브라질 등 전세계의 농민들이 모두 이와 비슷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소생산자가 '세계화'에 반대하는 것은 소규모 소유를 계속 유지하고, 더
나아가서는 소생산자들 자신이 자본가로 성장할 기회를 노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 소생산자의 '세계화 반대' 주장은 '독점 반대 및 규제',
'재벌 해체'와 같은 맥락에 있다. 그들은 거대한 생산력을 한줌 자본가들의
손에서 전체 노동자들의 손으로 넘겨 사회적이고 계획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생산력을 잘게 쪼개 자신들 소생산자들 손으로 넘기기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나날이 성장하는 사회적 생산력은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를 철폐하고 노동해방 사회의 공동소유를 요구한다는 점을 결코 받아들이지 않고,
소생산자들의 사적 소유를 유지하고 영구화하려 한다는 점에서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리는" 반동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생산력이 발전하고 점차 더 사회적 성격을 띠게 되는 것은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역사적 필연이다. 일국적 차원에서 소규모 자본들이 거대 독점자본으로
대체되고, 더 나아가 세계적으로 초국적 자본의 지배력이 성장하는 것은 불가피한
것이다. 노동자계급은 비록 자본주의적으로 일그러진 형태이지만 생산력 발전의
표현인 이런 독점화, 자본의 세계적 집중 자체에 반대해서는 안되며, 과거의 소생산자
시대로 되돌아가자고 떼를 쓰는 소생산자들의 '세계화 반대' 캠페인에 결코
동조해서도 안 된다. 대신 노동자계급은 전세계 노동자의 공동노동으로 쌓아올린
거대한 생산력의 성과가 한줌 자본가들에게만 돌아가는 것, 그리고 노동자들을 더
가혹한 강제노동으로 내모는 데 사용되는 것을 단호히 반대해야 한다. 그리고 거대한
생산력을 그것을 쌓아올린 전체 노동자들 자신의 손에 되돌려서 노동자가 더 적게
일하고, 더 풍요롭게 살 수 있는 수단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분명히 주장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대자본의 공세에 밀려 도산하고 있는 농민들의 고통을 외면할
것인가?"라고 얘기할 수도 있다. 그렇다. 농민들은 남한 독점자본만이 아니라
세계 초국적 자본들과의 경쟁에서도 패배하여 몰락학ㅎ 있다. 그러나 동시에 농민들은
소수의 자본가들, 부농들과 다수의 반(半)노동자들, 농업노동자들로 분화되어 나간다.
노동자투사들은 '사적 소유'를 유지하고 그것을 강화하려는 보수적인
농민들의 요구를 반영하는 '수입개방 반대' 캠페인에 결코 동조해서는 안
된다. 대신 우리는 가난한 하층 농민들에게 다음과 같이 얘기해야 한다:
"당신들은 결국 우리와 같은 무산 노동자로 전락할 것이다. 이것은 불가피하다.
당신들은 수입개방과 관계없이 부유한 농민들, 농업자본과의 경쟁에서 패배하여 점차
노동자로 전락할 것이다. 따라서, '사적 소유'를 유지하고 강화하려는 헛된
꿈을 버리고 사적 소유를 철폐하려는 무산자의 투쟁대열에 동참하라. 당신들이 그렇게
한다면, 더 이상 부유한 자들과의 경쟁에서 도태될 위험성이 없으며, 모든
사회구성원들이 평등하고 안정적인 삶을 누리는 노동해방 사회의 기쁨을 만끽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들에겐 영원한 파멸과 추락, 다가오는 몰락에 대한
공포만이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자본의 세계화' 과정에서 몰락하는 다양한 부류의 소생산자들의
처지를 반영하여 무정부주의 운동이 나타나고 있다. 게다가 초국적 자본으로부터
전세계 노동자들이 수탈받고 있고 그에 대한 자생적 저항투쟁들이 터져나오고 있지만,
아직 모든 문제에서 노동자계급의 관점을 일관되게 제시하면서 일국 및 국제투쟁을
진두지휘할 수 있는 강위력한 노동해방 혁명세력이 없기 때문에 자본주의에 대한
즉자적 반감만을 표현하고 있을 뿐인 무정부주의 운동이 더욱 번성하고 있다.
모든 것을 미래의 대안이 아니라 단순히 '세계화 반대' 수준에 묶어두는
무정부주의 운동의 계급적 뿌리는 노동자계급이 아니라 소소유자에 있다. 무정부주의
운동은 경쟁에서 도태됨에 따라 자본주의에 대한 거부감을 갖지만, 노동해방 사회로의
이행에 대한 투철한 이해가 없으며, 그 이행을 밀어갈 주체는 오직 노동자계급임을
분명히 하지도 못한다. 이들은 세계화 "반대", 신자유주의
"반대", 구조조정 "반대", 은행 "반대", 학교
"반대", 국가 "반대" 등 모든 것에 대해 즉자적으로 반대할
뿐이다. 이처럼 새로운 사회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채 단순히 기존의 것에 대한
거부감만을 늘어놓는 이들은 영원한 아웃사이더는 될 수 있어도 절대 사회와 역사의
중심이 될 수 없다. 이들은 '세계화 반대'의 깃발을 들고 모든
국제기구들을 때려부수려 할 뿐, 전세계적으로 어떻게 노동해방 사회의 물질적 조건이
성숙해지고 있는가를 보지 못하며, 어떻게 전세계 노동자계급을 자본주의를 철폐하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혁명적 계급으로 조직할 것인가를 전혀 고민하지 못한다.
무정부주의 운동은 그 정치적 내용에 걸맞게 어떠한 조직적 운동도 반대한다. 지금
세계화반대투쟁에서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신사회운동'이 그런 특질을
잘 보여준다. 이들은 유럽 노동자계급이 오랫동안 침체상태에 빠져있는 것을 보고
노동자계급 운동에 회의를 느끼며 학생운동, 환경운동, 소수 피억압자 운동 등 각종
비노동계급 부문운동에서 대안을 찾았다. 하지만 이들이 붙잡은
'신사회운동'은 세계 자본에 맞선 투쟁에서 단 한번도 일관된 혁명성과
조직성, 투쟁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실패에 실패를 거듭해왔다. 이들은 질식할듯한
관료들의 통제와 대중의 수동성을 거부한다는 건강한 문제의식에서
"직접행동", 즉 "아래로부터의 대중행동"이나
"자치"를 강조하지만 정작 이런 행동들을 더욱 강하게 추동하며 서로
끈끈하게 연결시키고 응집시켜내며, 뚜렷한 정치적 방향을 제시하기 위한 규율잡힌
조직적 행동을 거부한다. 따라서 이들이 펼치는 운동이란 산만하고 파편적이고 왜소할
수밖에 없다. 이들은 민주노총, 산별연맹의 관료적 지도부에 신물을 느끼면서 모든
지도를 거부해버릴 뿐, 아래로부터의 대중행동과 올바른 지도를 결합시켜
자본주의체제를 혁명적으로 분쇄하는 조직적 투쟁대오를 건설하는 데로는 결코
나아가려 하지 않는다.

이처럼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운동, 소생산자의 반동적 이해를 대변하는 운동,
무정부주의 운동, 그리고 노동조합주의 운동이 뒤죽박죽으로 섞여 있는 '세계화
반대' 운동은 뚜렷한 지향과 대안이 없고, 구심이 없다. 그 결과 자본가들은
'세계화 반대' 운동에 대해 다음과 같이 냉소적으로 비웃는다: "NGO의
주장은 범세계적인 신자유주의 물결에 대한 반성이긴 하지만 아직 반대운동 자체가
뚜렷한 방향성이나 정체성을 정립하지는 못한 것같다"(체코 프라하 시위에 대한
전철환 한국은행 총재의 말) 따라서 이런 운동은 반짝 타올랐다가 쉽게 사그라들
수밖에 없다. 자본의 국제행사가 있을 때만 활활 타올랐다 행사가 끝나자마자 차갑게
식어버리는 캠페인성 운동이 바로 현재 전개되고 있는 세계화반대 운동이다. 이런
세계화반대 운동으로는 절대로 착취와 수탈에 맞선 전세계 노동계급의 완강한
투쟁들을 조직할 수 없으며, 이 투쟁들을 자본주의 체제를 절멸시키는 노동해방
혁명으로 밀어가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다. 이것은 노동자들이, 그리고 소생산자들과
중소자본가들 및 약소국 자본가들이 몇몇 초거대 자본에 의해 수탈당하고 있다는
점만을 잠깐 상기시켜줄 뿐, 세계화를 둘러싼 각 계급간의 대립관계를 투명하게
보여주지 못하고, 노동자들에게 노동해방이라는 투쟁의 궁극적 목표와 전망을
제시해주지도 못하며, 국제 노동자계급의 단결이라는 위대한 기치를 현실화시키지도
못한다. 이런 세계화반대 운동 앞에 놓인 운명은 "동요",
"좌충우돌", "오락가락", "광란의 절규와 한없는
체념", 그리고 막강한 자본의 힘 앞에 굴복하는 것일 뿐이다.

3) 선한 의도를 담고 있지만 한계는 분명한 노동자들의 '세계화 반대'

노동자들이 세계화 반대를 주장하는 것은 자본의 전지구적 착취 강화에 반대한다는
선한 의도를 담고 있다. 노동자들은 자국 자본이 타국 자본보다 더 유리한 위치에
서서 자신들을 착취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세계화 반대'를 주장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리고 몸뚱아리밖에 가진 것이 없는 노동자들은 소생산자들과 달리
자신의 사적 소유를 유지하기 위해 '세계화 반대'를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노동자들은 "정리해고하지 말라", "비정규직을 늘리지 말라",
"임금을 깍지 말라", "연봉제를 도입하지 말라",
"노동조합을 탄압하지 말라", "노동자들의 사회복지를 축소시키지
말라"는 매우 올바른 의도를 갖고 "세계화 반대"를 주장하고 있다.
우리는 노동자들의 이런 정직한 의도에 대해서는 한치도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세계화 반대 주장은 노동자 착취 강화에 반대한다는 선한 의도를 결코 제대로
대변할 수 없다는 점을 힘주어 얘기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세계화 반대 주장은
오히려 노동자 착취강화 반대라는 노동자들의 투쟁요구를 흐리며, 노동자들의 이해를
자본 및 소생산자의 이해와 뒤섞어버리며, 노동자해방으로 나아가는 것을
가로막는다고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왜 우리는 '세계화 반대' 슬로건에
이의를 제기할 수밖에 없는가? 
만약 세계화 반대 주장을 일관되게 밀어나가려면 자본의 해외진출을 모두 거부해야
하는데, 타국 자본이 남한에 들어오는 것에 대해서만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
삼성과 같은 남한 자본이 해외로 나가는 것 또한 반대해야 하며, 이미 남한에 들어와
있는 해외자본들이 철수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하지만 현대, 삼성 같은 남한 자본이
해외에서 철수할 때, 그리고 한국 게이츠, 델파이, 볼보 코리아, 오트론 등 해외
자본이 남한에서 철수할 때 심각한 고용불안이 발생할 것임은 틀림없다. '세계화
반대' 주장은 이 점에서 심각한 약점을 드러낸다.
그리고 지금 하나의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 여러 나라에서 부품을 조달하는 방식으로
전세계적으로 긴밀한 연관을 맺고 생산이 이루어지는데 만약 세계화 반대를 일관되게
밀어붙이려면 이런 생산의 세계적 연관까지 거부하면서 북한과 같은 일국 폐쇄 경제로
가야 한다. 그런데 일국 폐쇄 경제로 후퇴할 때 생산력은 지금과 같은 국제적
생산력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대폭 후퇴할 것이며, 세계 30억 노동자들 중 최소한
몇억 이상의 노동자들은 일거리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은
몇십년 전으로 후퇴할 것이며, 풍요로운 삶의 보편화가 아니라 빈곤의 보편화가
나타날 것이다. 세계화 반대를 주장하는 평범하고 정직한 노동자대중들이 이와 같은
'과거로의 후퇴'를 의식적으로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세계화 반대 논리를
끝까지 관철시킨다면 '환경오염을 이유로 현대문명, 산업생산을 거부하고
자연으로 돌아가자'고 외치는 자연주의자와 마찬가지로 역사의 물결을 거슬러
오르자는 반동적 결론만이 나온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생산의 세계적
연관을 거부하고 일국 폐쇄경제로 가는 것이 아니라, 생산의 세계적 연관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되 이것이 자본주의적 방식으로, 즉 극심한 노동자착취를
동반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에 대해 반대해야 한다. 그리하여 생산의 세계화의
결과가 노동자계급 자신의 해방과 풍요, 안정에 도움이 되도록 만드는 노동해방
혁명으로 전진해야 한다. 그것만이 생산력의 발전을 가로막지 않으면서도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온전히 실현하는 유일한 길이다. 노동자계급의 해방, 그것은
사회를 앞으로 전진시킴으로써 달성되는 것이며, 바로 이런 의미에서 노동자계급은
"미래의 계급", "혁명의 계급"이다. 세계화 반대를 주장하는
노동자들이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진실한 의도도 이런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들의
진실한 의도를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세계화 반대'라는
추상적이고 몰계급적인(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자본가나 소생산자의) 슬로건이 아니라,
'정리해고 반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노동자계급의
요구를 분명히 내걸어야 한다. 노동자계급은 '세계화 반대'라는 다른
계급의 슬로건을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노동자계급이 세계화를 둘러싼
치열한 계급투쟁에서 다른 계급에게 휘둘리지 않으려면 무조건 자기 계급의 독자적인
요구, 독립적인 깃발을 들어야 한다.
노동자계급은 자본주의적 세계화를 거부하고 노동자계급적 세계화를 실현해야 한다.
그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WTO나 아셈과 같은 자본가 기구들에 '노동, 복지,
인권을 위한 세계화'를 호소하면 되는가? 금융투기자본에 세금을 부과하면
되는가? 제3세계의 부채를 조금 탕감해주면 가능한가? 이상적 공동체를 자본주의 한쪽
귀퉁이에 건설하고 이것을 점차 확대해가면 되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자본가들이
기계, 공장, 건물을 독차지하여 생산과정에서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것을 철폐하지
않고 아무리 분배를 개선하려 해도, 노동자들의 투쟁을 짓밟는 자본가들의 경찰,
군대, 감옥, 관료제를 노동자들의 혁명적 힘으로 타도하고 노동자들의 정부,
노동자들의 권력을 세워내지 않고 자본가정부들에 아무리 호소한다 해도 자본주의적
착취의 세계화는 지속될 것이며, 노동자들의 삶은 기껏해야 제자리에서 계속 맴돌
뿐이다. 극심한 착취를 동반하는 세계화에서 출구는 오직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전세계 노동자들의 혁명적 단결을 통한 세계 노동자들의 혁명이며, 착취와 억압의
영원한 종식이다!


4. 전세계 자본에 맞선 전세계 노동계급의 투쟁에 희망이 있다

요란하지만 속은 텅빈 소생산자들의 '세계화 반대투쟁'과 달리, 전세계
자본에 맞선 전세계 노동계급의 투쟁은 큰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남한에서 사회보험,
롯데, 스위스그랜드, 힐튼, 이랜드, 통인가게, 대상식품 사내하청, 게이츠 등 수많은
노조들이 몇 달씩 '적정인력 보장',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민주노조 사수' 등을 내걸고 파업투쟁을 전개했다. 이 투쟁의 불길은
자본의 착취에 맞선 노동자투쟁의 영웅적 힘과 위력을 보여주었으며, 동일하게 자본에
맞서고 있는 전세계 노동자들에게 커다란 용기를 불어넣었다. 전세계 노동자들은 남한
노동자투쟁에 대한 지지성명서 발표, 롯데 불매운동, 남한 대사관 앞 항의시위, 남한
자본에 대한 대중적 규탄집회 등 다양한 방식으로 남한 노동자투쟁에 연대했다.
이로써 자본의 착취에 맞선 노동자계급 투쟁의 또 하나의 자랑스런 모범이 탄생했다.
따라서, 남한 노동자들의 투쟁은 단지 박태영, 신격호 회장, 박성수 등 단지 개별
자본가들만에 대한 투쟁이었거나 남한 총자본인 김대중 자본가정부에 대한 투쟁이었던
것만은 아니다. 그 투쟁은 남한 자본 및 정부와 촘촘이 연결되어 있는 IMF, WTO,
미일과 유럽 독점자본 등 전세계 자본가들에 대한 투쟁이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전세계 자본가들이 남한 노동자투쟁을 두려운 눈으로 쳐다보면서 "남한
노동자들은 너무 강성이다. 남한 정부는 빨리 노조를 탄압하거나 길들여 남한의
투쟁불길이 세계로 옮겨붙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남한 자본가정부에게 수시로
종용해왔다. 남한 노동자투쟁에 대한 세계 자본가들의 이런 단발마적 공포와 거만스런
비방은 우리 노동자계급이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를 잘 가르쳐준다. 그것은
'세계화 반대'라는 맹목적이고 공허한 슬로건을 내거는 대신 전세계 자본의
노동자 착취 하나하나에 대해 구체적으로 반대하고, 노동자계급의 요구를 정식화하여
대중적인 투쟁을 전개해야 하며, 이 투쟁들을 일국 노동자 전체와 전세계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확산시켜내는 것이다.
남한 노동자들이 투쟁하고 있던 때, 지구 다른 곳에서는 다른 나라 노동자들이 또한
가열차게 투쟁했다. 올 여름 미국 최대 통신회사의 8만 7천 노동자들은 해고 위협에
맞서 2주 이상 파업을 전개하기도 했다. 올해 메이데이 때는 인도네시아 전국에서
수만명의 노동자들이 대규모 집회, 시위 투쟁을 전개했으며, 영국 등 다른 나라에서도
전투적 시위를 전개하며 노동자계급의 활력과 과감한 투쟁의지를 보여주었다. 아직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세계 도처에서 파업투쟁의 물결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처럼 세계 자본의 착취에 맞서 각 나라, 각 공장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전투를
전세계적 관점에서 조망하고 활성화하며, 전세계 노동자투쟁의 연결망을 짜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시애틀, 워싱턴, 프라하, 호주, 그리고 서울에서 벌어질 자본가
국제기구에 맞선 전투는 노동자들의 일상적 전투를 계급적으로 연결시키고
확장시키며, 정치적이고 국제적인 의의를 갖는 것으로 끌어올릴 때만 아셈 서울
노동자 투쟁은 진정 찬란한 빛을 뿜어낼 수 있다. 이것은 미국 시애틀 전투에서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시애틀 시위에서 노조 관료(AFL-CIO 간부들)들은 투쟁을 회피하려 한 반면, 3만여
노동자투사들은 투쟁을 지속하고자 했다. 미국 클린턴 행정부를 공식적으로
지지해왔으며, 자본에 맞선 일상적 전투를 회피하고 타협해온 AFL-CIO의 관료들이
WTO라는 자본의 초국적 기관에 맞서 노동계급적 요구를 내걸고 결연한 전투를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팀스터 노조 파업, 시설관리 노동자 파업과 같이 노동자계급의
절박한 요구를 내걸고 과감하게 투쟁했던 노동자투사들만이 초국적 자본기구에 맞선
투쟁에서도 단호할 수 있었다. AFL-CIO 관료들이 자본가의 동맹세력일 뿐이라는 점을
일상투쟁을 통해 충분히 경험했던 건강한 노동자투사들은 노조 관료들의 통제와
명령을 단호히 거부하고 독자적인 대오를 조직해 거리시위를 전개했다. 항만노조는 이
투쟁에 발맞추어 파업을 전개해 미국과 캐나다의 일부 항구를 마비시켜버렸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같은 계급적 요구를 내걸어 승리한 팀스터파업
또한 미국 노동자운동이 점차 부활하고 있음을 우렁차게 선포했고, 전세계
노동자운동에 훌륭한 모범을 제시해주었다. 이런 투쟁의 연장선에서 시애틀, 워싱턴의
노동자 전투가 펼쳐졌다. 이 투쟁은 비록 세계에서 모인 다양한 중간계급 및
무정부주의자들의 운동과 뒤섞이긴 했지만 노동자들의 계급적 요구를 내걸고 파업 및
전투적 시위와 같은 위력적인 방법을 동원해 세계 자본과 그 이해를 대변하는 경찰,
군대에 맞서 결연히 싸워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자본의 아성인 미국에서
쏘아올린 노동자투쟁의 불화살은 스위스 다보스, 체코 프라하, 호주에 떨어져 새로운
투쟁의 들불을 일으켰다. 이런 투쟁들이 최근 몇 년 동안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은
그만큼 자본의 세계화가 진척되어 있다는 것을 반증하며, 앞으로 노동자계급의
투쟁영역이 그만큼 국제적으로도 훨씬 더 넓어져야 함을 가르쳐준다.
그러나 그 투쟁들은 소부르조아적인 '세계화 반대' 슬로건에 뒤덮여
버리고, 선명하게 계급투쟁적 요구를 내건 노동자투쟁으로까지 나아가지는 못했다. 그
결과 그 투쟁들은 전세계 노동자들에게 국제연대에 대한 많은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지만, 일국 노동자투쟁과 국제 노동자투쟁의 연관성이나 일상적이고 정규적인
노동자 국제연대의 상을 분명히 제시해주지 못했다. 그것은 전세계 노동자계급의
공통의 요구를 전면에 내걸고 모든 투쟁들을 국제적으로 긴밀히 연결시키며,
노동자해방이라는 빛을 비추면서 앞길을 제시할 수 있는 노동자계급의 국제적 정치
지도부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전세계 모든 자본에 맞선 전세계 노동계급의 혁명적
투쟁이라는 기치를 들고 견결히 투쟁하며, 몰락해가는 소생산자의 깃발이 아니라
나날이 성장하는 노동계급의 독자적 깃발을 들고, 자본주의에 대한 즉자적 반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철폐와 노동해방 공동체 사회 건설을 뚜렷하게 추구하는
국제노동자 운동이 성장할 때만 이런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그 출발은 모든 곳에서
크고작은 노동자투쟁들을 국제연대의 망으로 통합시키고, 초국적 자본에 맞선
국제연대투쟁을 꾸준히 전개하는 데 있다. 남한 노동자계급은 이번 아셈 투쟁에서
전세계 노동자계급 앞에서 당당하게 이런 모범을 보여주어야 한다.

5. 아셈투쟁과 남한 노동자계급의 임무

아셈 회의는 '자본의 세계화 운동'에서 한 계기일 뿐이다. 아셈 회의는
자유무역의 전면화를 의미하는 다자간 투자협정(MAI)을 밀어붙이기 위한 아시아와
유럽 자본가정부 수장들의 회의다. 그리고 아셈은 남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한일,
한미투자협정과 같은 쌍무협정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다자간 '협정'과
양자간 '협정'이라는 방식에서만 차이가 있을 뿐, 둘은 모두 남한
자본가정부가 "자유무역"을 강화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이제 우리는
이른바 '자유무역'이 왜 더 강하게 대두되는지를 과학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일국에서 자본주의가 충분히 발전하지 않았을 때 자본가국가는 얼마동안
'보호무역'정책을 추구한다. 수입품에 대한 높은 관세, 국내 산업에 대한
국가지원금 등을 통해 일국에서 자본주의는 온실에서처럼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하지만 보호무역 정책을 지속적으로 쓸 수는 없다.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국내
시장만으로는 커져가는 자본의 위장을 채울 수 없으므로 다른 나라에 상품을 수출해야
하는데, 자국에서 계속 보호무역 정책을 채택할 경우 다른 나라 자본은 시장을 절대
개방하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이 우리나라 시장에 들어오고자 한다면 당신
나라의 시장도 함께 열어라"가 모든 자본가들의 슬로건이다. 따라서, 자본주의가
발전하면 할수록 모든 나라가 자유무역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아셈 및 한일,
한미투자협정은 남한 자본의 세계 시장 진출을 확대시키기 위한 남한 자본가정부의
노력을 표현한다. 동시에 그것은 아시아와 남한 시장을 장악하기 위한 유럽과 미일
독점자본의 요구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서로 경쟁하되 노동자 착취에는 완전히
이해가 일치하는 자본주의 나라들의 거래가 다름 아닌 아셈이다. 
아셈은 이와 함께 정치적 의미, 즉 노동자계급에 대한 공격을 강화하고자 하는 의도를
포함하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국민화합 이데올로기를 대대적으로 유포한
남한 자본가정부는 이후 곧바로 파업중인 롯데, 사회보험 노동자들을 무력으로
짓밟았다. 마찬가지로 남한 자본가정부는 아셈을 경제적 이익과 함께 정치적 이익을
추구하는 계기로 이용하려 할 것이다. "이 땅에서 최초로 다자간 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치러냈다"면서 김대중의 세계적 권위와 영향력을 부각시키고,
노동자들에게는 '월차휴가 폐지, 시간외근무 할증율을 50%에서 25%로
감축', 공공부문의 대량해고 및 노동통제 강화, 파업사업장 공권력 투입 등
무지막지한 공격을 자행하려 할 것이다. 다시 말해 아셈은 이후 이어질 남한 노동자
운동에 대한 체계적인 공격을 예고하고 있다. 
그렇다면 노동자계급은 아셈 및 한일, 한미 투자협정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이번 아셈 기간 동안 어떻게 투쟁해야 하는가?
첫째, 현재 남한에서 노동자들이 개별 자본 및 정부에 맞서 전개하고 있는 투쟁들을
활성화하고 굳게 연결시켜내야 한다.
아셈 및 한일, 한미투자협정이 남한 노동자들에 대한 강화된 착취시도임을 분명히
하면서, 지금 전개하고 있는 투쟁들을 더 강하게 밀어가야 한다. 남한 자본은 IMF
위기를 이용해 비정규직을 절반 이상으로 늘리고, 임금을 삭감하고 무쟁의선언을
강요하며 노조를 무력화해왔다. 이것은 단지 남한 자본의 이해만이 아니라 남한에
빌려준 막대한 자본이 적절하게 투자되고 충분한 이윤을 가져다 주기를 바라는 미국,
일본, 유럽 자본가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이기도 했다. 따라서, 이랜드, 통인가게,
사회보험, 대상식품 사내하청, 방송사 비정규직, 대우조선과 삼성조선 사내하청,
골프장 캐디, 보험설계사 등 모든 노동자투쟁은 "세계 자본에 맞선 세계
노동자투쟁의 한 부분"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단지 남한 노동자들만의 투쟁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미국에서, 일본에서, 그리고 유럽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줄기차게 전개되어
왔고 지금도 전개되고 있다. 남한 노동자들은 "우리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쟁취, 계약직화 저지를 내걸고 영웅적으로 싸운 미국 팀스터 노동자들과 영국 리버풀
노동자들의 자랑스런 후예이자 동지들이다. 우리 남한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투쟁에서 끊임없이 승리를 쟁취함으로써 전세계 노동자들에게 또 다른
모범을 만들어낼 것이다. 전세계 노동자 동지들이여, 우리의 계급적 투쟁을 주목하고
지지연대해달라"고 당당하게 호소해야 한다.
구사대와 폭력경찰의 탄압, 자본의 악선동과 회유를 이겨내며 민주노조를 사수하는
것이 단지 남한 노동자들만의 투쟁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필리핀에서도 호텔
노동자들이 파업하고 있을 때 경찰깡패들은 남한에서와 똑같이 무자비하게 짓밟았다.
인도네시아, 미얀마 등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에서는 노조 건설 투쟁 과정에서 수많은
활동가들이 자본가 군사정부로부터 테러당하고 살해당했다. 남한 노동자 투사들은
"다른 나라 노동자들이 수십년씩 갇히고 살해당하는 것에 비하면 우리들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는 어떤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기필코 민주노조를
사수하여 전세계 노동자들에게 희망을 만들어 보이겠다"고 자신감있게 주장해야
한다.
또한 남한에서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만큼 장기간의 완강한 파업들이 계속되고
있으며, 자본가들로부터 가장 가혹하게 착취당하고 있는 최하층 노동자들이 비타협적
정신과 계급적 연대, 노동해방에 대한 갈망을 안고 당당히 투쟁하고 있다는 사실이
남한에 온 아시아, 유럽 노동운동가들의 입을 통해, 그리고 인터넷과 각종 세계
언론을 통해 전세계로 퍼져나가게 해야 한다. 그때 이랜드, 일진, 대상식품 사내하청,
사회보험, 골프장 캐디 등은 전세계 노동자들에게 '세계 노동자투쟁의
모범'으로 인식될 것이며, 어떻게 투쟁해야 하는가를 풍부하게 배울 수 있는
'계급투쟁의 최신 교과서' 역할을 할 것이다. 바로 이런 것들이 무엇보다
살아 있는 국제적 행동이며, 바로 이런 것들로부터 국제연대와 세계 노동자 혁명의
기초가 자라난다. 당연히 이런 국제적 행동은 단사에서의 계급투쟁을 회피하는
개량주의 지도자들이 제시하는 "국제 연대"로부터는 자라날 수 없다. 
여러 곳에서 가열차게 투쟁하는 남한 노동자들이 창출해내는 모범들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개별 사업장의 투쟁요구와 함께 남한 노동자계급 전체의
투쟁요구를 명확하게 내걸어야 한다. 이와 관련 금속연맹, 민주노총은 '주40
시간 법제화 및 근로기준법 개악 저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중단', '한미, 한일 투자협정 체결 저지'를 3대 총력투쟁
요구로 정리하고 있다. 그리고 첫 번째 요구에 다음과 같은 세부 요구를 포함시키고
있다. "휴일축소(월차, 생리 폐지 등) 반대", "변형근로시간제 확대
반대", "초과근로 할증률 인하(50%→25%) 반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근로자파견법 철폐". 여기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아래로부터 광범위하게 터져나오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투쟁을
결집시키고, 하반기 투쟁을 상층 간부들의 대정부 청원 캠페인이 아니라 계급투쟁의
정신이 살아있는 대중적 투쟁으로 만들기 위해 가장 중심에 두어야 할 요구이다.
'주40 시간 법제화'는 경총, 정부 등 자본가계급도 '근로기준법
개악'을 전제로 해서 도입할 수 있다고 하고 있으므로, '노동조건 악화
없고 실질임금 삭감 없는 주40시간 노동제'로 요구를 더욱 날카롭게 정식화해야
한다. 어쨌든 위에서 제기한 요구들은 초국적 자본과 국내 독점자본의 이해를
대변하여 남한 자본가정부가 노동자를 공격하는 내용에 대한 구체적 반대이므로
올바른 투쟁요구이며, 더욱 부각시켜야 할 것들이다. 이런 요구를 전면에 내걸고 싸울
때만 남한 노동자들은 '세계화 반대'나 '신자유주의 반대',
'구조조정 반대'와 같은 추상적이고 공허한 깃발이 아니라 노동자계급
자신의 실제적 투쟁깃발을 전세계 노동자들 앞에 나부낄 수 있다. 하지만 두세번째
요구인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중단'과 '한미, 한일 투자협정 체결
저지'는 노동자계급이 세계화와 자유무역에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 국내 자본
및 소생산자들의 요구를 무비판적으로 따르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신자유주의'나 '구조조정', '협정의 모든 항목'이
아니라 노동법 개악, 정리해고, 비정규직 확대와 같은 노동자 착취의 구체적 내용에
반대해야 한다. 

둘째, 아셈 및 한일, 한미투자 협정에서 정리해고제 개악, 노조활동 및 파업권 봉쇄와
같이 노동자를 공격하는 내용에 단호히 반대하는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아셈, WTO, IMF, IBRD(세계은행) 등 초국적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국제기구에 대한
"추상적" 반대를 넘어서야 한다. 노동자계급은 초국적 자본이 전세계
노동자계급을 짜르고, 통제하고, 분열을 심화하는 것에 구체적으로 반대해야 한다.
자본은 자신의 지배와 통제를 유지하고 공고화하기 위해 노동자들을 국적과 인종,
성에 따라 갈라놓고 서로 대립시키며,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갈갈이 찢어놓는다.
자본은 노동자들이 서로 경쟁하면서 자신들의 힘을 소진하고 자본의 착취에
순응하기를 바란다. 노동자계급은 "초국적 자본의 노동자 착취와 수탈에 대한
반대" 투쟁을 전세계적으로 함께 전개함으로써 강하게 되받아쳐야 한다.
남한에서 생존권 사수를 위한 중소영세, 비정규직 노동자투쟁, 구조조정에 따른
고용불안에 반대하는 금융, 공공노동자 투쟁을 더욱 촉발시키고, 서로 연결시키고,
강화하는 것은 세계 자본에 맞선 국제연대투쟁에 남한 노동계급이 동참하고 선봉에
서기 위한 힘을 단련시키는 필수적인 "훈련코스"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자본가들끼리 맺는 계약조건들에는 전혀 개입할 필요가 없다. 단
우리는 그것이 노동자들에게 가하는 불리한 조건들에 대해서는 분명히 투쟁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아셈, 한일.한미 투자협정 전체에 대해 맹목적으로 반대할 필요는
없지만, 거기에서 노동자를 공격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결연히 투쟁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한일투자협정을 개시하면서 일본 자본가정부가 정리해고를 더 쉽게 할 수 있게
요구한 것이나, 주한 미 상공회의소 99년 연례보고서 초안에서 미국 자본가정부가
노동법상의 정리해고 요건인 '경영상의 불가피한 사유' 조항에 시비를
걸면서 "자유로운 정리해고"를 주장한 것에 주의해야 한다. 그리고
한일투자협정에서 일본은 80년대 수미다 노동자들이 직장폐쇄하고 일본으로 도망간
자본가들을 쫓아가 한일 노동자연대투쟁을 전개했던 것에 대해 불쾌하게 생각하며,
한국 자본가정부에게 노동자투쟁을 철저히 봉쇄해줄 것을 주문하고 있다는
점("노사분쟁이 일어났을 때 문제해결에 진지하게 대응한다"는 진지조항은
그것을 암시하고 있다)을 주시해야 한다. 이처럼 노동자들은
"자유무역"인가 "보호무역"인가를 둘러싼 자본가들간의 경쟁에는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되, 정리해고제 개악, 노조활동 및 파업권 봉쇄, 매각시
고용노조단협 승계 의무 금지 등 노동자를 공격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예리하게
부각시켜내서 집중적으로 투쟁해야 한다.
그리고 남한 노동자들은 타국 자본이 남한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를 강화하려는 것에
맞서는 것만이 아니라 남한 자본이 다른 나라에서 그 나라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것에
대해서도 맞서야 한다. 그것만이 국제주의를 가장한 민족주의 혹은 조합주의 캠페인이
아니라 진실로 국제주의적인 계급적 행동이다. 예컨대 현대계열사 한영기업이 멕시코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열악한 노동조건을 강요하는 것을 규탄하고, 삼성 자본이
동남아에서 무노조방침을 밀어붙이며 노동자를 탄압하는 것을 비판해야 한다. 또한,
남한 노동자들은 남한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자본의 착취와 정부의
억압에도 맞서 싸워야 한다. 이처럼 남한 노동자들이 자국 자본의 타국 노동자 착취를
폭로하고 타국 노동자들과 어깨걸고 싸우려 할 때 타국 노동자들은 남한 노동자들을
자신들의 진실한 동료로 받아들일 것이며, 이런 굳건한 연대행동으로부터만 진실로
국제적인 힘이 자라나올 것이다.

셋째, 투쟁형태에서도 대중적 파업과 전투적 시위를 통해 노동자계급의 각인을 분명히
찍어내야 한다. 지금까지 국제행사에 대한 투쟁은 주로 비정부기구(NGO), 시민단체,
농민단체, 무정부조직 등 소부르조아 세력 중심의 투쟁이었고, 노동자계급은 자신의
각인을 뚜렷하게 찍어내지 못해왔다. 투쟁의 요구에서만이 아니라 투쟁형태에서도
준비되지 않고 질서잡히지 않은 산만한 집회, 시위와 부분적으로 자생적인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 전부였다. 노동자파업을 세계 자본가기구에 맞선 투쟁과 결합시키는
것은 시애틀 전투에서 항만노조가 전개한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전무했다. 대중시위의
경우에도 관료적인 노조의 통제가 강하게 관철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에도 유약한 비정부기구(NGO)들과 민주노총의 개량적 지도부들은 소심한 투쟁으로
수위를 제한할 가능성이 많다. 특히 '아셈 민간포럼'의 경우
착취자두목들의 정상회담에 '개혁적 이미지'를 덧칠하는 어용행사에
가깝다. 자본가계급은 자신들이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끔찍한 노동자착취, 극심한
빈부격차를 '아셈 민간포럼'이라는 외곽기구를 통해서 약간이라도 해결할
수 있다는 환상을 불어넣기 때문이다. 노동자투사들은 아셈회의의 은폐된 2중대인
'아셈 민간포럼'에서 민주노총 개량적 지도자들이 철수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노동자계급의 힘을 결집하고 비타협적으로 투쟁하는 데 의지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소생산자, 시민단체와 달리 초국적 자본에 맞서 가장 일관되게, 가장 결연하게 싸울
수 있는 노동자대중들을 광범위하게 동참시켜내야 한다. 그것을 위해 임금인상,
노동조건 개선 등 현장투쟁의 요구와 '정리해고 요건 완화',
'변형근로제 확대', '휴일 축소' 등 초국적 자본의 공격을
저지하는 투쟁 요구, 그리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파업의 자유와 같은 전세계
노동자들의 공통적 요구를 내걸고 위력적인 파업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그래야만
노동자들이 실제 투쟁에 주체적으로 참가할 수 있으며, 투쟁 속에서 전세계
노동계급과 더욱 강력하게 연대해야 한다는 점을 배울 수 있다. 집회, 시위 또한
'스크린 쿼터제 폐지'에 반대하는 영화인, 전농 등 소생산자 세력들과 마구
뒤섞이고 '세계화 반대'와 같은 추상적 요구를 내거는 무기력하고 산만한
캠페인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노동법 개악 저지', '생활임금
쟁취', '고용안정 쟁취', '실질임금 삭감없는 노동시간
단축' 등 분명한 노동자계급의 요구를 앞세우고 규율잡힌 노동자들의 힘있는
투쟁대열을 조직하여 남한과 전세계를 뒤흔드는 위력적인 투쟁을 만들어야 한다. 이럴
경우에만 이번 아셈 서울 투쟁은 시애틀, 프라하 노동자투쟁을 계승할 뿐만 아니라
새롭게 혁신하면서 미래의 국제노동자 연대투쟁의 전망을 밝히는 위대한 투쟁이 될
것이다.
이번 서울투쟁에 대해 아시아와 유럽은 물론이고 전세계 노동자투사들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것이다. 2만 이상의 노동자대오가 선명한 계급적 요구를 내걸고
'국제 노동계급의 단결'을 호소하면서 굳건하게 싸운다면 남한 노동자들이
흘린 피땀은 모든 혈관을 통해 전세계 노동자계급의 몸 속으로 흘러들어갈 것이다.
전세계 노동자계급이 남한 노동자계급의 투쟁에 큰 기대와 격려를 보내고 있는 지금,
"우리는 국제 노동계급의 분견대로서 자기 임무를 훌륭히 완수했다"고
자랑스럽게 외칠 수 있도록 가열차게 투쟁하자!
자본의 세계화에 국제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단결로 맞서자! "세계화 반대",
"신자유주의 반대"의 무기력한 깃발이 아니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노동법 개악 저지", "민주노조 사수",
"고용안정 쟁취"의 선명한 투쟁깃발이 남한을 뒤덮게 하자! 사회보험,
이랜드, 일진, 한통 계약직 등 모든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초국적 자본에 맞선 국제
노동자투쟁의 선봉에 서자! 아시아와 유럽의 각 나라에서 자행되는 노동자탄압을
규탄하자! 아시아, 유럽에서 온 노동자투사들과 남한 노동자투사들의 굳건한 연대투쟁
대오를 형성하자! 아셈 노동자투쟁에 연대하는 투쟁의 물결이여! 일본, 필리핀,
인도네시아, 영국, 프랑스, 독일에서 멀리 퍼져나가라! "전세계 노동자여
단결하라, 세계를 변혁하라" {해방의 투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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